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38.4%
[원주] 환영 받지 못한 예수님
조회수 | 119
작성일 | 19.01.30
[원주] 환영 받지 못한 예수님

-------------------------------------

예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하셨습니다(루카 4,16- 21).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설교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신 것은 물론이거니와 친척들과 고향사람들 심지어 제자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은총의 말씀에 고향사람들 모두가 놀라면서도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고작 요셉의 아들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께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라는 속담을 들이대면서 카파르나움에서 하신 기적들을 나자렛에서도 행하라고 강권합니다. 그러자 예수는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라는 속담을 말씀하시면서 이적을 거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아무런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던 것은 고향사람들의 불신 때문이었습니다(마르 6,6).

기원전 9세기에 예언자 엘리야는 많은 이스라엘 과부들을 제쳐두고 오직 이방인 과부를 돌보았습니다(1열왕 18,7-16). 그 제자 엘리사 역시 많은 이스라엘 나병환자들을 제쳐두고 이방인 나병환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이렇듯 예수께서도 복음을 전하셨지만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배척한데 비해서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향과(24절) 동족을(25-27절) 경시하는 말씀을 하시자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분통을 터뜨리면서 그분을 도시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복음서 작가 루가의 구원사관이 담겨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 작가는 자신이 이방계 그리스도인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복음서를 썼습니다. 본디 예루살렘에서 탄생한 원시교회의 신도들은 모두 유다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먼저 유다인들을 상대로 전도했지만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와 사도 바울로의 개심을 계기로 이방인들을 상대로 한 전도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했지만 이방인들은 잘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족과 고향사람들로부터는 배척을 받으셨으나 이방인들과 타향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루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보다 믿음 안에서 교회의 미래를 올바로 바라보는 예언자적인 슬기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적인 예언의 정신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함께 수용해야 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적인 것에 치우쳐 믿음 없이 교회를 바라보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충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오늘 복음에 담겨 있다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과거의 부흥에 안주하지 말고 교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많은 지성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늘 새롭게 태어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 원주교구 유충희 신부
447 38.4%
남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되라.

---------------------------------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24)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모처럼 고향에 갔다가 찬밥 대접을 받으시고 하신 것인데 이 말씀의 깊은 뜻 은 고향에서 인정받고 환영받지 못해 서운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고향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인정받고 환영받고 싶어 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오신 분(마태오 20.28)이 누가 인정해 주고 환영해주고 하는 것 따위에 일희일비하는 소인배 이셨겠는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남을 인정해 주고 받아 주고 환영해주지 못하는 세태를 지적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되 가까운 사람, 함께하는 사람 평소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하라는 것이다. 우리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는데 가까운 사람, 함께하는 사람, 잘 안다고 여기는 사람을 개먹처럼 여기면서 멀리 뉴욕, 모스크바에 있는 사람을 어찌 콩떡으로 여 길수 있느냐는 것이다.

남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한마디 덧붙인다면

첫째,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로마 15.1-7)하는 것이다.
혹 상대와 내가 다른 것은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라 본래 상대와 나는 다른 것일 뿐이다. 얼굴 생김이 다르고 피부가 다르고 신앙의 깊이도 다르고 환경이 다른 것 뿐 틀린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주면 된다.

둘째,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필립비 2.3)는 것이다.
부부가 하는 M.E(메리지 엔카운터)교육에 좋은 말이 있다. 상대는 나보다 나은 반쪽(My better half)이라는 말이다. 인격을 갖춘 신앙인이란 그가 가진 지식,권위,재물,명예에 있지 않고 상대방을 나보다 낫다고 인정하고 받아 주는 것에 있는 것이다.

셋째, 남의 짐을 저 주어라(갈라티아 6.2)는 것이다.
남의 짐을 대신 저 주겠다고 결심한다면 그만큼 남에 대한 부정과 편 견을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남에게 가지셨던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다(마태오 14.14) 억지로라도 남의 짐을 저 주어라.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시몬 (마태오 27.32)은 그로인해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영광을 가지지 않았던가.

--------------------------

원주교구 김영진 바르나바 신부 : 2019년 2월 3일
  | 02.0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1]
!   [수원] 이성(理性)을 초월한 신앙  [3]
!   [춘천] 백견(百見)이 불여일신(不如一信)!  [3]
!   [의정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
!   [인천] 사람을 믿어도 행복한데 주님을 믿으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2]
!   [대전]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서울]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4]
!   [안동] 문제가 없으면 그게 문제  [2]
!   [부산] 예수님은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가르치셨습니다.  [3]
!   [대구] 공동체를 지켜라 
706   [마산] 교회, 부활신앙을 사는 공동체  [4] 2107
705   [전주]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품으로 달려갑시다.  [1] 2034
704   [광주] 평화가 너희와 함께!  21
703   [군종] 우리의 의심과 불신앙 속에서도 함께 계시는 예수님  1977
702   [청주] 자상한, 친절한, 자비의 예수님  [1] 22
701   (백)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독서와 복음  [2] 1589
700   [수도회] '착해빠져' 탈인 사람  [2] 1965
699   [인천] 무언의 가르침  [2] 1990
698   [서울] 나의 분신 나의 십자가  [6] 1966
697   [안동]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  [2] 2038
696   [부산] 십자가를 질 각오  [5] 2111
695   [대구] 믿음·희망·사랑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3] 1634
694   [군종] 이 세상에 섬기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2] 1895
693   [마산] 예수님의 죽음에 우리도 공범자이다.  [3] 2160
692   [수원]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  [4] 1929
691   [청주]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1] 108
690   [의정부] 잘 지내십니까  [2] 1669
689   [춘천]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2] 80
688   [원주] 묵묵히 자신의 길 가신 예수님  [1] 1993
687   [대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  83
686   [전주] 제3의 시선  [3] 1906
685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88
684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독서와 복음  [3] 1663
683   [수원]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4] 2175
682   [수도회]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에제 18,23)  [8] 2087
681   [부산] 새로운 탈출  [6] 2097
680   [안동]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  [3] 2337
679   [대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2] 2174
678   [인천] 마음속의 돌  [10] 2423
677   [서울] 사람을 살리는 법과 죽이는 법  [7] 2406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