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34.8%
[광주] 도전받는 예언자
조회수 | 106
작성일 | 19.01.30
[광주] 도전받는 예언자

----------------------------------

하느님의 말씀을 용기있게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언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부패되어 있으면 부패된 것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진리를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고통이 여기에 있었으며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오늘 1독서의 내용은 예레미야가 소명받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BC 600년대에 활약했던 이스라엘의 대 예언자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 나라는 멸망되어 가고 있었고 사회는 썩어 부정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예언자가 걸어야 할 길은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백성을 회개시키고자 하는 예레미야의 노력이 오히려 비난과 오해를 받아서 감옥에도 갇혔으며 도망도 다녔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절까지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는 핑계도 변명 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래서 박해와 고난 속에서 평생 을 외롭게 걸어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예언자의 길은 참으로 고달픕니다. 모세도 그랬고 이사야도 그랬으며 아모스나 호세아도 그랬고 세례자 요한이나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걷는 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신 자들만이 그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따라서 예언자가 된 다는 것은 고달픈 길이면서도 또한 은혜로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기대와 꿈이 가득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마저도 고향과 동족들로부터 배척받았다는 사실이 예언자 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빵을 좋아하며 기적을 좋아하고 명예와 권력을 좋아합니다. 자기들 동네에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나왔다 하면 환영을 합니다. 하다못해 고시에 합격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해도 동네의 자부심이 세워집니다.

사람들이 대체로 환영하는 것은 예수님이 광야의 유혹에서 다 배척하셨던 것입니다. 예언자는 빵을 약속하지 않으며 명예와 권력 을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면 그것이 사람들 가슴에 쓰든지 시든지, 용기있게 전파해야 하는 것이 책임이요 사명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언자들은 백성들의 반대와 비난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지난 주일 복음 내용의 연장입니다. 사람들 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되었으며 하느님의 성령이 그분 위에 내리신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자기들 고향에서 그만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에 큰 자랑과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한 인간의 조건을 봤을 땐 별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었고 또한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구름을 타고 내려온 '사람의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곧 잘 하시던 기적도 자기 고향에서만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혜택 이 자기들 동네에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불만을 가졌으며 예수를 잘 안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더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 의 빈정거림이 예수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하느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느님을 저버리고 벌을 받았는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에 대한 큰 모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이 들고일어나 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그분을 벼랑으로 끌고가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이 그 모양입니다. 올바른 소리를 싫어합니다. 사회가 썩어 있으면 더 그렇습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 시대를 경험하면서 시대의 예언자들의 용기가 얼마나 훌륭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독재자의 말로가 또한 어떠했는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언의 직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교회가 가진 사명 중에 첫째 가는 것이 예언직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외치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부정에 물들지 않는 깨끗하고 양심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해서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실로 배척의 연속이었습니다. 헤로데의 칼부림으로부터 십자가의 창끝에 이르기까지 그분은 백성과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희생을 통해서 세상을 건지셨습니다. 당신을 죽인 그 세상과 백성을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희생, 용기를 배워서 예언의 직무에 참여해야 합니다.

------------------------------------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447 34.8%
말씀의 시작.
구정을 앞둔 주일입니다. 한 해 잘 시작하셨나요?

새해는 뭔가 좋은 결심을 하게 만들고 희망을 가지게 만듭니다. 예수님도 오늘 우리에게 그런 희망에 가득 찬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말씀으로 한 해, 새로운 오늘을 시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기원합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우리 가정,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씩이라도 더 이루어지는 한 해 되길 소망해봅니다.

말씀의 여정.
복음 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감정들을 보입니다. 처음엔 은총의 말씀으로 놀라워합니다. 예수님을 좋게 말하고 뭔가 좋은 감정들을 느낌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수님의 말씀 자체에 믿음을 두기보단 어떤 주변 것들에 신경을 쓰다 보니(출신,직 업, 관계.,)예수님께 순종하거나 의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 마음을 꿰뚫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들고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을 밖으로 내몰고,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있는가 하면,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말씀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도 어쩌면 한 해 동안 이런 다양한 감정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 사람속을 꿰찔러 ..,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히브 4,12) 말씀이 때론 기쁘고 벅차기도 하지만, 때론 아프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감탄고토(甘呑苦吐)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은 늘 살아 있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의 완성.
오늘 예수님은 그들 한가운데를 지나가십니다. 말씀의 완성은 ‘들음’에 있지 않고, ‘따름’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어느 순간 유다인들 처럼, 어떤 어둠과 거짓으로 우리 눈과 마음이 예수님으로부터 멀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은 이 세상(우리 자선)을 가로질러 가실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예수님을 그렇게 대하더라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거든, 그 때 그분을 뒤따를 수 있는 용기만 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히브 12,1-2 참조). 저는 확신합니다. 만일 우리가 회당에 있던 사람들과 다르게 그분을 따라 나선다면,그분은 우리의 감정과 모습을 탓하지 않고 뒤돌아보시며 웃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손잡아 주시며 같이 걸어가실 것입니다. 아멘.

----------------------

광주대교구 홍진국 안토니오 신부 : 2019년 2월 3일
  | 02.0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14   [수도회] '착해빠져' 탈인 사람  [2] 1963
713   [인천] 무언의 가르침  [2] 1989
712   [서울] 나의 분신 나의 십자가  [6] 1965
711   [안동]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  [2] 2033
710   [부산] 십자가를 질 각오  [5] 2109
709   [대구] 믿음·희망·사랑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3] 1633
708   [군종] 이 세상에 섬기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2] 1895
707   [마산] 예수님의 죽음에 우리도 공범자이다.  [3] 2157
706   [수원]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  [4] 1927
705   [청주]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1] 88
704   [의정부] 잘 지내십니까  [2] 1668
703   [춘천]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2] 74
702   [원주] 묵묵히 자신의 길 가신 예수님  [1] 1991
701   [대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  72
700   [전주] 제3의 시선  [3] 1906
699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84
698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독서와 복음  [3] 1661
697   [수원]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4] 2173
696   [수도회]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에제 18,23)  [8] 2086
695   [부산] 새로운 탈출  [6] 2096
694   [안동]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  [3] 2335
693   [대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2] 2172
692   [인천] 마음속의 돌  [10] 2421
691   [서울] 사람을 살리는 법과 죽이는 법  [7] 2405
690   [마산]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  [3] 2401
689   [대구] 십자가는 하느님 정의와 자비의 만남  [4] 1903
688   [의정부] 마음껏 돌 던지십시오  [5] 2228
687   [춘천] 용서받은 자녀답게 살자  [5] 2467
686   [군종]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2] 2502
685   [원주] 용서  83
684   [광주/제주] 용서하시는 예수님  [1] 2169
683   [전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2] 91
682   (자) 사순 제5주일 독서와 복음 [간음한 여인]  [2] 1833
681   [수도회] 회개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U턴'하는 것.  [2] 2119
680   [군종] 아버지의 마음으로  [2] 2280
679   [의정부] 중간만 하는 교회?  [2] 2141
678   [춘천] 아버지의 품으로  [3] 2235
677   [인천] 무르익는다는 것  [4] 2050
676   [서울]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6] 2372
675   [마산] 죄인이 죽기를 바라시지 않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4] 2446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