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9 3.6%
[제주] 좁은 문
조회수 | 58
작성일 | 19.08.23
[제주] 좁은 문

------------------------------------------

‘좁은 문’ 하면 갑자기 입시 지옥이 생각나 느낌이 그닥 좋지 않습니다. 요즘 부모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진학 문제라고 합니다. 아니 진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소신학교 입학 시험을 보는데 꼭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하다가 순간, ‘내가 붙으면 다른 한 사람이 떨어져야 하는데?’ 하고 멈칫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 대신 다른 사람을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할 수도 없고, 저는 하는 수 없이 “알아서 해주십시오” 하고 말았습니다.

좁은 문은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좁은 문은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지 않고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잔뜩 구겨 넣은 이기심과 탐욕의 대형 짐가방을 들고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문입니다. 배낭도, 손가방도 버리고 빈 손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인 것이지요. 대신 좁은 문은 남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사랑의 손에는 무한히 넓어지는 자동문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좁은 문은 달콤한 멍에요, 가벼운 짐입니다.

---------------------------------------------

제주교구 임문철 신부
449 3.6%
제주를 떠나 여기 일본에 와서 생활한지 벌써 4개월이 훌쩍 넘어갑니다. 그사이 저는 생각지 못한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일본어 학교에 다니는, 필리핀에서 온 열일곱 살짜리 어린 여학생은 저를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아저씨라는 이 호칭이 영 거북하고, 마냥 듣기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어린 여학생이 저를 부르는 '아저씨'라는 호칭을 통해 저는 신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하고 부끄러운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게 주어진 '신부'라는 호칭과 직책만으로 일종의 권위의식이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였기 때문에 교우들은 저에게 남들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신부였기 때문에 교우들은 저에게 더 큰 정성을 쏟았으며, 저 또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가르치고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집행하기 때문에 '하느님과 더 가까이 있다'라는 특권의식이 저의 의식 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일본에서 같이 공부하는 어린 친구들은 '신부'라는 신분으로 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받는 나이 많은 아저씨로 저를 바라보고 대합니다. 저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서툰 일본어를 더듬더듬 한 마디씩 하는 어리숙한 아저씨의 모습이 바로 진짜 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는 신부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나약하고 브끄러운 저의 본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아무 것도 지닌 것 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자가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좁은 문은 땅바닥에 몸을 굽힐 줄 아는 사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 아는 사람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기 안에 존재하는 모든 욕망과 재물을 비워낼 줄 아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권이의식이나 특권의식이라는 겉껍질과 재물과 이기심과 욕망이란느 겉치장으로 치장한 사람은 결코 그 좁은 문을 통과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로 향한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을 메우고 있는 불순한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래의 나약한 자신의 본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게 자비와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아멘

--------------------------------------------------

제주교구 최성환 광렬 요한 신부
  | 08.23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71   [수도회] 자비와 연민의 하느님  [4] 2493
770   [수원] 하느님의 크신 자비  [3] 2374
769   [인천] “아버지” 하느님  [4] 2316
768   [서울] 너무나 자비로우신 하느님  [5] 2288
767   [의정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3] 2298
766   [군종] 죄인들 중의 가장 큰 죄인  [1] 440
765   [안동] 나약한 인간  [4] 2337
764   [마산] 잃은 자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3] 2434
763   [부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9] 2443
762   [대구] 아버지의 마음  [3] 2362
761   [원주] 머리의 논리보다 가슴의 논리로 살자  [3] 2630
760   [춘천]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2] 84
759   [대전] 하느님 앞에 좀 뻔뻔해집시다.  [2] 2103
758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59
757   [광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2676
756   [제주] 화해와 용서  57
755   [전주]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1] 66
754   (녹) 연중 제24주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4] 1883
753   [수도회] 제자됨의 길  [4] 2423
752   [수원] 제자들의 선택  [5] 2315
751   [인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7] 2448
750   [서울] 예수님을 따라갈 때 내려놓아야 할 것들  [9] 2696
749   [마산] 적극적인 포기  [4] 2565
748   [대구] 동행  [3] 2393
747   [춘천]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  [3] 2471
746   [원주] 천국행 네비게이션  [2] 50
745   [대전] 이제는 내려놓아라.  [4] 2337
744   [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57
743   [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2] 2474
742   [군종] 눈높이 사랑을 향한 버림  [2] 45
741   [제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1] 2381
740   [전주] 신앙생활  42
739   [광주] 삶을 헤아리면서…  52
738   [안동]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5] 2731
737   [부산] 내 삶의 첫째가 무엇인가?  [8] 2351
736   (녹) 연중 제23주일 독서와 복음 (제자는 소유를 버리고)  [3] 1868
735   [수원] 참된 사람살이  [4] 2313
734   [인천] 겸손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7] 2641
733   [청주] 겸손으로의 초대  [1] 410
732   [마산] "낮은 문 - 겸손의 길"  [6] 2507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