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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부르심과 복음화 사명
조회수 | 1,978
작성일 | 07.01.31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부르심’과 ‘선교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선교교령 2항에도 “교회는 본성상 선교를 그 사명으로 한다”고 하고 있다. 이 교회의 사명인 선교사명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당신 선성, 사랑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며, 부름을 받은 우리가 갖는 선교사명은 바로 하느님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확산시키는 고귀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복음: 루카 5,1-11: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은 처음부터 당신의 “말씀”과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군중은 이미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을’(2절) 보았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강둑에서 좀 떨어져서 ‘배에서 군중을 가르치셨다’(3절).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4-6절)고 하면서 말씀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의 기적은 바로 “말씀”의 힘이다.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은 베드로에게서 일어났다. 만일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면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이 복음은 선포되고 또한 철저하게 믿어지며 생활화되어야 하며, 또 그것을 듣는 사람에 의해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사람을 낚는 고기잡이가 풍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적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철저히 믿고 받아들인 복음이 지금까지의 생활을 변화케 한다. 이 같은 믿음을 통하여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11절). 새로운 생활의 시작은 예수께서 보여주실 미래를 향해 자신을 투신하기 위해 과거에서 떠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따른다는 것은 정해진 길을 다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에로의 길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복종’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의 부르심은 헛되게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복종의 길을 거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D. Bonhoffer, Sequela, Brescia 1971, pp. 41-42).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베드로의 ‘우위성’이다. 우선 예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기 위해 택한 것이 그의 배였다(3절). 그리고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명한 것도 베드로에게 하셨다(4절).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장본인이 베드로이다(5절). 그리고 기적을 본 다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것도 베드로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8절).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에 앞서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 것도 베드로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10절).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베드로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베드로의 배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고 기적의 고기잡이를 행하신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베드로 없이는 선교사명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베드로가 교회일치를 이루는데 장애물이라고 하는 것은 베드로의 역할을 알지 못하는 소치이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듯이 다른 또 하나의 배는 베드로를 통해 이루어진 기적의 도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배가 다 ‘가라앉을 정도가’(7절) 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풍성한 고기잡이가 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베드로의 배를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제2독서: 1고린 15,1-11: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여러분은 믿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위임받은 복음을 충실히 전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가 전했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했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인 것을 말하고 있다. “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11절).

하느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한없이 부족하고 부당한 존재로 느끼지만,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고 그분과 함께 용기를 가지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다. 이제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따르려는 순명의 자세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그분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실천하려고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것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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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만난 사람들”

제1독서에서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가 환시 가운데 하느님을 만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 대전에서 이사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사야는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자신의 죄에 따른 심판과 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 조건 없는 용서를 체험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깨끗해졌음을 체험한 이사야는 이제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밝힙니다.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자신이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제는 사도로서 새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만남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두려움을 마주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지른 죄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는 것을 체험했다고 이해하셔도 좋겠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새 삶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께 응답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신앙 선조들이 하느님을 만난 사건을 들려줍니다. 신앙 선조들의 증언에 따르면, 하느님과의 만남은 은총의 사건, 우리가 구원받는 사건입니다. 이 증언을 듣고 묵상하는 청중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신지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 신앙 선조들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나’ 자신도 신앙 선조들처럼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 역사에 동참하기를 희망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이들, 불필요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의무감으로,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에 임하는 이들을 새 삶으로 초대합니다. 그 초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형제여, 당신은 이미 하느님의 은총으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죄악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길에 동참하십시오.”

주님을 따라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기쁘게, 당당하게 한 주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서동조(유스티노)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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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루카 4,16-30)하시며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지신 예수님. 본격적인 전도 여행(루카 4,42-44)을 시작하시며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셨겠습니까? 그분에게는 돈과 여행 보따리보다 사람이 급선무였습니다. 하느님 나라 선포와 그 여정에 함께 할 동반자, ‘길벗’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선(人選)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서류 전형과 필기, 그리고 면접시험을 통해 학벌과 경력을 따져 사람을 뽑는 오늘날의 인선에 비하면 예수님의 인선 과정은 이례적이고 파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겐네사렛(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부터가 그러합니다. 인선의 몇 가지 원칙도 보입니다.

첫째, 삶의 현장에서 사람을 뽑습니다. 둘째, 인선의 대상을 주의 깊게 눈여겨봅니다. 그가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지, 그의 주변인물은 물론, 능력, 인품을 엿볼 수있는 태도와 분위기까지 감안합니다. 셋째, 그의 전문분야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그의 능력을 넘어서는 한계가 무엇인지 그 이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상자 스스로 깨닫게합니다. 넷째,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단호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이 뒤를 잇습니다.

이 과정에 비춰볼 때,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할 ‘길벗’의 인선을 위해 군중이 모인 겐네사렛 호숫가를 직접 찾으십니다. 군중 가운데 조업을 끝내고 뒷정리에 분주한 어부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십니다. 밤새 조과 없이 허탕을 친 어부들에게 다시 배를 타고 나가 깊은 데에 그물을 내려 보라고 권유하십니다. 목수 출신의 예수님과 베테랑어부들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장면입니다.

왜 어부들은 어업전문가도 아닌 낯선 이의 말에 순응하였을까요?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편에서 짧은 항변은 있었지만, 곧 예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 전,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군중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군중을 사로잡는 그분의 말씀이 곁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어부에게도 귀동냥을 통해, 퍼덕이는 생선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말씀으로 가슴을 파고든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따른 그물질의 결과는 어부들의 오랜 경험과 능력과 예측을 뒤엎는 경이로운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두려움마저 불러일으킨 만선으로 예수님 앞에 베테랑어부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죄 많은 인간임을 고백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회복됩니다.

마지막으로 극적인 부르심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들의 전문분야를 살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초대하십니다. 어부들의 인생에 큰 변화와 도전과 새로움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스승의 모습으로 다가왔을까요? 무엇이 그분과 함께 해도 좋을 만큼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요?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위대한 스승’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사람들 앞에 ‘말을 잘하는 스승’이 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잘 가르치는 스승’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하고 존경 받을 만한 스승은 말이나 지식에 앞서 묵묵히 ‘몸소 실천하는 스승’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돋보일 수 있고 남보다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인다. 앞선 세 명의 스승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 아직 남아 있다. 그는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스승’이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 가슴에 불을 지르며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스승은 나보다 너를 성장시키는 큰 스승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가난한 어촌에서 고단한 삶에 짓눌린 젊은 어부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며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함께 이 길을 걷자고 손을 내밀던 참 스승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 수원교구 박현창 베드로 신부 : 2016년 2월 7일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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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 던져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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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의 동료를 당신 제자로 부르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겐네사렛 호수’는 갈릴래아 호수의 다른 이름으로, 예수님 공생활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호수에서 어부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료를 만나고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어부들에게 호수는 일상이 펼쳐지는 삶의 터이면서도,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고단한 작업장이기도 합니다.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해주다가도, 사납게 폭풍우를 내리 퍼붓기도 하는 이 호수는 어찌 보면 우리들 인생살이와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때로 우리 일상이 그렇듯 가끔은 이 호수도 “밤새도록 애쓰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허탈함을 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베테랑 어부들에게도 빈 그물을 올려야 하는 경우는 일상이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때와 자리는 바로 이런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는 우리들 일상의 호수가 아닐런지요. 예수님은 우리 삶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굳어지고 무뎌지고 안일해져 있는 우리 일상과 신앙을 깨우려고 하십니다. 익숙한 것, 편안한 것, 내가 원하는 것만 길어 올리지 말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서 삶이 주는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건져 올려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시몬아,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그러나 ‘어부들은 이미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씻는다는 것은 그날 일과를 끝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 고기잡이가 끝나 손 까닥 하기 싫은 시몬에게 예수님의 초대는 자신의 습관과 경험 그리고 자존심까지 버려야 가능했던 모험이고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스승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다.’고 한 시몬의 대답에서 우리는 비장한 각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믿음의 자세를 일깨우는 대목입니다. 인간의 능력, 경험과 판단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느님은 비로소 우리를 통해 당신이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일들을 이루십니다. 배가 가라앉을 지경으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습니다.

주님의 도구로 부름을 받은 이들이 오직 하느님의 힘만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자신의 모든 것이 된 이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는 것” 즉, 무소유는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당신의 제자들이며 도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걱정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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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김창해 요한 세례자 신부 : 2019년 2월 10일
  |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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