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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감사하는 마음으로 ‘탓’은 나에게”
조회수 | 70
작성일 | 19.10.10
[춘천] “감사하는 마음으로 ‘탓’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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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탓 아닌 남의 탓

여자인 하와가 만들어졌을 때, 남자인 아담은 잠에서 깨어나 환호성을 외칩니다. 이제껏 짝이 없었던 아담에게 자신의 동반자가 생긴 것이 기뻤을 것입니다.

그 뒤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게 됩니다. 하와는 그 열매가 하느님과 같아진다는 유혹을 받고 열매를 딴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남자인 아담에게 줍니다.

아담도 그 열매를 먹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금기의 열매를 먹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리고 숨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분명 아담에게 왜, 열매를 먹었느냐고 추궁하십니다.

그쯤 되면 사내대장부가 풀숲에서 나와 자신이 따먹었다고,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고백했어야 합니다. 여자인 하와의 탄생을 그토록 기뻐하였던 아담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대답은,“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 12) 였습니다. 달리 번역하면 “저 여자가 주어서 먹었습니다”가 될 것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고자질(?)은 분명 남자가 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묵상해 보면, 결국 인간의 원죄란 늘 감사의 삶을 살지 못하고 모든 탓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것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 안에서 자신의 탓을 뉘우치며 ‘제 탓이요’를 고백합니다. 말로는 가슴을 치며 자신의 탓을 고백하면서도 실생활에서는 늘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늘 불평불만의 삶이며, 남을 원망하거나 하느님께 항변하며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나를 위하시는 사랑의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못할 때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원망의 삶을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오늘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시며 끝까지 인내와 성실의 믿음 생활을 하라고 격려합니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2티모 2, 11~12).

▣ 너무합니다

우리는 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받게 된 첫 번째 유혹은 에덴 동산에서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모든 과일나무 열매를 다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악마가 노린 것은 그 한 그루 나무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모든 것을 다 받았는데 하나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하여 섭섭해하며 너무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자녀들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부모님들, 자식의 미래를 위하여 당신의 생애를 송두리째 희생하셨는데, 자식들은 부모의 마지막 남은 재산까지도 자신들의 욕망을 위하여 내어 놓으라 합니다.

부모님들께서 조상에 물려받은 이것만은 안 된다 하시면, 그 마지막 하나를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 부모를 원망하고 해를 끼치는 일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신 감사의 사랑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악마의 유혹도 인간의 이 같은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에 반하여 악은 거꾸로 된 질문을 여자에게 던집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 1).

이때 여자의 마음속에는 이미 악의 유혹이 들어갔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도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를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 하느님께서 너무하신다는 배은망덕의 마음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한 이들에게서 감사의 마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더 가지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이내 서운함과 섭섭함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작은 것을 잃어도 분노를 표출합니다. 내가 남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너무 한다는 마음이 들 때, 악은 이미 우리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이 작은 것을 얻었을 때 기뻐하며 감사를 드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 중 치유를 받고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은 그야말로 유다인들에게는 천대와 멸시를 받던 인생 밑바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렸고 그것이 그를 구원으로 이끈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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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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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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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의 자비는 누구나 받을 수 있으나 ‘구원’은 아주 작은 차이를 깨닫고 실천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자신들의 병을 낳게 해주십사 청을 드립니다. 그들의 간절한 청을 예수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병이 다 낳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인으로 살아가며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가 바로 이 나병환자들과 같은 기도가 아닐까요? 우리는 항상 주님의 자비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깨달을 때면 우리는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은 참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나병환자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들에게도 항상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당신에게 청하는 가련한 이들의 기도를 주님께서는 물리치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항상 부족하지만, 항상 죄인이지만 주님의 자비가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 명의 환자 중에 단 한 명만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치유해주신 예수님께 땅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분명 열 사람이었건만 예수님을 찾아온 이는 그렇게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나머지 아홉 사람은 치유된 자신의 몸을 자랑하고 다녔을 것입니다. 또 치유된 건강한 몸으로 자신의 생을 기쁘게 살아가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거기에서 끝났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나의 선물을 더 받았습니다. 바로 ‘구원’이라고 하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바람인 구원을 그는 얻은 것입니다. 건강한 몸을 얻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단 하나를 더 했을 뿐입니다. 바로 자비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 것이지요. 아주 쉬운 일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이 쉬운 일이, 이 당연한 일이 구원을 주었습니다. ‘구원’은 이렇게 작은 차이에서 옵니다. 이 세상에서의 자비는 누구나 받을 수 있으나 ‘구원’은 아주 작은 차이를 깨닫고 실천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감사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항상 더 많은 것을 주십사 청하고만 계시는 것은 아닌가요? 주님이 안타까운 눈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여러분을 찾고 계시는 주님께 나아가 감사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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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장성준 안셀모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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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지금, 감사하며 살아가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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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에 있는 한 마을을 지나십니다. 바로 그때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합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10명의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에 즉시 사제들에게로 향합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들의 몸은 예전처럼 성해져 깨끗한 피부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중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이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와 그분 앞에 엎드려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또 오늘 제1독서에서는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다가 치유를 받았던 내용을 전해 줍니다. 그는 예언자 엘리사의 말대로 요르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급니다. 그러자 그는 치유를 받아 그의 살은 어린아이처럼 되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나아만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합니다. “이제 저는 말합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치유의 기적 보다는 치유를 받고 난 후의 병자들의 태도입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나아만은 치유를 받고 신실한 믿음을 보이고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통과 시련 한 가운데에서는 큰 소리로 하느님께 부르짖다가 그 고통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때는 싹 돌아서버리는 이기적인 삶의 자세를 꾸짖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시련을 이겨냈으면 은총과 도움을 주신 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의 복음말씀과 제1독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온통 감사드려야 할 일들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태어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서 밤에 잠들기까지 그리고 잠들어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은총…….

이렇듯 삶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기쁨과 행복들을 내려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주님께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10명 중 단 1명만이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던 것에 대해 주님께서는 한탄하며 말씀하십니다.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분명 감사하지 못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늘 불평불만의 삶이며, 남을 원망하거나 하느님께 항변하며 불만을 늘어놓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을 상기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못하며 살아갈 때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원망의 삶을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하며 오늘 복음의 아홉 명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주님께 감사드리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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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김상혁 노르베르토 신부
2016년 10월 9일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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