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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좁은 문
조회수 | 69
작성일 | 19.08.23
[제주]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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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하면 갑자기 입시 지옥이 생각나 느낌이 그닥 좋지 않습니다. 요즘 부모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진학 문제라고 합니다. 아니 진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소신학교 입학 시험을 보는데 꼭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하다가 순간, ‘내가 붙으면 다른 한 사람이 떨어져야 하는데?’ 하고 멈칫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 대신 다른 사람을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할 수도 없고, 저는 하는 수 없이 “알아서 해주십시오” 하고 말았습니다.

좁은 문은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좁은 문은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지 않고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잔뜩 구겨 넣은 이기심과 탐욕의 대형 짐가방을 들고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문입니다. 배낭도, 손가방도 버리고 빈 손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인 것이지요. 대신 좁은 문은 남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사랑의 손에는 무한히 넓어지는 자동문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좁은 문은 달콤한 멍에요, 가벼운 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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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임문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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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떠나 여기 일본에 와서 생활한지 벌써 4개월이 훌쩍 넘어갑니다. 그사이 저는 생각지 못한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일본어 학교에 다니는, 필리핀에서 온 열일곱 살짜리 어린 여학생은 저를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아저씨라는 이 호칭이 영 거북하고, 마냥 듣기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어린 여학생이 저를 부르는 '아저씨'라는 호칭을 통해 저는 신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하고 부끄러운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게 주어진 '신부'라는 호칭과 직책만으로 일종의 권위의식이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였기 때문에 교우들은 저에게 남들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신부였기 때문에 교우들은 저에게 더 큰 정성을 쏟았으며, 저 또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가르치고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집행하기 때문에 '하느님과 더 가까이 있다'라는 특권의식이 저의 의식 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일본에서 같이 공부하는 어린 친구들은 '신부'라는 신분으로 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받는 나이 많은 아저씨로 저를 바라보고 대합니다. 저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서툰 일본어를 더듬더듬 한 마디씩 하는 어리숙한 아저씨의 모습이 바로 진짜 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는 신부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나약하고 브끄러운 저의 본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아무 것도 지닌 것 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자가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좁은 문은 땅바닥에 몸을 굽힐 줄 아는 사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 아는 사람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기 안에 존재하는 모든 욕망과 재물을 비워낼 줄 아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권이의식이나 특권의식이라는 겉껍질과 재물과 이기심과 욕망이란느 겉치장으로 치장한 사람은 결코 그 좁은 문을 통과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로 향한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을 메우고 있는 불순한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래의 나약한 자신의 본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게 자비와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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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최성환 광렬 요한 신부
  |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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