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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자캐오 이야기
조회수 | 2,324
작성일 | 04.10.29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변화되는 한 죄인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의 변화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각자는 예수님을 통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리고는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며, 예루살렘과 요르단이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세금이 가장 많이 징수되는 곳이었습니다. 자캐오는 이곳에서 세금을 징수하던 세리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세리들이 죄인으로 취급을 받게 된 것은, 정해진 액수를 초과하여 세금을 징수하고, 초과분을 착복하여 재산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탐욕과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사람의 대명사가 바로 세리들이었습니다. 자캐오는 이런 사람들의 책임자인 세관장이었으니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죄인으로 여겼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으로 인해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따돌림을 받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와 같은 세리들이나 죄인들을 받아주시며 사귀어주시는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들은 그는 마침 그분이 예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자기도 예수님을 만나 사귀고 싶은 마음이 일었던 것입니다.

우선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아서 군중들 틈에서는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예수께서 그것을 아셨는지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보시고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자캐오는 이 말씀으로 자기를 받아주는 새로운 친구를 발견한 듯이 기뻐하면서 예수님을 자기집에 모시게 됩니다.

예수께서 자캐오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그들이 죄인으로 취급하는 사람, 상종해서는 안될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과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결단을 내립니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주겠습니다"하고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만의 변화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변화입니다. 자캐오의 변화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곧 당신으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 잃었다가 다시 찾은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성당에 나와 예수님을 만난 우리에게는 어떤 삶의 변화가 있습니까? 자캐오처럼, 획기적으로 바뀐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회심을 미루며 변화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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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황영화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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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 말은, 10월의 끝자락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온다는 ‘잊혀진 계절’의 첫 노래가사입니다. 싸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한 멜로디와 노랫말은 한껏 가을임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인 듯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자캐오와 가을을 타는 남자들의 공통점은 쓸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10월 쌀쌀한 날씨 탓에 더욱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계절에 자캐오는, 떳떳하지 못한 직업으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비록 집에 돈은 많았지만 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으며 살아온 그는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키 작은 자캐오는 군중들의 무리에 끼지 못해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멀리서라도 예수님을 직접 보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하고, 무시당하며, 나무 위로 올라가는 모습까지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함께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보려는 그의 간절한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나무 위로 올라갈 힘을 얻게 됩니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자캐오는 먼발치에서 예수님을 지켜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또 선생님, 스승님이라고 불리는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제는 자캐오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자캐오에게 말을 건넵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집에서 쉬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캐오가 예수님을 초대한 것이 아니라, 먼저 말을 걸어주신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만약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무 위로 올라갈 용기만 있다면,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한 간절한 희망만 있다면, 그 다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주님의 큰 은총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먼저 기억해 주셔서 나를 먼저 불러 주실 것입니다.

나의 용기로 시작된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고,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루카 19,8)라는 자캐오의 변화와 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을 주시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여정은 자캐오의 회개로 시작되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가 변화되었고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 놓게 되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기억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나무 위로 올라간 자캐오처럼 우리들의 희망을 위해 쳐다보고 계십니다. 회개하려는 몸짓이라도 보이며, 미약하지만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님께 보여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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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김유강 시몬
2016년 10월 30일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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