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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우리의 네 번째 친구는?
조회수 | 685
작성일 | 16.08.02
[대전] 우리의 네 번째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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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왕의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깜짝 놀란 그 사람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지요. '왕이 왜 갑자기 나를 부르는 것일까?' 겁에 질린 그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함께 가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제일 친했던 첫 번째 친구는 부탁을 하자마자 못 가겠다고 거절하였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가긴 가는데 왕궁 앞까지만 같이 가주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친구는 왕궁 안까지는 함께 가주겠으나 왕의 대전까지는 같이 갈 수 없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친구는 사정 이야기를 듣고 함께 갈 것을 흔쾌히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소환에 기꺼이 함께 응하겠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갈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만 첫 번째 친구는 평소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재물입니다. 재물은 죽는 바로 그 순간 나를 떠나버립니다. 왕궁 앞까지만 간다고 말한 두 번째 친구는 가족과 친구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울면서 무덤까지는 함께 가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덤에 같이 묻힐 수는 없는 것이지요. 세 번째 친구는 왕궁 안까지는 같이 간다고 했지요. 우리의 육신을 말합니다. 무덤 속까지는 같이 가서 썩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왕 앞에까지 함께 가겠다고 나선 네번째 친구는 누구이겠습니까? 그가 평소에 가장 멀리했던 자선과 선행이었습니다. 자선과 선행은 내가 심판을 받을 때 끝까지 하느님 앞에까지 함께 따라와 나를 변호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상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단지 재산 관리인에 불과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언젠가는 다시 거두어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깨어 기다리는 종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든 이를 향한 칭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은 늘 깨어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깨어있는 믿음이야말로 우리의 네 번째 친구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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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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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준비하고 있어라

우리의 삶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많은 준비들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 늘 준비할 때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님을 완전하게 뵈옵는 날은 죽음의 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의 날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순응의 반응이 상황에 따라 준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드러난다.

병원에서 환자를 방문할 때에 서로 다른 준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말기환자들에게 나타나는 반응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반응이 우울한 상태이다. 건강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 반응의 상태가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환자에게는 본질적인 물음의 해답과 정화가 일어나는 소중한 시기임을 확인하게 된다.

내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하고 무엇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지. 지난날의 삶을 뒤돌아보며 삶의 전부라 여기고 살아왔던 것이 이 순간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한낱 욕망과 집착의 산물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선택하고 추구하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직면하고 다가오는 순간을 하느님의 말씀에 순응하게 될 때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환자에게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얻어졌다고 자만하며 하느님의 뜻에 맞게 관리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불충한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내 소유가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임을 알고 잘 보존하고 관리한다면 충실한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 대전교구 백광현 세레자 요한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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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한다.’는 점이 오늘 말씀이 들려주시는 가르침이다. 단순히 할 일 없이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준비하고 있는 종들’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기다려야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수행해야 할 점이 있다는 점을 상기 시킨다.

깨어 있을 때 좋은 결과가 돌아온다는 점은 경험 안에서도 쉽게 이해가 된다. 과거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했던 시절, 어머니가 잔칫집에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올 때면 먹을 것을 챙겨 오시곤 하였다. 그런데 깨어 있어야 내 몫을 차지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일찍 잠들어 버리면 맛있는 것을 눈앞에 갖다 놓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군복무 중에 보초 근무를 설 때‘깨어 있어야 한다.’는 수칙은 결국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 나라까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신앙인들은 깨어 있다는 일을 세상일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믿음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로 방향을 두어야 한다. 본당에서 환자를 방문하고 봉성체를 하다보면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점을 보게 된다. 병약한 몸으로 도둑을 퇴치하기 위해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고 기다리며 신앙의 흔들림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자체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점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 도둑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집주인, 집사로서의 충실한 모습은 모두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일깨우는 비유들인데 루카복음사가가 처해 있던 공동체가 직면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주인이 돌아오면 분명 지난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묻고 확인할 것이므로 미리 주인의 뜻을 헤아리며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주인이 외출하고 있는 동안에 획기적이고 놀랄 만한 일들을 골라챙기는 것만이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은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인내롭게 꾸준한 삶으로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주인이 바라시는 점이다.

결국 ‘깨어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은 하느님께 희망을 간직하며 현재의 삶을 살아가라는 요청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성인께서 ‘겸손한 봉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듯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겸손한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주인은 잘 준비하고 기다린 종들을 위해 손수식탁 봉사를 하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셨다. 또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일은 복음 말씀으로 세상을 살펴보고, 현 시대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교구가시노드를 개최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일들을 준비하고 수행하기 위해서

▮ 대전교구 김문수 야고보 신부 2016년 8월 7일
  |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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