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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부활 이후의 새로운 삶
조회수 | 58
작성일 | 19.11.06
[원주] 부활 이후의 새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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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7,1-14에는 장렬한 순교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일곱 명의 아들들이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차례로 순교하고 마침내 어머니까지도 믿음을 지켜 순교합니다. 이들이 신앙을 지키고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다시 살려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거라는 확고한 믿음, 곧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인 테살로니카 2서 2,16-3,5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교우들의 마음을 격려해 주셔서 그들이 온갖 좋은 일과 행위로 굳건해지기를 청합니다. 또한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다다라 그 의미를 잘 깨닫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는 교우들에게 자신이 악인들에게서 벗어나도록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오늘 복음 루카 20,27-38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으로 이루어진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사두가이 몇 사람이 부활 문제를 교묘히 꾸며 예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 내용이 28-3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신명기 25,5-10에 나오는 수혼법을 내세웁니다. 이 법에 의하면, 형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은 경우에는 시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그 혈통을 잇게 해 주어야 합니다. 사두가이들은 일곱 형제가 모두 한 부인과 결혼하였다는 가정을 세운 후에 그들이 모두 죽은 다음 부활할 경우에 그 부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죽은 이들이 어떤 모양으로 부활하는지 답변한 다음(34-36절), 이어서 부활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 곧 출애굽기 3,6을 제시합니다(37-38절).

이스라엘에서 부활 신앙이 싹튼 때는 대략 기원전 2세기 경이기 때문에 모세오경에는 부활신앙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세오경만을 받아들이는 사두가이들로서는 부활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 후에도 현세의 삶이 그대로 계속되리라는 전제를 가지고 예수께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결혼 생활은 현세의 삶에 속하는 질서로서 부활 후 내세의 삶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질문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십니다(35절). 현세의 삶과 부활 후의 내세의 삶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부활 후의 사람들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질서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부활한 사람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법이 없기 때문에 부활 후에는 다시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36절). 결혼은 자녀를 낳아 대를 잇는데 그 목적이 있는데 부활 후에는 다시 죽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를 잇기 위해서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출애 3,6을 들어 부활신앙의 정당성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섬긴 신앙 선조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 능력으로 다시 살리신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제대로 답변을 못할 경우 타격을 주어 비웃음을 사게 하려고 부활에 대하여 사두가이들이 던진 교묘한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으로 이루어진 대담이지만 여기에는 부활신앙의 진수가 담겨 있습니다. 곧, 예수께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도 언젠가 새로운 질서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심어준 그야말로 복음이라 하겠습니다. 부활 신앙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을 지켜주는 가장 아름다운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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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유충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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