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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기도합시다.
조회수 | 364
작성일 | 16.10.14
[대전]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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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에게 낙심 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당부 하신다. 무엇보다 빠른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오관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에 만족해하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 같아서는 더 좋은 것을 더  짧은 시간에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바람이지만 다른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데에 인내심을 넘어 항구한 자세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은 미적거리기를 좋아하는 분이셔서 그래야 하는 것일까?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는 분’(마태 6,8)이시니 우리가 원하는 때보다 오히려 더 먼저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항구한 자세가 필요한 것은 하느님 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불의한 재판관이야 어쩔 수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겠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올바른 판결을 지체 없이 내려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그 ‘올바른 판결’을 우리가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기뻐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신뢰’가 필요하다.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고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니 말이다. 하느님의 이끄심과 은총에 놀라워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중에 그 과정까지 다 이해하고 따라간 사람은 없다.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뿐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쪽으로 하느님을 이끌기 위해서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쪽으로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나한테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하느님께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능률과 실적을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가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통하여 평가한다. 이 안에서 하느님을 따라 나서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를 잊을 때도 있고 소홀히 여길 때가 있을지 몰라도 악의 세력은 연중무휴 24시간 지치지 않고 활동하니  하느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기도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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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원무 베다 신부
2016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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