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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조회수 | 90
작성일 | 19.04.09
[춘천]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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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산다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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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철새 떼가 하늘을 나는 광경을 보면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수천 마리의 철새가 떼를 지어 이곳저곳으로 나는데, 신기한 것은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천만 마리 메뚜기 떼의 이동을 보아도 그러하고, 수만 마리의 벌떼들이 꿀을 물어 나르는 모습을 보아도 그러합니다.

자연계에서 부딪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우리 인간들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로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더 가지기 위하여,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서 시기와 질투, 욕망과 이기심의 아귀다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죽이지 않기 때문에 남도 죽이고 저 자신도 죽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죽일 때 나도 남도 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는 충돌과 아픔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 23).

스승 예수님께서는 화려한 왕관이나 세상의 권세를 얻으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도, 우리 자신도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하여 비통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제자들에게 이미 여러 차례 수난을 예고 하셨습니다. 죽어야 살 수 있다는 진리는 당신 지상 공생활 가르침의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의 참혹한 수난 예고를 듣고도 자리다툼을 벌이는 촌극을 연출합니다. 군림하고 싶고, 세도를 부리고 싶은 욕망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또다시 제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한 우리 역시 그 꼴불견의 모습을 자주 답습하고 있습니다. 스승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죽으시는데, 정작 우리는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 살려고 버둥댑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서 영원한 부활을 꿈꾸는 자기모순의 이중적 신앙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 26~28).

이것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유입니다. 이 목적을 완성시키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먼저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몸소 행동으로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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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마음과 돌아갈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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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실 때에도 방한 칸 없으셨으며 먼지 나는 팔레스티나 땅을 돌아다니셔야 했고, 반대자들의 모함 때문에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백성은 ‘호산나’로 환호하고, 제자들은 비로소 권세의 첫 자리를 차지할 꿈에 부풀어 있는데,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비통한 심정이셨습니다.

이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반대자들의 손에 넘겨져 참혹한 죽음의 형틀인 십자가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귀에는 열광의 환호 소리가 들릴 까닭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가슴 깊숙이에는 이 같은 죽음 끝에도 회개하지 않는 불쌍한 인간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질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탄식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루카 19, 42).

2천년 동안 이 눈물, 이 탄식의 말씀을 보고, 또 들었건만 도대체 우리 눈에는 무엇이 씌여 그것을 못보고, 우리 귀에는 무엇이 막혀 그것을 들을 수 없는지,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울 뿐이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사람아, 사람아!” 하시는 말씀이 오늘도 우리 귓전을 울리는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 왕이 이룩한 이스라엘의 영원한 도읍입니다. 이름의 뜻은 ‘평화의 창건’, ‘평화의 집’입니다. 예루살렘은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지켰던 곳이며, 현재 수많은 굴곡의 역사에서도 지켜야 하는 곳이며, 미래 자신들의 후손이 돌아가야 하는 약속의 고향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돌아가야 할 천상 예루살렘을 꿈꿉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의 이름처럼 이 지상에서 누리지 못할 영원한 평화가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환호와 열광은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내 자신을 끊임없이 죽여야만이 갈 수 있는, 바로 평화의 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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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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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하느님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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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며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게 합니다. 금년은 루카 복음서가 우리를 전례로 인도합니다. 독서와 복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낮아지시는 하느님의 겸손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 셨지만,…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6-8), 죽음

우리 주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오십니다. 당신을 믿는 어떤 사람도 차 별하지 않으시고, 모두가 하느님의 귀한 자녀로 받아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가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 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루카 19,37-38 참조) 군중 속에서 제자들을 꾸짖 어 달라는 바라사이들의 요청에 예수님은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 (40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활절로 이끄는 이번 성주간 동안, 예수님께서 스스로 당하신 치욕의 길을 함께 걸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 죄악의 민낯을 발견 하며, 하느님의 겸손과 자비와 사랑이 얼마나 간절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가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 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강도에게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하고 약속하시며 확실한 당신의 승리를 드러내십니다.

수난사를 들을 때 우리는 부정적이고 슬픈 패배의 측면만이 아니라 깊은 내적 기쁨을 우리 마음에 가져야 합니다. 수난은 참으로 하느님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 이요. 사랑이신 하느님의 가장 숭고한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며 하신 마지막 말씀은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46절)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은 아버지께 돌아가 는 것임을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회개를 야기하고, 사랑과 믿음 안에서 영 적 쇄신과 인간의 재생 그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그 광경 을 목격했던 백인대장은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하며 진심으로 회개 하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우리에게 겸손을 촉구하며 우리에게 감 동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악과 죽음을 이기셨으며, 우리에게 승리를 전해 주시기 위해 이기셨음을 압니다. 우리 도 하느님의 겸손, 예수님의 겸손 길을 따라 살아갑시다. 그 길은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로 완성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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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교구 이지철 암브로시오 신부 : 2016년 3월 20일
  | 04.09
447 45.6%
[춘천]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루카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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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입니다. 교회의 가장 거룩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시고, 제자들은 그 뒤를 따릅니다.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진리를 밝히시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주님 빛 속에 걸어가기 때문입니다.(이사 2,5 참조) 누가 주님 빛 속에 걸어가는 사람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 속 나귀 주인은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라는 말씀에 기꺼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를 내어 드립니다. 평화의 임금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나가실 때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덧 올리브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이르시자, 제자들 무리가 다 자신들이 본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합니다. 이 광경에 히브리 아이들도 올리브 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주님을 맞으러 나가 외치며 환호합니다.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그러나 이곳에도 주님의 길을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군중 속에 있던 바리사이들입니다. “스승님, 제자들을 꾸짖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영광 찬미 영예 모두 주님께, 그리스도 임금님 구세주! 아이들의 환호 소리, 호산나, 호산나!”

루카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수난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묵상하도록 인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사를 들을 때 부정적이고 슬픈 패배의 측면만이 아니라 깊은 내적 기쁨을 우리 마음 안에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참으로 하느님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요, 사랑이신 하느님의 가장 숭고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전해주시기 위해 악과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립 2,6-11 참조)

진리를 찾는 사람은 주님 빛 속에 걸어가는 사람이며 진리와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 가 될 것을 믿었던(로마 4,18 참조)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주님 빛 속에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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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이지철 암브로시오 신부 : 2019년 4월 14일
  |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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