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29.6%
[수도회] 용서와 자비
조회수 | 2,075
작성일 | 04.10.29
루가 복음에만 나오는 ‘예수님과 자캐오의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움직임이 역동성을 띠고 있어 어린이까지도 흥미진진해 합니다. 예수님의 선교 종착지인 예루살렘에 들어서기 직전, 도시 예리고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에는 용서와 자비, 회개와 자선 등 루가 복음의 중심 주제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세관원’은 직책상 죄인으로 취급당하며 유다인의 멸시를 받던 사람으로서, 바로 앞 대목에서도 회개하는 세관원의 예화(루가 18,13)가 소개된 바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세관원은 정부와 임차대 계약을 맺고 관세를 징수하던 민간인으로, 이방인과의 접촉이 잦을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관세를 많이 매겨 부당하게 치부(致富)했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세관장이며 부자였던 자캐오가 민중에게 얼마나 밉상이었을까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잘못했다간 성난 민중에게 몰매를 맞을 수도 있을 처지의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살금살금 돌무화과나무에 기어오르는 장면은 우리도 함께 숨을 졸이게 합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을 자캐오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복잡합니다. 이렇게 불의하고 부도덕한 인물은 벼락이라도 맞아야 속이 시원할 텐데 어쩌자고 우리 편에 서려는 것일까?

그런데 웬걸, 예수께서는 그를 먼저 알아보시고는 그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자청하시는 것입니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5절). 예수님의 말씀은 자캐오를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친구처럼 다정하기만 합니다.

신이 난 자캐오는 옆 사람 눈치 볼 것도 없이 즉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8절).라며 회개의 표현으로 자발적인 자선을 약속합니다. “진작에 남을 괴롭히지 말았어야지, 나쁜 짓은 실컷 하고 이제와 구원을 받겠다고 마음을 바꾸다니….” 사람들은 회심하는 자캐오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자캐오를 용서하시는 예수님도 못마땅합니다.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7절)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9-10절). 예수께서는 완고한 이들의 마음을 녹여 하느님의 자녀로 묶어 주십니다. 우리는 쉽게 잊고 지내지만, 하느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용서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용서 못하실 죄인은 없다는 것,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한 사람만이 용서와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시기심 없이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

--------------------------------------------------------------

씨튼 수도회 최혜영 엘리사벳 수녀
451 29.6%
크신 자비

최근에 만난 한 할머니 사연을 듣고 있노라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자식들이 알아서 조금이라도 용돈을 주면 좋겠는데, 용돈받은 기억이 너무도 가물가물하다는 할머니였습니다. 단돈 1000원짜리 한 장이 아쉬워 죽겠다는 할머니 모습이 너무도 '짠해'보였습니다. 할 수 없이 제 용돈에서 '거금' 만원을 빼내 손에 쥐어드리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또래가 먹는 '성장촉진 보조식품'을 보고 자기에게도 '키 크는 약' 좀 구해달라고 제게 떼를 쓰는 아이들(제때 못 먹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체구가 너무도 왜소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이의 고달팠던 지난날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눈물이 앞섭니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요즘 주변을 조금만 살펴보면 경제적 문제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여유 있는 분들의 관대한 나눔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시기에 걸맞게 오늘 복음은 한 부자(세관장 자캐오)의 회개 여정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눈에 진정 안타깝게 보이던 부류의 사람들이 '모을 줄만 알았지 세상이 두 쪽 나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 '꽉 움켜쥔 손을 죽어도 펴지 않는 부자들', '세상 뜰 날이 다가오는 데도 끝까지 재물을 하늘처럼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소개되고 있는 세관장 자캐오 역시 돈이 너무도 많았기에, 또 돈의 위력을 늘 실감하고 살아왔기에,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재물을 하느님처럼 모시고 살아가던 사람의 전형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자캐오는 예수님과 극적 만남을 통해 회심의 기회를 잡습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예수님과 만남, 극히 짧은 만남이었지만 자캐오는 회심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구원에 이르는 지름길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캐오의 회개 여정은 극히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바로 이것이 참된 회개다'하는 교훈을 우리에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캐오는 갑자기 다가온 주님의 초대("자캐오야, 나무에서 어서 내려오너라")에 즉각 응답합니다. 지체없이 "예, 주님!"하고 나무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억지로가 아니라 온전한 자유의지로,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십니다. 자캐오는 진정으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회개여정을 시작한 자캐오는 예쁜 짓만 골라서 합니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예수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들이었습니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주겠습니다."

자캐오의 이 말은 예수님께서 가장 바라시던 응답이었습니다. 참된 회개는 자캐오의 회개처럼 구체성을 요구합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자캐오의 회개처럼 그릇된 생활 태도를 구체적으로 바꾸겠다는 실질적 다짐이 요청됩니다.

우리의 그릇된 지난 과거를 기워 갚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지한 반성을 토대로 한 철저한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잣대는 다름 아닌 삶의 변화입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관대한 나눔, 그것은 회개의 가장 좋은 결실입니다.

저 역시 자캐오의 회심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관대하신 주님 자비 앞에 큰 위안을 받으며 또 다른 회개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한없는 자비의 주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자캐오의 구원 가능성을 0%로 보고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자캐오의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푼돈마저 일일이 긁어가던 수전노, 갖은 비리와 불의의 중심인물 자캐오를 구원하신 주님의 자비를 바라보며 오늘 저 역시 또 다른 새 출발을 하고 싶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굳게 믿고 다시 한번 대문을 활짝 열고 그분을 환대하는 이번 한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하느님은 자캐오 같은 중죄인까지도 구원하시는 관대한 하느님이십니다. 자캐오의 구원을 생각한다면 우리 구원은 거의 확정적입니다. 단 자캐오처럼 회개와 새 생활을 시작한다는 전제조건 하에 말입니다.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 수도회)
  | 11.10
451 29.6%
[수도회] 죄인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죄인과 친구 맺기를 원하시는 주님!

---------------------------------------------------------------

며칠 전 한 뉴스에 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맡고 계시는 반 아이들 한명 한 명에게 그리 유쾌하지도, 듣기 좋지도 않은 별명들을 일일이 지어놓고 부르셔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원성을 크게 샀더군요.

저라도 존경해마지 않는 담임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셨으면 좋을텐테, 유독 내가 싫어하는 별명, 예를 들면 돼지코, 깜생이, 숏다리...이런 별명을 불러주신다면, 기분이 참으로 ‘거시기’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자주 드는 생각 한 가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준다는 표현입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너와 나 사이에 친교의 다리를 놓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래서 돈보스코는 당시 교육자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쳤습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청소년들에게 다가가십시오. 왜냐하면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그 자체로 아주 좋은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전 세계 살레시오 교육 현장에서는 신학기만 되면 살레시안들이 아이들 이름 외운다고 ‘쌩고생’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간 복음의 첫 번째 가는 조연 배우인 자캐오 역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던지던 호칭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할아버지께서 공들여 지어주신 ‘자캐오’라는 번듯한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캐오라는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들 그를 향해 참으로 듣기 싫은 별명을 불러댔습니다. ‘매국노’ ‘수전노’ ‘반역자’ ‘배신자’ 그리고 ‘숏다리’

그런데 예리코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돌 무화과나무 위에 숨어있는 자캐오를 발견하십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복음 19장 5절)

사실 자캐오가 그간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웃 동료 인간들에 바란 것은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별명이 아니라 그저 본래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평범한 이웃들 사이에 끼어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동료 이웃들이 자캐오에게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서글픈 것이었습니다. 쌓아둔 재물은 엄청났지만 자캐오는 사람들 사이에 끼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캐오의 마음은 언제나 공허했습니다.

거기다 치명적인 신체적 콤플렉스(작은 키)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철저하게도 세상으로부터 왕따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그는 오로지 돈을 벌고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만 온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예리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늘어날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자캐오야!”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너무나도 친근하고 다정한 그분의 음성에 자캐오는 지난 모든 상처가 즉시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그 어떤 말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연민과 사랑이 마음이 흠뻑 담긴 예수님의 한 마디에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올렸던 세상으로부터의 장벽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만 것입니다.

저는 나뭇잎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캐오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빛에 대해서 묵상해봤습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처량한 모습의 그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이윽고 예수님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그의 내면 상태를 파악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을까, 그래서 제대로 한번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잔뜩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몹쓸 구제 불능으로 여기며 이름은 커녕 별의 별 듣기 싫은 별명을 다 불렀습니.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복음 19장 5절)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누군가가, 특별히 주님께서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신 것 하나 만으로 자캐오는 오랜 상처가 그 자리에서 씻은듯이 나았습니다. 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자캐오 집 방문을 통해 우리는 구세주 하느님께서 지니신 사명의 본질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죄인의 집을 찾아오시는 하느님. 죄인에게 다시 한 번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 죄인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느님, 죄인과 친구 맺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그런 하느님께서 오늘 이 아침, 2천 년 전과 똑같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다가오십니다. 우리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요? 결국 구원은 주님의 부르시는 목소리에 응답함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또한 구원은 한 인간이 주님의 현존 앞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함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2019년 11월 3
  | 11.03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83   [수도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8] 3433
782   [서울] 진정한 왕직은 봉사직  [5] 2943
781   [인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로맨스입니다.  [3] 3361
780   [수원] "천국 왕의 고난과 죽음"  [6] 2948
779   [춘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3] 3032
778   [대구] 왕이신 예수님과 부활  [2] 2866
777   [마산] 왕이신 그리스도  [4] 3048
776   [안동] 봉사의 삶  [4] 2840
775   [부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는 것의 의미  [6] 3433
774   [광주] 예수, 왕중의 왕  3092
773   [전주] 예수님은 왕이신가?  93
772   [대전] 우리의 왕은 이렇다.  [2] 3080
771   [청주] 감사의 생활  [1] 74
770   [원주]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3] 2854
769   [의정부] 감동을 주시는 왕  [1] 71
768   [군종] 왕 - 섬기는 사람  [1] 75
767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4] 2653
766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4] 2520
765   [대구] “희망의 징조"  [3] 2020
764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3] 665
763   [인천] “예수님은 ‘보스(boss)’인가 ‘리더(leader)’인가?”  [5] 2546
762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2871
761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4] 2757
760   [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3] 2508
759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3] 2338
758   [안동]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1] 1185
757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51
756   [춘천] 신념  [3] 2328
755   [원주] 재난의 시작  64
754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1] 2643
753   [전주] 종말 전의 재난  [2] 65
752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 72
751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 2127
750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1504
749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2] 2364
748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 2309
747   [마산] 영세한 미신자(未信者)가 많다.  [1] 2288
746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513
745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4] 2844
744   [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2] 2592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