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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유혹에 흔들리지 말자
조회수 | 136
작성일 | 19.03.08
[전주] 유혹에 흔들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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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질에 대한 유혹, 명예에 대한 유혹, 소유에 대한 유혹을 받고 계십니다. 먼저 물질에 대한 유혹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뭔지,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을 두며 살아가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집은 몇 평인지, 어떤 차를 타는지, 월급은 얼마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알면 그 사람에 대해 모두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채우지 못하는 물질에 대한 욕구를 추구해가며 살아갑니다.

두 번째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유혹입니다. 하느님을 시험하고 그분을 자기 이익에 따라 조종하려는 것은 신앙인의 큰 유혹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하느님 생각이, 내 이익과 하느님의 이익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논리대로 움직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그에 합당한 물건이 나오듯이, 하느님을 조정하면 그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기계적인 하느님, 인간이 조정할 수 있는 하느님으로 평가절하시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권력에 대한 유혹은 인간에게 마지막 유혹이면서 인간을 강하게 얽어매는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얼마나 큰지, 인간이 그것에 얼마나 쉽게 넘어가는지는 역사와 현실, 그리고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권력에의 욕망은 마약과 비슷하다고까지 말합니다.

우리들 역시 우리의 일상 안에서 이러한 유혹들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유혹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고 이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유혹을 없애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은 유혹자체가 아니라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악마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셨듯이 우리들 각자도 순간순간 다가오는 유혹들에 흔들리지 말고 과감히 물리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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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정현 암브로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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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등 떠밀려서 들어선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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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는 억지로 끌려서(?) 전쟁터로 들여보내 집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보내진 것과 같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루카 4,1) 내가 원한 건 아닌데, 거친 바람 부는 광야로 향하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편하게 안주하면서 적당히 대충 살고 싶은데, 사순절이라는 거친 모래 바람속으로 들어가도록 등을 떠밀리고 있고, 그 시작에 광야에서 40일간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예수님도 나처럼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평소 왜 이렇게 유혹이 많을까? 유혹 없이살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만큼, 새삼 예수님이 유혹 받으신 이야기는 의기소침한 나에게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구나!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도 우리처럼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은 죄가 아닙니다. 살아있으니까 유혹도 있습니다.

거듭되는 유혹 앞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사탄의 유혹은 거룩한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유혹할 필요조차 없는 쪽에 있다면 사탄도 유혹의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그러니까 유혹을 받을 때 힘들어하지 맙시다. 그런데 한편으로, 예수님이 유혹을 모두 물리치셨다는 말씀 앞에서는 초라해집니다. 거듭되는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모두 물리치셨는데 나는 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에 시작부터 벌써 긴장이 됩니다.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야 하나?

등 떠밀려 들어선 광야지만, 문득 생각해보니…광야는 늘 있어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광야였습니다. 늘 유혹이 있는 곳! 사는 곳이 거친 모래바람 속과 같았음을 생각하면 광야는 바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었구나! 그 길을 걸어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와있네요. 그런 생각하면 광야로 들어가는 이사순시기가 그렇게 크게 부담 가지는 않습니다. 평소 실력이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 광야니까요. 다만 조금만 더 힘을 내봅시다. 풀린 신발 끈을 묶고 느슨한 허리띠를 동이면서, 이미 이 싸움에서 승리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유혹과 싸움에 승리하셨던 예수님의 비결을. 오늘 복음은 알려줍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유혹 때마다 하느님 말씀으로 사탄과 싸우셨으니, 우리도 오늘부터 시작되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예수님처럼, 하느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무기로 사탄의 유혹에 맞설 수 있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하여, 말씀으로 힘을 얻고 유혹을 이겨냅시다.

등 떠밀려 들어선 사순절의 광야지만, 평소 실력도 있는 데다가 광야에는 사탄의 유혹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편인 천사의 도움도 있음을 기억하면서(마르 1,13 참조). 거친 모래바람 부는 광야에서, 특별히 하느님 말씀으로 힘을 얻어 유혹과 맞서 승리하는 은혜로운 사순 시기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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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정천봉 베네딕도 신부 :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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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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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처음부터 '십자기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고난과 박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갖 '유혹'도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고난과 박해를 참고 견뎌야 하는 생활이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온갖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잔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르 14,38)." 또 마귀를 물리치는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마 귀에게서 오든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서 오든지, 아니면 세속이나 자신의 욕망에서 오든지 간에 유혹이 다가왔을 때,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그것을 물리치려고 하는 사람은 백전백패 당합니다.' 기도'는 유혹을 물리치는 유일한, 그리고 대단히 강력한 방법입니다. 주님의 도움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루카 4,1-4)."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라고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예수님 쪽에 어떤 약점이나 빈 틈이 있어서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가 아니라, 악마가 감히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시도한 일입니다. (물론 유혹을 받으셨다는 말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닌데, 뜻을 생각하면, 그냥 유혹이 다가왔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악마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또 성공 가능성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무차별적으로 유혹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 쪽에서도 그 유혹을 물리치기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람은 빵 만으로 살지 않는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살기 위해서는 빵도 필요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또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력'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장 27)."

악마의 첫 번째 유혹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덤불과 비슷합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 8,-14)."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이긴 하지만, 걱정만 하는 것은, 또는 그것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악마의 첫 번째 유혹에 넘어간 것과 같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33)." 신앙인은 '빵'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루카 4,5-8)“

여기서 "내가 받은 것이니"라는 악마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마에게 세상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만일에 악마의 거짓말에 속아서 악마에게 굴복하고 악마를 섬긴다면, 그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지도 못하면서 악마를 섬기는 죄만 짓는 일이 됩니다.

(세속의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려고 악마를 섬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섬기지 않고 그 권세와 영광 자체를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즉 그런 것들을 차지하는 것만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악마를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하느님을 섬기려면 '하느님만' 섬겨야 합니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에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 9-13).“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악마에게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고, 악마는 그것을 요구할 권한도 자격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라는 말씀에는 악마의 말은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안 믿는 사람들, 또는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표징을 요구했을 때에도, 표징을 보여 주길 거절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 8, 12).“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증거물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증거가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으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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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 2019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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