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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참 평화를 얻으려면
조회수 | 490
작성일 | 16.08.12
[군종] 참 평화를 얻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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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성경을 통틀어서 중요인물들을 보면 어느 누구하나 고통과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1독서의 예레미야를 비롯한 참된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나 제2독서가 상기시키고 있는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처럼 의인으로 비춰지는 모든 이들은 세상의 반대의 표적이 되어 갖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처럼 극심한 증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반대자들은 하나같이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1독서에 나오는 대신들은 임금의 눈과 귀를 멀게 할뿐 아니라 백성들의 안녕을 챙기려는 마음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언제나 있어왔던, 의인들을 괴롭히는 반대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런 고통 속에서도 참된 예언자와 같은 의인들이 흔들림 없이 주어진 사명을 향하여 “달려야 할 길”(히브 12,1)을 향해 꾸준히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겐 인간과 세상의 참된 평화, 즉 구원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굳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속의 주님은 이런 말씀을 건네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사실 이런 말씀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불을 지르시고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평소 생각해 오던 온유와 자비가 충만하신 예수님의 이미지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이며 세속적인 평화이고 세상에 분열을 조장하기만 할 뿐이어서 반드시 불태워 없어져야 할 평화입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평화,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위화감만 불러일으킬 평화 말입니다. 이는 바로 제1독서에서 등장했던 예언자를 박해하는 ‘대신’들 같은 사람이나 추구하는 거짓 평화입니다. 하지만 참 평화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동적인 희생과 봉사를 전제로 하면서 모두가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는 평화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예레미아 예언자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했듯이, 또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제자들이 고난의 길을 걸어갔듯이, 고통의 십자가도 참 평화의 상징으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신 예수님처럼 비로소 우리에게도 영광스런 희망이 약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과연 나는 이제껏 의인의 모습으로 살아 왔는지, 아니면 반대자들의 모습으로 살아 왔는지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는 의인으로 살 것인지, 반대자로 살 것인지를 결심하는 선택을 맞이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까? 무엇을 추구하시겠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저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리는 것이 가장 좋으면서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가야할 길은 현세의 평화가 보이는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가신 길입니다. 그 길만이 주님께서 마련해놓으신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길임을 생각하며 지금 힘차게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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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민철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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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평화가 너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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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 영성체하기 전에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평화의 인사’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신 첫 번째 말씀이기도 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스승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도망가서 골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 사이에 나타나시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질책하거나 추궁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기원한다고 인사하십니다. 즉, 우리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주신다는 뜻이 전제된 평화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그런 평화를 얻고 평온해지기를 원하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해 보면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신 자신이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만 같은 존재로 비춰집니다. 눈엣가시처럼 그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에게 화를 돋울만한 모습을 보여 주시지요. 그리하여 결국 잡히셔서 수난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고 그 길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명이었지만 왜 예수님은 그들에게까지 자비와 용서의 모습을 보이시진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는 죄와 악이 팽배하는 세상에서 선을 택하기 위해 악을 거슬러 투쟁하고 싸워야 할 상황을 인식시키기 위한 말씀이십니다. 분열을 위한 분열이 아니라 죄가 죄임을 드러내게 하기 위한 분열이며 하느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가 드러나게 하기 위한 분열입니다.

사실 진리가 바로 드러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헷갈리게 하는 세상의 요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잡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진리가 드러나겠습니까? 그 방법을 교회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실천사항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내주어라.’, ‘5리를 같이 가자하면 10리라도 같이 가라.’,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희생하고 용서하고 양보하도록 권유합니다. 또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가셨던 가시밭길을, 십자가의 삶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 교회의 역사는 피의 역사였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며 이어온 피의 신앙이 바탕이 되었기에 지금의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고,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었으며, 그러다가 잡혀가 모진 수난과 박해를 당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목숨까지 바치며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즉 선을 택하기 위해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예수님을 따라 기쁘게 순교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지를 가지고 나누는 평화가 진정 구원을 위한 평화의 인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희생과 고난, 봉사와 절제의 가치는 제외한 채 기쁘고 즐거운 일만 찾는 모습으로 자기만족식 신앙이 되지 않고, 평화를 위한 불을 지필 수 있는 신앙의 용기와 결단을 가질 수 있도록 은총 청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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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양신 안드레아 신부 2016년 8월 14일
  |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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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성령의 불로 변화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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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말씀하십니다.

불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추울 때는 따스함으로 얼었던 몸을 녹여주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칫 불은 인간에게 커다란 재산과 인명 피해를 가져다주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이라는 것은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두지 않고 다른 상태로 바꾸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지르러 오신 불은 변화시키는 힘이며, 새롭게 하는 힘입니다. 이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생을 살펴 볼 때에 생명까지 바쳐서 인류를 사랑했다는 것을 보며 인류는 하느님의 아들로부터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로써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가 날로 증가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고, 외투를 벗어 헐벗은 형제에게 입혀주며, 길잃은 형제들을 맞아 후하게 대접하고, 상처 입은 사람을 싸매주고, 그 얼룩진 얼굴을 씻어주는 불꽃이 이 세상에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장병들 역시 그리스도처럼 살기 위해, 낡은 세상에 불을 지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내가 있는 자리에 사랑의 불을 지르는 방화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성령께서 주시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낡은 것을 태워 버리고 변화시키며, 늘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불은 사랑의 불이고, 평화의 불이고, 기쁨의 불입니다. 이 불이 우리 사는 세상 곳곳에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불타오르는 정화된 밝은 주님의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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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효인(요셉) 신부 : 2019년 8월 18일
  |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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