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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정말 필요한 것’을 행하는 용기
조회수 | 96
작성일 | 19.07.19
[원주] ‘정말 필요한 것’을 행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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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부산에 있는 어느 자매님이 제게 보낸 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세계 마귀회의에서 인간을 유혹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는데 채택된 안이 「시간을 뺏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삶의 하찮은 일에 바쁘게 만들어 하느님과 가정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마귀들이 논의한 구체적인 예는 이렇습니다. 돈을 마구 쓰게 하자는 안, 부인들과 남편들을 과도하게 일하도록 유혹하여 삶이 공허해지게 하자는 안, 운전할 때 라디오나 카세트를 틀도록 꾀고, 집에서는 늘 TV와 PC를 틀게 하자는 안, 그리고 각종 잡지와 신문을 통해 하루 24시간 뉴스를 보게 하고, 운전할 때마다 광고판이 눈에 들어오게 하자는 안, 우편함을 시시한 우편물과 카탈로그와 광고물, 각종 뉴스레터와 헛된 꿈을 꿀 우편물로 넘치게 하자는 안, 잡지와 TV에 날씬하고 아름다운 모델들을 등장시켜 아내가 싫증나게 하자는 안, 과도하게 휴가나 오락, 스포츠, 연극과 영화를 즐기게 만들자는 안, 삶을 수많은 좋은 일들로 북적이게 하여 그들이 예수의 능력을 구할 시간을 주지 말자는 안 등등이 논의되고 마귀들은 각자의 임무를 위해 의기양양하게 회의장을 나가고 이러한 악마들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바쁘다(busy)」라는 영어단어를 다음과 같이 풀이 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B」-Being:존재하다.
「U」-Under:아래에.
「S」-Satan:사탄.
「Y」-Yoke:지배(멍에).

그러기에 바쁘다고 말하는 분은 사탄의 지배 아래 존재하고 있는 분으로 해석하면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쁨입니다. 현대가 바쁜 이유는 풍족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에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 중 「정말로 필요한 것」을 구별할 수 없다면 우리 인생은 헛된 바쁨에 빠져 공허와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모습이 나옵니다. 먼저 마르타 자매의 시중드는 모습. 이는 음식 접대와 같은 봉사를 뜻합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가정주부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일이요, 사회 통념적으로 주어진 여성의 역할일 뿐 아니라 종교적 선행에 속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인간관계라는 면에서 판단한다면 그분의 의도를 헤아리고자 하는 들음이 어쩌면 더 우선적인 일이요, 시중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으로 필요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마르타 자매가 의미하는 바는 부차적인 일에 얽매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뜻 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마르타는 나의 자화상입니다. 상식적으로 주어지는 일들, 단지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 일들에 얽매여 진정한 삶을 위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해 마리아의 모습.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행위는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는 제자들의 자세입니다. 어느 랍비의 기도에서 자신을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자기 딸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사람은 그녀에게 방종하라고 가르치는 셈이요, 여자에게 율법을 넘겨주느니 차라리 그 율법을 불태워 버리는 편이 낫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여성교육을 백안시하던 시대가 예수님 시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마리아의 이런 자세는 시대의 관념을 넘어서는 놀라운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마리아의 모습은 시대의 상식과 관념을 뛰어 넘는 자의 행위요 조롱과 멸시를 각오해야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관계 그리고 대인관계의 본질에서 생각한다면 이 같은 행위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 우선되는 가치를 가진 본질적인 정말로 필요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발치에 앉아 듣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시대의 통념과 상식의 허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정말로 필요한 것」을 위해 시대의 상식과 통념을 뒤로 미룰 수 있는 용기의 행위요, 거기에 따르는 조롱과 멸시를 이겨나가는 의지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 모습을 보고 실상 필요한 한 가지가 마리아가 택한 몫이었다고 말씀한다는 것은 신앙의 길이란 쉽지는 않지만 바로 이러한 마리아의 삶을 우리 신앙인들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앞에 놓인 다양한 일들 안에서 삶의 목적에 합당한 「정말로 필요한 것」을 「필요한 것」들에서 구별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을 위해 부차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뒤로 미룰 수 있는 용기가 우리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임을 교훈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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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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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좋은 몫을 선택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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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평생을 후회할 수도 있는 존재라고 한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행하였을 것이고 또한 자신이 그 결정에 대하여 어떠한 평가를 내리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내다 보니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푸념을 자주 접한다.

작년에 조금만 더 공부할 걸? 조금만 더 친구들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할 걸? 조금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할 걸? 조금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걸? 등등 많은 것에 대하여 후회하고 반성을 한다.

물론 이러한 고민과 후회는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와 있듯이 마리아와 마르타는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하였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점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몫을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몫을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삶 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더욱 도움을 필요로 한다. 산다는 것은 선택의 것이며 이 선택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 안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어떠한 선택을 하던지 무어라 말하시지 않는다. 그분의 섭리는 자유의 섭리이다. 하느님은 그저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은 단순하고 기본적인 삶이다. 그래서 세부적인 선택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은 자유의 하느님이시다.

자유의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삶의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본받고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본받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예수님의 가치를 살고 나의 삶의 기초를 위대한 계명에 두며, 내가 예수님의 성령에 인도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최상의 창조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선택의 기준은 율법, 권위, 점도 아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내려주신 위대한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라는 계명이 바로 전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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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성현 신부
  |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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