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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조회수 | 512
작성일 | 16.11.04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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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 이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아마 두려워할 것입니다. 또한 죽은 뒤에 어떻게 될까 하고 궁금해 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부활에 대해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명확하고 분명하게 부활에 대해 대답하십니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부활 후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은 이 세상의 삶과는 전적으로 다르고 전혀 다른 차원의 삶임을 밝혀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습니까? 전능하신 천지창조주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보내신 당신 외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활,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그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활’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바로 ‘부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부활하셨기에 그분이 우리를 부활시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부활하셨을까?’ 질문을 던져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혹은 반대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서일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당시의 통치자들을 압박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믿도록 강요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분은 한 알의 밀알로서 더 많은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그냥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죽음이 함께 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요? 올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의 순간에 우리 마음도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선수들의 땀과 노고가 있었기에 감동이 되는 것이겠죠.

우리 신앙인들은 십자가를 지고주님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와 다르게, 내가 아니라 너를 빛내려고 숨은 노력과 봉사와 희생을 많이 합니다.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사람들이 많은지요. 그들이 교회를 빛내고 주님의 현존을 잘 드러내기도 합니다.

어려운 것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고, 공부 중에 가장 어려운 공부가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마태 7,12)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타적인 삶이 결국 십자가를 지는 길이고 부활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로써 우리 삶이 온전하게 사랑과 용서의 삶이 되어야함을 보여주셨고, 기쁨과 평화의 삶이어야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세상적인 가치와 물질적인 것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맞서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온전한 사랑과 용서, 참 평화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삶, 지금 여기에서 나와 함께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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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임종필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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