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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조회수 | 116
작성일 | 19.09.07
[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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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는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하고 반문하며, 인간의 지혜로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주시길” 청해야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배꼽이 있습니다. 배꼽은 나의 부모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생명과 성별과 재능을 받았다는 표시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셨기 때문에 나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하고 질문하기 보다는 “하느님께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실까?”를 생각하며 나를 만드신 하느님께 질문하고 그분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 이 누구인지 알기 위하여 자신의 불안전과 불확실, 자신의 약함과 죄 많음, 자신의 삶과 죽음을 그대로 안고 하느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 설 때, 거룩한 영께서 지혜를 주시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재능과 소명을 온전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에서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세상의 좋은 것들을 거저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십자가’와 ‘고통’을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나의 ‘십자가’와 ‘고통’은 자기 자신(생명, 성별)과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재능, 소명)들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길 때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한 말씀의 영을 통해 전해주시는 ‘지혜’를 거부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의 참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무겁고 싫증나는 ‘십자가’와 ‘고통’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도 처음부터 ‘십자가’이고 ‘고통’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욕망과 욕심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십자가’와 ‘고통’은 나의 것입니다. 나의 것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각자의 ‘십자가’ ‘고통’을 짊어지고 끌어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십자가’와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참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참 행복이고 기쁨이었기 때문에 참 행복 과 기쁨은 ‘십자가’와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 ‘십자 가’와 ‘고통’을 짊어지시고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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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유재훈 바오로 신부
2016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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