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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평화가 아닌 불, 그리고 분열
조회수 | 145
작성일 | 19.08.15
[의정부] 평화가 아닌 불, 그리고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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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막 길눈을 떠가는 택시기사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은 채 아내까지 병마에 빼앗기고만 그가 절망을 견뎌가며 택시 운전을 하는 건, 아직 어리고 철없는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그는 경쾌하게 손님들께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앞 유리창에 달아놓은 가족사진, 그는 수시로 그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예전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하고 교통지옥을 헤매는 고단한 일이지만, 한 푼 두 푼 모아 빚을 갚는 재미로 쉬는 날도 없이 매연 속을 누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봉투를 두고 내리셨습니다. 황급히 불러봤지만, 이미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할 수 없이 봉투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봉투 속에는 얼만지도 모를 큰 액수의 돈다발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어서 잠시 내려서 담배를 피워봅니다. 그는 약해졌습니다. 돈 때문에 치료 한 번 변변히 못받고 저 세상으로 간 아내, 어깨를 짓누르는 빚더미, 좋은 옷 맛난 것 못 해줘 안쓰러운 아이들. ‘이 돈이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이 돈만 있으면….’ 그의 맘 속에서 욕심과 양심이 엎치락 뒤치락 싸우기를 몇 시간…. 그러던 그가 갑자기 택시를 다시 탑니다. 평소보다 조금 급하게 차를 몰아 그가 당도한 곳은 근처 파출소였습니다. 잠시 후에 경찰에서 연락을 받은 돈주인이 황급히 달려 들어왔습니다. 아주머니가 고맙다고 어쩔 줄 몰라서 인사를 하고, 꼭 사례를 하고 싶다는 아주머니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반나절 동안 천국과 지옥을 열두 번도 더 왔다갔다 했는데, 이제 후련하네요.” 그는 끝내 단 한 푼의 사례금도 받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로 남고 싶어서였습니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고 남들보다 더 갖고 싶고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오늘도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행복(?)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얻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나의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평화가 아닌 불,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과의 분열을 말씀하십니다. 행복이 다 같은 행복이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 인간은 선택해야합니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수많은 내적·외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 ‘함께’라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려는 유혹을 단호히 뿌리쳐야 합니다. 신앙은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가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십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행복으로 가기 위한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한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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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고민수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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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분열을 넘어선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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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아버지, 동생 둘과 전남 순천에서 서울 집까지 함께 내 차로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약 5시간의 이 여정에서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아버지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아버지로 인해서 받았던 상처들을 동생들이 하나씩 꺼내놓으며 어렸을 적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다가 결국에는 아버지가 ‘미안하다’라고 하시며 어렵게 인정하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운전을 하고 있던 저는 ‘우리 가족에게 자신들의 속마음을 내놓는 좋은 시간도 생기는구나!’라고 하며 내심 기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분열되어 있는 듯 보이는 이 시간동안 동생들은 과거의 상처들을 열어놓고 치료하는 시간이었고, 아버지는 자신이 몰랐던 자녀들의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재로는 진심 어린 사랑의 관계가 부족하고 이기적인 자아로 가득 찬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을 보내어 화끈한 성령의 불을 놓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뜻과 계명보다는 적당히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당신 뜻대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성령의 불을 놓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고난의 과정이 있어야 관계 회복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의 회개를 이끌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흠 없는 희생제물이 필요했고 예수님은 그것을 행하러 이 땅에 온 것입니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세례를 베풀려고 예수님은 자신이 그것을 먼저 받았으며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그것을 완성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께서 할 일은 다 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자신이 살던 대로 살 것이냐? 예수님을 따를 사람들과 기존의 삶을 쫓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은 하느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이룩하는 데 필요한 과정입니다.

한국 사회는 학연·혈연·지연 등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끈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끈에 연결되면 문제의식 없이 그 그룹에 매여서 자신의 소리를 못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복음적인 사회적 경향에 대해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소외됨과 분열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참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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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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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세상을 불사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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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모든 것을 재로 만듭니다.
재는 죽음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죽음입니다.
죽음만이 보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보지 못합니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보다 당장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도 큽니다.
그래서 선뜻 불을 지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섭니다.
예수님께서 불을 지르십니다.
금까지의 모든 거짓과 어둠을 살라버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분열을 일으키십니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증오와 상처를 드러내 아물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있기에
지금의 죽음을 기쁘게 맞아들이며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섬김과 나눔
정의와 평화와 진리 가득한 하느님 나라를 일구기 위해
억압과 착취, 탐욕과 위선으로
물든 세상을 사그리 태우는 예수님의 불쏘시개가 되렵니다.
잘라 없애버리기 위한 분열이 아니라
진정으로 보듬어 안기 위한 갈라섬이기에
예수님의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세상을 가르렵니다.
썩은 것을 묻어버리는 거짓 평화가 아니라
썩은 것을 도려내는 참 평화를 갈망하기에
썩은 것을 들춰내는 예수님의 평화의 사도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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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 2016년 8월 14일
  | 08.15
452 23.6%
[의정부]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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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바쳐졌던 성경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시메온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2,34-35)

시메온의 외침, 세상에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겠다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그 불이 아직 타오르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서로 갈라지고, 맞서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대목들은 상당히 자극적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었던 평화의 개념이 흔들립니다. 편안하고,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만을 평화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격과 의아함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단순한 평화, 나 자신만의 편안함, 나 자신만의 안위, 나 자신만의 안정은 평화가 아닌 개인 이기주의에 더욱 가깝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의와 사랑의 실현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실현된 공동체, 정의와 사랑이 지금 여기에,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펼쳐지는 것이 바로 진정한 평화입니다. 개인도 공동체도 모두 진정한 평화를 원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불이 되어 그 말씀이 떨어지는 곳마다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불, 곧 예수님의 가치와 가르침, 그 계명을 따라서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예수님 이외의 것들과 맞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 생각들은 여실히 드러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향한 예수님의 뜨거운 불 속에는 다양한 갈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선택의 갈림길에 왔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불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견디어 내신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져서 우리의 구원,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주일 우리에게 뜨거운 불을 지펴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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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이한신 사도 요한 신부 : 2019년 8월 18일
  |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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