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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왕 - 섬기는 사람
조회수 | 95
작성일 | 19.11.22
[군종] 왕 - 섬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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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서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연일 TV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어느 그룹 회장을 만났다는 뉴스나 골프 회동을 했다느니 누구누구와 점심을 먹었다는 소식이 대중 매체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선거를 앞두고는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곳을 방문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어느 양노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시장에 가서 상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평소에 소외되던 지방에 가서 자신이 정권을 잡으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대선에 나와 말하는 사람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에 나오는 사람이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겠다는 말만 할 뿐 그것에 관해 노력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누구 말이 진심이 담긴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한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역사가 기억하는 지도자들은 모두 국민과 고통을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도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위대한 영혼이라 불려지는 간디가 그러했습니다. 쿠바혁명을 일궈낸 체 게바라는 현 통치자인 피텔 카스트로보다 더 쿠바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온 생애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쿠바 국민의 가슴에 지도자로 남아있습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다윗은 유대인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가장 위대한 통치자입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태어나 전쟁에서 가장 앞서서 싸움을 하고 왕이 된 이후에는 백성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써 그가 다스리는 이들과 같이 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다윗이 바쎄바라는 여인을 겁탈한 것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나단에게 야단을 맞고 용서를 청하는 모습은 지금 이 시대의 통치자들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잘못된 판단을 해도 사과하는 법이 없고 자신의 측근이나 기득권자들이 잘못을 해도 어떻게든 감추려하는 것이 현대의 통치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그 잘못을 들추어내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윗과 같은 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이천년 전에 다윗보다 위대한 왕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벌거벗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입니다. 그분에게는 군대도 없고 자리를 노리는 측근도 없고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그분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힘으로 사람들에게 명령을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두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늘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고 도움을 주려고 애쓰신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분을 왕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예수님을 처형한 사람들이 그분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왕은 그가 다스리는 백성과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높다고 해서 과거를 잊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국민을 다스리는 법 앞에 자신 역시 동등한 국민임을 알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여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곧 하느님이시면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분은 당신의 몸을 성체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내어 주시면서 당신의 백성을 살찌우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고 있는 오늘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닮아 “섬기는 일” 즉,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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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성수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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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여러분은 어떤 모습의 왕이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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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다들 아실 겁니다. 전 세계에서 흥행한 영화입니다. 이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의 상까지 받게 되는데 감독상을 받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 물론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의 대사를 인용해 수상의 기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지만 몇몇 평론가들은 ‘주제넘다’라며 불만스러워 했다고 전해집니다. 저도 재미있게 본 영화이기에 당연히 저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겸손한 모습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중의 왕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제임스 카메룬 감독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아마 ‘주제넘다’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으로 군림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과 같은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예수님은 누가 가장 높은지 다투는 사도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5-26참조).

오늘 복음에서 한 죄수는 자신이 최고인 양 예수님을 모독하고 조롱하지만 다른 한 명은 예수님을 섬기며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구원받는 사람은 후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왕 직을 받았습니다. 왕의 역할을 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군대이기에 직책상 누군가에게는 상관이고 대장(왕)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로서 여러분은 어떤 모습의 왕이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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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장인수 안드레아 신부
2016년 11월 20일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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