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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조회수 | 97
작성일 | 19.09.10
[춘천]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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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님 -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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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히브리어로 ‘얼굴’이 ‘파님’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원이 죄 많은 인간을 향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용서와 자비, 사랑의 얼굴을 돌리신다는 뜻임을 알았을 때, 진정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옛 시인의 노래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 5)

인간이 얼마나 마음에 드셨으면 모든 창조가 끝나고 마지막 창조물인 인간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 하셨을까?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비로소 “참 좋았다”(창세 1, 31) 하셨을까?

그렇게 좋으셨던 하느님께서 노아의 홍수 때에는 인간이 짓는 죄에 노여워하시며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창세 6, 6)고 하셨지만 이 또한 인간을 영영 내치지 않으시려는 하느님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같이 아름다운 단어인 ‘파님’을 생각 하다가 ‘파’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너무 고맙고 감사한 것은, 우리 한국 음식에 파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쪽파든 실파든 대파든 양파든 말입니다. 그렇게 먹는 파 뒤에 존칭어 ‘님’을 붙이면 하느님의 얼굴이 된다? 참으로 신비로운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식사 중에 하느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거듭 짓는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 ‘파님’의 얼굴을 보이시는데, 나는 나에게 상처를 끼쳤다고,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나에게 약간의 손해를 끼쳤다고 “그깟 놈 얼굴 다시는 보나 봐라” 하는 식으로 얼굴과 등을 돌리는 경우가 없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용서하지 않고 주님의 용서를 바란다면 그것은 억측에 불과합니다. 회개하는 나를 사랑과 용서의 얼굴로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생각한다면 나 또한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복음의 가산을 탕진한 작은 아들의 회개를 기뻐하시며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잘라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 7)

때문에 이렇듯 용서를 받은 우리 역시 용서할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카 1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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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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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헬렛의 저자는 말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코헬 12, 5; 7)

회개란 “되돌아간다”입니다. 이제껏 걸어 왔던 그릇된 길을 돌아 선의 길을 찾아 되돌아가는 것, 하느님을 떠나 왔던 길을 돌아 하느님 품을 찾아 되돌아가는 것, 세상에 미련을 두고 온갖 세상일에 파묻혀 살았다면 이제는 천상의 집을 목표로 되돌아가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목숨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분명 우리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되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신앙인입니다. 때문에 죽은 망자를 일컬어 “돌아가셨다”라고 하는지 모릅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같은 행복은 분명 회개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복음의 탕자 역시 자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갔기에 비로소 자신의 집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같은 회개가 있을 때,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과거의 어떤 것도 질책하시거나 묻지 않으시고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 24)

그리고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가장 좋으신 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은 늘 팔을 벌려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 같은 희망의 하느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에, 하루하루를 그분께 의탁하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희망에 반대되는 낙담, 실망, 절망, 회의, 분노, 포기, 우울함 등에 하느님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성령을 슬프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아빌라의 대 테레사 성녀께서는,“가장 위험한 병은 정신을 하느님께 집중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바로 그 약한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언제든 우리가 회개하여 돌아서면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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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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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꽤 괜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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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할 수도 타락할 수도 있고, 아버지의 품을 거추장스러워하면서 멀리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고 다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속담 중에 “사람이 콩깍지를 먹게 되면 하느님께로 돌아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로 돌아선다’는 말이 ‘회개’라는 말의 본뜻입니다. 운전할 때 ‘U턴 한다’고 생각하면 적당할 듯싶습니다.

루카 복음 15장은 되찾은 기쁨을 연달아 전하고 있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은 기쁨, 잃었던 은전을 찾은 기쁨, 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타락한 아들이 되돌아왔을 때의 기쁨. 비슷한 주제가 세 번이나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되찾은 기쁨이 비할 데 없이 크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인지 양을 찾은 목자도, 은전을 찾아낸 여인도, 아들을 껴안게 된 아버지도 모두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모두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은전에 이자가 붙은 것도 아니며, 아들이 금의환향한 것도 아닙니다. 그다지 기뻐할 일이 아닌 듯 싶습니다. 그러나 마치 없던 것을 새로 얻은 것처럼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목자와 여인과 아버지의 심정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믿음이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유혹에 빠져 허덕이면서 제자리를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갈등할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고, 아버지의 품을 거추장스러워하면서 멀리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고 다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내치지 않으실 뿐더러 오히려 팔을 벌려 맞아주시며, 과거의 부정과 실패에 대해서는 결코 묻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올해 월드컵이 열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몇십 년을 독방에서 옥살이를 하여야 했던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데 있다.”

다시 일어서고 돌아가면 우리도 아버지께 기쁨을 안겨드리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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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박재현 시메온 신부
  |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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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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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의 직업은 ‘목자’였습니다. 양치는 목자가 아니라 소를 치는 ‘목자’ 말입니다. 고향집 산기슭에서 목장을 하셨습니다. 헌데 가끔 소들이 탈출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집 나간 소는 온 동네, 온 산기슭의 밭들을 마구 헤집고 다닙니다. 그럼, 온 집안, 때로는 온 동네에 비상이 걸립니다. 그 소를 다시 데려오기 위한, 그런 한 두 시간의 애타함 뒤에 잃어버린 소를 찾아서 데려옵니다. 어렸던 저는 화가 났습니다. 헌데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기뻐하셨습니다. 그 소가 망쳐버린 밭주인을 찾아가 용서를 청해야 했음에도 아버지는 그 소를 찾았다고 통닭 파티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 잃어버렸던 소에게는 맛난 여물을 주셨습니다. 고생했다며……. 훗날 생각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내가 이렇게 착하구나! (하하하)’

오늘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기뻐하는 목자의 마음을 닮으라하십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아주 단순한 논리입니다. 헌데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러니, 그런 속담도 있겠지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질투했던 사람들,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하고 배 아파 했다면, 누군가 상처받을 때 오히려 기뻐했다면, 용서를 청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외면했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 하시는 겁니다. 내가 없이 보았던 그 사람들, 내가 쉽게 대해버렸던 그 사람들, 내가 상처주고아픔을 주었던, 그리고 내게 용서받기를 원한 그 사람들이 주님께는 ‘잃었던 한 마리 양’ 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회개할 것이 많은 죄인이기에, 오늘 주님의 초대가 기쁩니다. 그런 주님이시라서 오늘도 행복합니다. 함께 기뻐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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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원용훈 스테파노 신부
2016년 9월 11일
  |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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