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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화장실 갈 때의 마음!
조회수 | 62
작성일 | 19.10.10
[청주] 화장실 갈 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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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 제1독서와 복음 말씀은 모두 나병의 치유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나병에서 치유된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과 이방인 한 사람은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한 진심을 담은 깊고 뜨거운 감사 표현은 참된 믿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 이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감사를 드러내는 선물의 값어치는 결코 값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오늘의 복음 말씀 중 나아만 장군과 사마리아인의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 주님께 감사해야 할 일을 잊고 태연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왔는가 생각해 봅시다. 우리 믿는 이들이 주님께 당연히 감사해야 할 때도 감사를 잊어버리고 사는데 반해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절대자, 신에게 감사하고 사는 것을 보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죽을 죄를 용서받고도 별로 감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냅니다. 화장실 갈 때의 마음과 나왔을 때의 마음이 다르다면 큰 문제입니다. 내가 원할 때는 간절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일단 일이 성사가 된 연후에는 그 전의 상황을 전부 잊어버린 양 행동합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우리 인간은 잘 되면 내 탓이고 잘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리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을 때의 심정을 생각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내 처지를, 내가 한 짓을, 내가 행한 잘못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너무 감사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잠자리에 들기까지 항상 드러나지 않게 도와주시는 하느님과 이웃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기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모든 것을 끝까지 참고 견디면 우리를 굽어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좋은 길로 가도록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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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박치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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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도깨비 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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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깊은 곳에 도깨비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도깨비 마을에는 온갖 보물로 가득한 보물 창고도 있었습니다. 산 아래 사는 사람들 이 보물 창고 이야기를 듣고서 보물을 훔치기 위해 도깨비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보물을 원하는 만큼 자루에 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자루 가득 보물을 담았고 또 다른 어 떤 사람은 두 자루 가득, 세 자루 가득 보물을 쓸어 담았습니다. 각 자 보물 자루를 어깨에 걸머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사람들 이 모두 내려간 후, 도깨비들이 돌아와 보물 창고에 들어갔습니다. 텅 빈 보물 창고 구석 모퉁이에 나무로 깎아 만든 보잘 것 없는 방망이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보물 창고에서 가장 귀한 물건, 바로 도깨비 방망이였습니다. 도깨비 방망이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자루를 짊어진 채 힘겨워하며 산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랍니다.

아람의 장수 나아만이 복된 사람인 것은 그의 나병이 치유된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나병 치유를 통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병을 치유 받은 10명 중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온 사마리아 사람이 복된 것은 그가 나병 치유를 통해 한 분이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아 뵈었기 때문입니다(루카 17,16 참조).

요한복음 2장 23-24절에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파스카 축제 동안 예루살렘에 있었던 많은 군중이 예수님이 행한 기적을 보고 그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그들을 믿지 않습니다. 신뢰하지 않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믿는데 정작 예수님이 군중을 믿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기적을 보고 당신을 믿는 이들의 믿음을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신 겁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보고 당신을 믿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믿음이 가짜이기 때문이 아니라 기적을 보고 믿는 초보적 신앙은 세속적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 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6장 66절은 불완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초보적 신앙인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빵 다섯 개로 남자들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나서 그 이튿날 바로 그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 대다수가 ‘이 말씀은 듣기가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라며 중얼 거리면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기적으로 예수님 을 믿긴 믿었는데, 정작 그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했던 신앙의 정수는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 마치 도깨비 보물 창고를 턴 사람 들이 자기 기준에 들지 않았던 도깨비 방망이는 내버려둔 채 가버 렸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떠나 버립니다.

강생구속(降生救贖), 인문학과 과학의 발전이 절정에 이른 지금 시대에 너무 보잘 것 없고 빈약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게 바로 도깨비 방망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나는 선택된 이 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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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안철민 아브라함 신부
2016년 10월 9일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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