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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부르심과 수동(受動)의 영성
조회수 | 1,690
작성일 | 07.02.03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들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고기잡이 기적과 연결된 소명 사화가 퍽 인상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하셨다.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루카 5,4~6)

시몬 베드로의 답변은 사도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부르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에 의존 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 오는지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3가지 형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1의 인생은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때로 능동의 영성에 바탕을 두고 살아가는 시기입니다. 제2의 인생은 자신의 힘의 한계와 좌절을 체험하는 시기로 능동의 영성이 지닌 한계를 뼈저리게 체험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제3의 인생은 이제 자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에 의존하는 시기로 수동의 영성에 바탕을 둔 인생입니다.

이렇듯이 수동의 영성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남, 또는 다른 것에 힘을 받아 움직인다는 뜻으로 자신의 힘을 빼고 대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영성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시몬 베드로의 경우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 했습니다”라는 답변 속에 능동적인 영성의 한계와 좌절을 묵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려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는 대목은 수동의 영성이 얼마나 은혜로운가를 묵상하게 합니다.

새로운 한 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시몬 베드로처럼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 할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 안에 더 큰 기쁨과 은총이 함께 할 것입니다. 아멘.

▶ 엄기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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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지난 1월에 있었던 전주, 제주, 광주 교구 서품식에 다 참석하였습니다. 서품식에 참석할 때마다 나의 사제 서품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되지만, 사제 양성의 소임을 맡으면서부터는 마치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부모 심정이 되어 서품 미사에 참석하게 됩니다.

전주교구가 맨 먼저 서품식을 거행하였는데, 미사 강론 첫머리에 주교님께서 하신 말씀을 세 교구 서품식 내내 묵상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주님의 일을 수행하려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자신의 능력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여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

오늘 미사에서도 같은 내용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습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그러자 천사는 그의 입술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하느님의 소명을 받들게 됩니다.

베드로도 소명을 받들기 전에 먼저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물질을 하여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아올리자, 그는 즉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그는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바오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박해하러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새 사제들이 성품성사를 받으면서 느꼈던 성령의 감동, 감화를 잊지 말기 바랍니다. 사제의 해에 우리 모든 사제들이 자신의 하잘것없는 능력 대신 하느님의 능력, 곧 성령의 힘으로 사제 직무를 수행하기로 새롭게 다짐하였으면 합니다. “주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 정승현 요셉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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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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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이들을 부르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겸손한 이들이고, 그렇기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1독서의 이사야는 스스로를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사 6,5 참조)이라 하고, 2독서의 바오로는 자신을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으며,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1코린 15,9 참조)이라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복음에 나오는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이들의 겸손이 위대한 이유는, 스스로 더럽고 보잘것없으며 죄 많음을 고백하면서도, 그 시선이 그러한 ‘나’에 함몰되지 않고, 그들을 부르신 ‘하느님’께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침내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비로소 하느님께 “저를 보내십시오.”하고 말씀을 드리고, 바오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배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우리는 미사 중성체를 모시기 전에 항상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임을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주님을 향해 자비를 청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시선이 부족한 ‘나’가 아니라, 부족한 나를 부르신 ‘하느님’께 향할 때 가능해집니다.

겸손은 고개를 푹 고꾸라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개를 들어 하느님을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써 겸손은 순명을 통해 완성됩니다. 나의 판단이 ‘아니오’일지라도, 하느님의 판단이 ‘예’라면, 기쁜 마음으로 ‘예’하고 응답할 수 있는 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분의 부르심 앞에 언제나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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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구 장대성 안드레아 신부 : 2019년 2월 10일
  |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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