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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위선을 버리는 삶
조회수 | 170
작성일 | 19.03.02
[청주] 위선을 버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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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기 눈 속에 들보를 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형제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남들의 단점은 더 쉽게 발견하고 더 크게 보면서도, 자신의 단점은 더 작게 보거나 아예 발견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놀러 온 친구에게 이웃 사람 흉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웃 사람은 아주 형편없는 가정주부라고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이들이랑 집 안이 얼마나 더러운지 보면 아실 거예요. 그런 사람과 한동네에 사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예요. 저기 빨랫줄에 걸린 옷들 좀 보세요. 이불하고 수건의 얼룩을 보시라니까요.” 그런데 자매의 말을 들은 친구가 창가에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 빨래들은 아주 깨끗한데요. 얼룩덜룩한 것은 당신네 유리창이에요.”

같은 일을 해도 나는 되고, 다른 사람들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행동을 해도 나는 괜찮고, 다른 사람들은 괜찮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냉정한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나는 항상 옳고, 다른 이들은 늘 잘못이라는 착각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착각은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단점이 없다는 위선적인 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단점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고치려 하지도 않은 채 남들의 단점만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어찌하여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자기의 큰 들보는 모르는 체하면서도, 형제의 작은 티끌은 그렇게 잘 보느냐는 말씀입니다. 형제의 단점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단점을 제대로 파악하라는 말씀입니다. 형제의 지극히 작은 잘못을 크게 보기 전에 먼저자신의 큰 잘못을 작게 보려는 위선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단점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자신을 속이는 눈 뜬 장님과도 같은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큰 잘못부터 고쳐야만 형제의 작은 잘못을 고치
는 길도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단점을 발견하지도 못하는 눈 뜬 장님처럼, 자신의 큰 잘못은 작게 보면서도 형제의 작은 잘못은 크게 보려는 위선자처럼 생활하지 않는지 한 주간 동안 각자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 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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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이길왕 바오로 신부 : 2019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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