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66.8%
[대전] 기도합시다.
조회수 | 360
작성일 | 16.10.14
[대전] 기도합시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낙심 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당부 하신다. 무엇보다 빠른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오관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에 만족해하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 같아서는 더 좋은 것을 더  짧은 시간에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바람이지만 다른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데에 인내심을 넘어 항구한 자세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은 미적거리기를 좋아하는 분이셔서 그래야 하는 것일까?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는 분’(마태 6,8)이시니 우리가 원하는 때보다 오히려 더 먼저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항구한 자세가 필요한 것은 하느님 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불의한 재판관이야 어쩔 수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겠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올바른 판결을 지체 없이 내려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그 ‘올바른 판결’을 우리가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기뻐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신뢰’가 필요하다.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고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니 말이다. 하느님의 이끄심과 은총에 놀라워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중에 그 과정까지 다 이해하고 따라간 사람은 없다.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뿐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쪽으로 하느님을 이끌기 위해서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쪽으로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나한테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하느님께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능률과 실적을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가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통하여 평가한다. 이 안에서 하느님을 따라 나서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를 잊을 때도 있고 소홀히 여길 때가 있을지 몰라도 악의 세력은 연중무휴 24시간 지치지 않고 활동하니  하느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기도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

대전교구 이원무 베다 신부
2016년 10월 16일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   [안동]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1]
!   [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2]
!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4]
!   [대구] “희망의 징조"  [2]
!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2]
!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2]
!   [인천] “예수님은 ‘보스(boss)’인가 ‘리더(leader)’인가?”  [4]
!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2]
770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3
769   [춘천] 신념  [2] 2274
768   [원주] 재난의 시작  6
767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1] 2579
766   [전주] 종말 전의 재난  8
765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8
764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 2082
763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1487
762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2] 2351
761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 2299
760   [마산] 영세한 미신자(未信者)가 많다.  [1] 2277
759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499
758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4] 2833
757   [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2] 2583
756   [안동]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을 살아가십시오  [1] 2573
755   [대전]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있는 것입니다”  [1] 2898
754   [청주] 부활 신앙  [2] 76
753   [광주] 학벌(學閥)과 사두가이파  2576
752   [전주] 부활 에 대한 확신과 희망  56
751   [춘천] 영원히 하나인 하느님 가족  [2] 2396
750   [원주] 부활 이후의 새로운 삶  54
749   [군종] 두 여자  2131
748   [의정부]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62
747   (녹) 연중 제32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  [3] 1931
746   [수도회] 용서와 자비  [2] 2073
745   [전주] 자캐오, 아! 행복한 사람  [1] 1718
744   [인천] 자캐오! 나무에서 (빨리)내려와!  [3] 2165
743   [서울] 회개의 증거는 착한 행실  [3] 1740
742   [안동] 자캐오 이야기  [1] 2313
741   [부산] 세리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  [2] 12010
740   [수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 가 묵는구나!”  [3] 2081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