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34.8%
[춘천] ‘주님 일꾼’ 될 준비 됐나요?
조회수 | 121
작성일 | 19.02.07
[춘천] ‘주님 일꾼’ 될 준비 됐나요?

--------------------------------

▪ 제가 있지 않습니까?

---------------------------------

외줄타기 서커스 단원이 있었습니다. 그 서커스의 모든 내용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외줄타기 공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도 식상한 관중은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서커스 단장은 외줄타기 단원에게 난이도가 높은 외줄타기가 있어야 망하지 않는다며 그물 보호망을 치우게 하고 외줄의 높이를 더 올릴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외줄타기 단원은 단장의 뜻을 따랐고, 피나는 노력 끝에 공연의 날이 왔습니다. 이미 여러 홍보가 있었기 때문에 관중이 구름떼 같이 몰려 왔습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써커스 최고의 절정인 외줄타기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높은 줄 위에 오른 외줄타기 단원이 모두 숨죽여 바라보고 있는 관중을 향하여 이상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 제가 이 외줄을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모든 관중은 별 의미 없이 대답합니다.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사람을 업고도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까?” 관중은 또다시 의미 없이 외칩니다. “네!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외줄타기 단원은 더욱 힘차게 외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올라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분을 업고 건너겠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크게 외쳤던 관중 가운데 아무도 그 외줄에 올라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외줄타기 단원은 쓸쓸히 혼자 그 외줄을 건넜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자주, 큰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길도 건너겠습니다!” “당신께서 부르셨으니 끝까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시련과 유혹의 시간이 다가오면 그 모든 믿음과 대답을 쉽게 내어 던집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모두 부르심에 관한 내용입니다. 구약 이사야 예언자의 소명, 바오로 사도의 부르심, 시몬 베드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들은 모두 “네”라고 대답하였고, 끝내 주님의 부르심에 목숨을 내어 던지며 믿음을 증거한 분들이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 나라의 일꾼을 부르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이사 6, 8)

--------------------------------

▪ 저를 보내십시오

-------------------------------

기원전 740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예언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던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 왕궁을 드나들던 상류층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자신의 처지가 죄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이사 6, 5) 근본적으로 살아 마주 뵈올 수 없는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공포에 떨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됩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때문에 사도 성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1요한 1, 10)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를 당신 구원의 도구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성 바오로 역시 부르심을 받은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1코린 15, 9) 그랬던 바오로 역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끝내는 복음선포의 일등공신으로 순교의 삶으로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그토록 많이 배웠던 지식과 모든 지위를 버리고 말입니다. 사람 낚을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던 사도 성 베드로 역시 스승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합니다. 그것도 세 번째 부인에서는 예수님을 절대 모른다고 하면서 거짓이면 천벌이라도 받겠다며 맹세까지 하며 배반합니다. (마태 26, 74; 마르 14, 71 참조)

결국 이사야, 바오로, 베드로 모두 죄인이었음에도 부르심을 받았고, 배반과 실의와 어둠을 살았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와 똑같은 삶이었지만 주님 부르심의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끝내는 그 고난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제 같은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오늘 주님께서는 확실히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5, 10) 그에 대한 우리 믿음의 대답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 8) 이어야 합니다.

------------------------------------------

▥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447 34.8%
오늘은 연중 제5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주님의 부르심과 제자들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과 응답의 과정에서 베드로의 자세가 남달라 보입니다. 어부인 시몬은 겐네사렛 호수가 자신의 삶의 터전이고, 고기잡이에는 도가 튼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곧 시몬은 예수의 초대에 “예” 하고 응답한 것입니다. 시몬은 고기잡이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내세우려 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의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했습니다. 시몬의 바로 이런 자세가 신앙인의 자세이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예” 하고 응답한 시몬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엄청난 기적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려고 그를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시몬은 그 초대에 열린 가슴으로 응답했던 것이고, 그 응답에 예수께서는 놀라운 기적으로 보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늘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하느님의 이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겸허하게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비워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거기 길이 열리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결과가 뻔히 내다보이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우리 자신이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을, 그리고 우리가 지닌 재주와 재능을 버리고 정말 터무니없어 보이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슴을 통하여 들려오는 주님의 부르심을 자주 묵살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경험과 지식을 내세워서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길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든 길을 가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길이 아닌, 자신이 만든 길을 가는 사람은,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닌 재물과 재능, 그리고 경험과 지식이 하느님의 부요함과 권능 앞에 참으로 보잘것없음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크신 권능을 보잘것 없는 우리를 통해서 드러내시기 위함이고, 또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더욱 철저히 우리 자신을 비우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 춘천교구 주보 : 2016년 2월 7일
  | 02.07
447 34.8%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야 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신앙인으로서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마음이 편안하지도 않고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아서 허전함을 느낍니다. 이는 오늘 베드로 사도가 자신의 재주와 능력만을 믿고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허탕을 쳤듯이, 우리도 자기 자신의 재주와 능력만을 앞세우고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서 오는 것일지 모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을 올바로 알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나 아가 자신의 죄마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알기에 하느님을 두려워합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권위·권능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제자가 되는 조건을 일러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 은 바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특출한 능력과 학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감싸주시며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유능하고 일을 잘하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선택하시고 제자로서 살아가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 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사도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힘을 기울여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들처럼 지금 까지 힘을 기울이고 소중하게 여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

춘천교구 이동주 시몬 신부 : 2019년 2월 10일
  | 02.08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14   [수도회] '착해빠져' 탈인 사람  [2] 1963
713   [인천] 무언의 가르침  [2] 1989
712   [서울] 나의 분신 나의 십자가  [6] 1965
711   [안동]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  [2] 2033
710   [부산] 십자가를 질 각오  [5] 2109
709   [대구] 믿음·희망·사랑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3] 1633
708   [군종] 이 세상에 섬기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2] 1895
707   [마산] 예수님의 죽음에 우리도 공범자이다.  [3] 2157
706   [수원]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  [4] 1927
705   [청주]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1] 88
704   [의정부] 잘 지내십니까  [2] 1668
703   [춘천]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2] 74
702   [원주] 묵묵히 자신의 길 가신 예수님  [1] 1991
701   [대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  72
700   [전주] 제3의 시선  [3] 1906
699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84
698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독서와 복음  [3] 1661
697   [수원]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4] 2173
696   [수도회]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에제 18,23)  [8] 2086
695   [부산] 새로운 탈출  [6] 2096
694   [안동]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  [3] 2335
693   [대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2] 2172
692   [인천] 마음속의 돌  [10] 2421
691   [서울] 사람을 살리는 법과 죽이는 법  [7] 2405
690   [마산]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  [3] 2401
689   [대구] 십자가는 하느님 정의와 자비의 만남  [4] 1903
688   [의정부] 마음껏 돌 던지십시오  [5] 2228
687   [춘천] 용서받은 자녀답게 살자  [5] 2467
686   [군종]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2] 2502
685   [원주] 용서  83
684   [광주/제주] 용서하시는 예수님  [1] 2169
683   [전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2] 91
682   (자) 사순 제5주일 독서와 복음 [간음한 여인]  [2] 1833
681   [수도회] 회개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U턴'하는 것.  [2] 2119
680   [군종] 아버지의 마음으로  [2] 2280
679   [의정부] 중간만 하는 교회?  [2] 2141
678   [춘천] 아버지의 품으로  [3] 2235
677   [인천] 무르익는다는 것  [4] 2050
676   [서울]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6] 2372
675   [마산] 죄인이 죽기를 바라시지 않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4] 2446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