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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옳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
조회수 | 34
작성일 | 19.10.17
[군종] 옳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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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부모님께 많은 투정을 부렸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것도 사달라. 저것도 사달라.’ 하면서 심술궂은 생떼를 많이 부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을 때 부모님은 합당한 것이라면 아무리 집안이 가난하더라도 어떻게라도 사주셨지만 부당한 것이라면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다가 눈물이 날 만큼 혼을 내시면서 그 뜻을 접게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한가득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던 철부지 아들을 잘 키우고자 하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자녀의 눈물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분명 더 아프셨겠지만 그런데도 옳은 길로 이끄시려 했던 부모님의 마음에 고개가 숙어집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하물며 동물도 자기 자식에게는 필요한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느님이야 오죽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도 당신 자녀들의 간절한 기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 때때로 꼭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에 대한 판단은 하느님의 몫이지 우리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가 이것도 달라 저것도 달라 하는데 자녀가 원한다고 아무거나 다 사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독을 달란다고 독을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아가 내가 원한다고 하느님이 그대로 준다면 그래서 내 뜻대로 되는 하느님이라면 그게 어디 하느님이시겠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에서도 보면 불쌍한 과부의 간절한 애원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안하무인 하던 재판관조차도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려 하지만 그 판결이 온전히 불쌍한 과부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수도 있는 겁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어버이가 우리의 청을 듣듯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이 되는 오류를 범하고 맙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되지 않으면 하느님은 무력한 것이나 부재(不在)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도 결국에는 내 뜻만을 고집하는 철부지 어린이가 되는 겁니다. 판단은 하느님의 몫이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되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는 연습을 하면서 겸손한 순명의 은총을 청해봅니다. 순명이야 말로 나를 이끌어주시는 하느님 앞에서 가져야 할 미덕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청하듯 하느님께 우리의 청을 겸손하게 청해봅시다. 그 청이 합당하다면 분명 그에 따르는 것을 주님께서는 들어주실 겁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명하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인생의 여정에 분명 사랑하는 당신 자녀들을 잘못된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겁니다. 종국에 하느님의 품에 모두 함께 안길 그 날을 희망하며 또 기쁜 한주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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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도훈 라파엘 신부
2016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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