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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조회수 | 91
작성일 | 19.09.10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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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은 그 유명한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타락한 아들이 아니라 아들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비유에 나오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작은아들입니다. 작은아들은 당돌합니다. 마치 아버지의 것이 제 것인 양 착각하고 내어 놓으라고 큰소리치는 파렴치한 인간입니다. 또 힘도 들이지 않고 얻은 아버지의 재산을 제 것인 양 탕진해 버리고 마는 뻔뻔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오늘 복음을 통해 볼 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서는 회개한 죄인의 표상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잊고 지냈지만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잘못을 고백하는 아들에게 아무런 꾸지람도 교훈의 말도 일체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제일 좋은 의복을 갖추어 주라고 종들에게 분부합니다. 감히 아들이라 할 자격조차 없는 아들을 다시 아들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바로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을 항상 용서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표상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큰아들입니다. 큰아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곁에 머물면서 아버지의 일을 잘 도와 드립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비로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버지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보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은 손해 볼 것도 없으면서 회개하고 돌아온 자기의 형제에게 베푸시는 아버지의 자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것을 가지고 좋은 일에 쓰시는데 그것을 보아주지 못하는 옹졸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큰아들이나 작은아들로 비유되어지는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크나큰 은혜로 살아가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할 것은 아버지의 크신 자비이며, 행해야 할 것은 작은아들처럼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서는 회개일것입니다. 또한 큰아들과 같이 용서하지 못하는 굳은 마음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로 살아가는 사람답게 나의 형제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삶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때 인간은 비로소 용서의 기쁨과 재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 힘도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우리는 너무나도 든든한 아버지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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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이수한 시릴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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