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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감사는 믿음의 축복
조회수 | 54
작성일 | 19.10.10
[광주] 감사는 믿음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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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서의 내용을 보면 하느님의 백성도 아닌 자들이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드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하느님의 백성은 도무지 믿음이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열차표는 선민이나 세례 자체보다도 신앙의 감사 행위에서 얻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독서에서는 이방인이었던 시리아의 장군인 나아만이 이스라엘 의 예언자 엘리사를 찾아가서 자신의 문둥병을 고친 내용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께서는 당신의 백성 중에서는 한 사람도 고쳐 주시지 않고 믿지 않는 이방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도 원수의 장군을.

이유가 뭐냐? 말할 것도 없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도대체 믿음이 없었습니다. 지도자부터 썩어 있었고 더군다나 우상을 섬겼습니다. 여기서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최고의 모독이요 또 자존심 파괴 행위였습니다. 가정 부인이 외간 남자와 줄곧 놀아난 격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결국 하느님의 백성에서 멀어집니다. 아예 떨어져 나갑니다.

믿음이 없으면 감사도 없습니다. 불효자는 달리 불효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마움을 모르니까 불효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마움을 아는 것 하고 모르는 것 하고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납니다. 알면 행복합니다. 고맙다는 그 자체가 큰 행복입니다. 그러나 모르면 불행합니다. 고마움을 모른다는 그 자체가 불행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구제불능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그 즉시 치유받게 됩니다. 여기서 병이 나았다는 것은 저주받은 천형의 삶에서 축복받은 은총의 삶으로 구제받았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축복을 받으면서도 감사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백성으로부터 천대받고 배척받은 사마리아 사람만은 예수께 와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속담에 "화장실에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붙잡고 매달리고 사정해서 도움을 받았지만 그러나 감사가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아무리 육체적인 나병에서 해방되었다 해도 영적인 나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를 찾아가서 살려 달라는 애원을 하면서 돈을 빌려 갔는데 약속날이 되자 안 주는 것입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고 미루다가 나중에는 아예 먹고 뒹굴어 버렸습니다. 떼어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돈을 준 자는 큰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자기 돈도 아니었습니다. 사방에서 얻어다 준 것이었습니다.

친구 사이라 차용증을 써 준 일도 없고 또 증인을 대고 내세울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저쪽에서는 법대로 하라면서 버티는데 이쪽에서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고통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돈 주고 뺨 맞은 격입니다. 세상에 그처럼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철면피의 인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돈을 떼인 분이 나중에 그러는 것입니다. "신부님, 저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습니다."하고요. 돈을 크게 떼이고도 얻은 것이 많다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잃으면서도 얻는 사람이 있고 얻으면서도 잃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으면 잃으면서도 얻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으면 얻으면서도 잃게 됩니다.

어떤 분은 세례받은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은혜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가 닫혀져 있으면 세상이 닫혀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효자들이 늘 그럽니다. 부모님이 자기에게 해 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없다고 판단하니까 행패를 부리는 것입니다.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누구는 고달픈 십자가를 무겁게 지고 있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마치 그분의 선물인 양 감사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래서 행복합니다. 돈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요 건강하다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줄을 알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은 감사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믿으면 병들어도 은혜로우며 가난해도 감사드리게 됩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거꾸로 말씀 드릴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분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해도 감사하다고 외쳐 보십시오. 믿음의 축복을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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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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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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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많은 말 중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는 풍요로움과 기쁨이 담겨있어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삶, 그것을 입술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만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자신에게 베풀어진 치유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면서 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았던 그는 비로소 예수님께 구원을 얻습니다. 살아가면서 참으로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명과 하루하루의 시간들, 그리고 가족, 친지, 친구들, 능력과 재능 등등….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거저 베풀어주신 선물입니다. 이 모든 선물을 거저 받았으면서도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열아홉 살에 뇌막염을 앓아 앞을 못 보는 중증 장애인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배영희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래서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분명히 이 시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합니다. 적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했던 이 시인 앞에서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보다는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이번 한 주간을 보내면서, 진정 내가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빛나는 태양, 소리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들, 꽃들, 새들, 그리고 친구들, 부모님, 그리고 바람처럼 언제나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것을 발견하는 그 순간 우리의 삶은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하여 더욱 행복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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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배재승 바오로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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