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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조회수 | 665
작성일 | 16.11.11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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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주님께 봉헌된 솔로몬 성전이 기원전 6세기 초 바빌론에 의해 무너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든 유배생활을 통해 자신들이 주님과 맺었던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이방인들의 손에 넘기셨음을 알아차린다. 바빌론 유배 이후 다시 봉헌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회개로 주님과 다시 맺은 계약의 표지였다.

따라서 성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성전이 허물어진다는 말은 다시 주님과 그들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증거요, 바빌론 유배 때와 같은 재난을 도로 겪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예수님께 이렇게 심한 말을 듣고도 그분을 고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묻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질문에 대답해 주기보다는 귀머거리 제 마음에 있는 소리 하듯 닥쳐올 재난과 대처요령에 대해서 같은 말씀만 반복하시는 예수님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다시 생각하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성전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먼저 주님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해주실 말씀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반대로 어떻게든 닥쳐올 재난을 피할 궁리부터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 역시 이것 하나뿐이다. 저마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어떻게 말해도 결과는 똑같다.

서로 부담주지 말고 각자 편하게 살자고 하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이상할 건 없다. 편하자고 저마다 눈 감고 귀막고 사는 이 세상에서 한결같이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하며 듣는 이 없어도 말씀하기를 그치지 않으시는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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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고종향 가롤로 신부
2016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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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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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언젠간 낫듯이 열이 나면 언젠간 식듯이
감기처럼 춥고 열이 나는 내가 언젠간 나을거라 믿는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듯 장맛비도 항상 끝이 있듯
내 가슴에 부는 추운 비바람도 언젠간 끝날 걸 믿는다

얼마나 아프고 아파야 끝이 날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울어야 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내 자신을 달래며 하루하루 버티며 꿈꾼다
이 이별의 끝을

제가 좋아하는 ‘지나간다’라는 곡의 가사입니다. 이 노래 가사처럼 세상 모든 일은 다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6)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의 출몰과 전쟁, 기근,큰 지진, 전염병이 생기고 하늘의 무서운 일들과 표징이 일어날 때가 올 것이며 믿는 이들의 박해도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8-19)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두 가지 때를 알려주십니다. 첫째는 거짓과 은폐, 헛된 겉치레 등을 중요시하며 진실과 정의에는 눈을 감고 세상에 휩쓸려 살아온 이들의 종말의 때입니다. 둘째는 종말의 때는 지나갈 것이며, 힘들지만 바로 이때가 복음을 증언할 때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믿고 기다리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위기는 곧 기회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금 귀 기울이며 우리는 지금 어떤 때를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분명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처럼, 이 세상을 살다 삶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우리가 가지고 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때 자연스레 갖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한 내 삶의 모습입니다. 이는 종말이나 죽음 이후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준비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다 지나가리라 믿으며, 언젠가 우리에게도 올 그때를 위해 이 세상에서 인내로써 기다리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일상에 대한 충실'이 얼마나 소중한 삶의 자세인지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충실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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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김상기 요셉 신부
2019년 11월 17일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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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내면의 것을 끌어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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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러시아에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잘 생긴 편은 아닌 그 남자 아이는 동네 친구들과 학교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못생기게 낳아준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또 외모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은 하느님께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기쁘게 해 드리겠다고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년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일기를 비롯해 글을 쓰고 또 썼습니다. 이웃들도 소년의 글을 보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소년의 글쓰기는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일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바로 자신이 못생긴 외모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전혀 우울해 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이 외모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바로 글을 쓰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소년은 ‘그래,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었어.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거야.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했던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소년은 더 이상 외모 때문에 혼자 우울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냈습니다. 이 소년이 나중에 부활, 전쟁과 평화, 인생이란 무엇인가, 바보이반 등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가 톨스토이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도 ‘못생긴 사람’으로 그를 기억하진 않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누구나 좋아합니다. 외적인 것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에서도 그렇습니다. 보이기 위한 성과만을 쫓아 일을 한다면 결국 쉽게 지치고, 외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진정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지치지 않고, 그 속에서 기쁨을 맛보기에 계속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끌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 하느님의 교회에 자신을 투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외모에 계속 신경을 쓰고 살았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외모를 한탄하다 그냥 사라졌을 것입니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어 발전시켰듯이 우리도 외적인 것보다는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기쁨을 잊지 않도록 한다면 인사받기보다는 겸손하게 되고 그래서 존경을 얻을 것이고 행복할 것입니다. 외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고 존경한다고, 고생한다고 하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내면의 것을 끌어낸다면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이웃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우리가 기뻐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행복해지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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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이상훈 미카엘 신부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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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내가 지금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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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사물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자신은 늘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은 늘 옳고 자신은 웬만하면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착각이 아무리 신중하게 생각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다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상대방이 머리가 나쁘다거나, 가치관이 이상하다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그 순간 상대방도 나와 똑같이 나에게 답답함과 한심함을 느낄 것이다. 가치관과 관점의 차이는 서로의 주관적 판단이 충돌한 것이기에 접점 없이 평행선만 그릴 때가 많다.

실상 우리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상황에 영향을 받고 환경과 삶에 의해 조절된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ㅋ 본다. 우리들은 각자 스스로가 가진 독특한 경험의 렌즈를 통해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주입된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아랍에서 태어났다면 ‘모든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고 굳게 믿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라고 하신다. TV에서 하는 말은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어떤신문에서 하는 말은 어떻게 토씨하나 의심하지 않고 잘도 믿고, 어느 논평가의 얘기는 절대 신봉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별로 ‘먹히지가’ 않는다. 믿음의 기본은 ‘주님을 따라가는 것’임에도 정작 주님 뒤는 따라가지 않고 엉뚱한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도 믿고 따라가고 있지 않은지 늘 돌아봐야 한다.

루카 복음의 다른 곳에 이런 말씀이 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나의 생각’이나 ‘세상의 시각’이나 ‘어떤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복음의 시각으로 나를 성찰하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태초의 인간이 뱀에게 속아 금단의 열매를 먹고 원죄를 범했듯이 우리가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면 예수님께서 ‘속지 말라’고, 제발 엉뚱한 것 좀 ‘따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겠는가?

이 번 한 주간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자. ‘내가 지금 혹시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지금 무얼 따라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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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장광민 요셉 신부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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