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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조회수 | 182
작성일 | 19.03.02
[원주]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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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말씀을 들으면 몇 가지 고사성어가 떠오릅니다. 우선 [적반하장(戰反鼎校)], [주객전도(主客願倒)]라는  말도 있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또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는 속담도 있습니다. 제 허물은 더 크면서 남의 작은 허물을 들어 시비한다는 말들로 남의 잘못은 잘 찾아내고 자기 잘못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일걷는 표현들 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활해가는 가운데 남을 비판 또는 비평하게 되고 남을 심판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공급(供給)하 는 빵장수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공급해 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납품(納品) 되는 버터가 정량보다 조금모자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 보았는데,예측한대로 정량 미달이었습니다. 화가 난 빵장수는 버터를 납품한 가난한 농부(農夫)에게 변상(辦慣)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 하였습니다.

이 재판을 맡은 재판관은 체포(運補)된 농부의 진술을 듣고 놀랐습니다. 버터를 공급했던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빵장수가 만들어 놓은 1파운드 짜 리 빵의 무게에 맞추어서 버터를 자르고  포장(包裝)을 해서 납품 했던 것입나다.

문제는 그 빵장수가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1파운드 짜리 빵의 규격을 조금 줄이고 양(量)을 줄였던 것 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가난한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그 버터가 함량(含量)미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댓  가는 버터 만든 가난 한 농부가 아니라 양심을 저버린 빵장수가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 하나 완전한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에 대해 비판을 하게 되고, 그 비판은 도를 지나쳐 자신에 대한 비판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 대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비판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보다 관대한 마음가짐 속에서 따뜻한 형제애를 가지고 비판하면 그것은 비판인 동시에 충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남의 결점은 엄격하게 비판하고 비평하면서, 자신의 결점은 관대하게 봐주려는 경향,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말씀을 통하여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안의 편견 선입견 우월감이라는 들보를 먼저 없애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자기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함을 보이는 위선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 제는 관대하라고 하심으로서,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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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곽인호 베드로 신부 : 2019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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