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92%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조회수 | 112
작성일 | 19.04.09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

“그자는 없애고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루카 23,18) 바라빠는 바르(Bar: 아들) 압바(abbas: 아빠)의 합성어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바라보는 저에게 이 이름은 한분 아버지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바라빠를 풀려나게 하고 십자가형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자녀(바라빠)인 우리 모두를 죽음에서 풀어주십니다.

죽음에서 풀려난 이 바라빠가 바로 나임을 당신은 봅니까? 예수님 덕분에 생명을 얻은 바라빠! 그 삶의 여정을 ‘오늘’(구원을 현재화하는 루카복음의 특성) 우리가 걸어갑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23,34) 예수님은 당신을 처형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볼 눈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늘 용서받는 삶을 살고 있음을 봅니다. 바라빠! 당신은, ‘내가 죽인’ 그분이 ‘나를 살리는’ 무한히 용서하시는 사랑임을 봅니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 뉘우치는 죄수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죄로 인한 절망적인 죽음의 순간조차도 그분의 사랑으로 구원의 현재, 즉 영원한 ‘오늘’이 됨을 봅니다. 바라빠! 당신은 지난날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안에서 당신을 위한 ‘오늘’을 봅니까?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23,46) 죽음은 예수님에게 끔찍한 무엇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품으로 돌아가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바라빠! 당신은, 기도 속에서 완전히 내어맡기는 죽음이 삶의 완성임을 봅니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23,47)고 고백하며 십자가가 하느님 체험의 자리임을 봅니다.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군중”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23,48)갑니다. “의로운 분”의 죽음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그들은 변화된 상태로 돌아갑니다. 제자들조차 도망갔음에도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분을 함께 따라온 여자들”은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23,49)고 또한 “무덤을 보고 또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모시는지 지켜보고”(23,55) 나중에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됩니다.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

▦ 광주대교구 천정철 신부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마산] 활동은 기도의 힘으로  [1]
!   [청주] 말씀은 신앙생활의 지도  [2]
!   [서울]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  [8]
!   [수도회]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2]
!   [수원] “그리스도인은 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말씀 속에서 살아야”  [4]
!   [인천] 나의 관심은 어디에?  [10]
!   [대구]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5]
731   [부산] 마르타와 마리아 두 자매의 이야기  [6] 2661
730   [대전] ‘마르타의 손’에 ‘마리아의 마음’이 밀려선 안 된다.  463
729   [안동] “필요한 한 가지”  [2] 402
728   [춘천] 예수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2352
727   [원주] ‘정말 필요한 것’을 행하는 용기  [1] 53
726   [광주] 복 받는 길  [1] 2366
725   [전주]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  40
724   [의정부] 남과 똑같이…  [2] 2425
723   [군종] 좋은 몫  [2] 47
722   (녹) 연중 제16주일 독서와 복음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4] 1692
721   [서울] 보답을 바라지 않는 '풀코스 서비스'  [10] 2445
720   [인천] 새벽을 사는 사람  [9] 2431
719   [마산] 구원을 얻는 길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다  [5] 2323
718   [안동]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루가 10, 29)  [4] 2268
717   [부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5] 2721
716   [대구] 너희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라!  [4] 2280
715   [원주] "이웃을 의도적으로 바라보자"  [1] 2229
714   [수도회] 항구함, 충실성, 지속적인 신뢰  [3] 65
713   [광주] 따뜻한 이웃이 되어 주자  37
712   [청주] 이웃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1] 40
711   [수원] 착한 사마리아 사람 : 그리스도  [5] 2552
710   [의정부]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2] 42
709   [전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5] 2546
708   [춘천]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3] 57
707   [군종] 이웃 사랑은 두 팔로!  [3] 2382
706   [대전] "흘러가는 것과 흘러가지 않는 것"  [2] 75
705   (녹) 연중 제15주일 독서와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2] 1639
704   [대구] 농부이신 하느님의 마음  122
703   [마산] 참된 거처에로의 초대, 평화의 인사  115
702   [수도회] 그리스도의 평화  [6] 1828
701   [춘천]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110
700   [부산]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5] 2274
699   [의정부] 파견받아 떠나는 길에서  [1] 1553
1 [2][3][4][5][6][7][8][9][10]..[19]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