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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감사의 기도
조회수 | 63
작성일 | 19.10.10
[군종] 감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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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주제는 ‘감사’입니다. 감사라는 말을 듣게 되면,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셀 간부 수련회를 생각합니다. 이 수련회의 주제도 감사였습니다. 이곳에서 주제 나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조대표로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옛날 옛날에 한 나그네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는데도 그는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산을 넘어가야만 하였습니다. 왠지 으슥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는 그 산을 넘어야만 했습니다. 산 중턱 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제까지는 당신을 그렇게 열심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에서 벗어난다면, 당신을 믿고 잘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그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을 때, 호랑이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날 이후 그 나그네를 본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냥 재미있으라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도 청원기도보다는 감사기도를 즐기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청하는 기도만 드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하고, 모자라다고 아우성하면서 더 많은 것을 청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우리 생활의 작은 것에서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러한 일을 통해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생활하면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서구절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성서구절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1데살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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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최정훈(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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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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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로 다가와 간절히 치유를 바라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나병이라는 것이 당시에는 큰 죄를 지어 받은 벌로 인식되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철저히 같은 민족들과 괴리되어 유대인들의 어떤 모임에도 참석할 수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나도 나는 죄인이라 외치며 마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지극히 소외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에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사람들로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유린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깊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극심한 소외와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들이 가졌던 외적 나병뿐만이 아니라 영혼에 물든 지독한 나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물리적인 나병을 치유했다고 본다면 그다지 큰 감동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병 환자들이 겪었을 그 고통과 외로움을 생각한다면, 더군다나 사람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없었던, 그마저도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했던 나병 환자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섰을 때, 예수님은 이를 뿌리치거나 법도대로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안아주신 예수님과 나병 환자의 만남은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 마음이 걸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감동적인 내외적인 치유를 받은 이들 열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은 그 길로 사라져 버리고 단 한 사람만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예수님께로 되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저라면 어땠을까요? ‘당장에라도 다시 돌아와 백배해가며 감사를 드리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그렇게 말하면 전 너무나 염치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도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고 당신의 자녀로 또 사제로 불러주셨음에도 감사하기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삶이지요. 이미 세례를 통하여 서품을 통하여 제 영혼의 나병을 치유하시고 당신께로 초대해주셨는데 여전히 감사는 뒷전이고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함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왜 이렇게밖에 해주지 않느냐고 따지고 들기 일쑤입니다. 마치 부모님께 큰 사랑을 못 보고 감사함을 드리지 못하면서 흙수저니 금수저니 따져가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어린이들처럼 하느님은 무조건 나에게 퍼주기를, 용서해주기만을 더 바랍니다. 나병이 치유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데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이렇게 건강하게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는 것이지요. 감사할 줄 몰랐던 아홉 명의 치유자에게는 치유는 있었지만, 아직 구원은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함을 알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치유와 함께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에 감사하는 것들을 먼저 찾아봅시다. 하다못해 지금 성당에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봅시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 인생의 순례 여정을 목마름의 사막이 아니라 향 내음 가득한 꽃밭으로 만들고 인생 순례의 여정을 구원이라는 종착점으로 인도하여 줄 겁니다. 한 주간도 우리를 무한히 어루만져 주시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더불어 가까이 내 가족, 또 나의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하루가 되기를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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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도훈 라파엘 신부
2016년 10월 9일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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