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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예수님과 만나고 싶다면
조회수 | 1,934
작성일 | 07.02.03
오늘 복음에서는 목수의 아들인 예수라는 사람이 고기잡이 전문가인 어부 시몬에게 한 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호수를 누비며 그물을 쳤지만 한 마디로 못 끌어 올린데다가, ‘오늘 종 쳤다’며 집으로 가기 위해 힘 빠진 손으로 겨우 겨우 그물을 건져 올리는 어부들에게 예수님은 한 마디 하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루카 5, 4)

평생 고기 낚는 걸로 밥 먹고 살아온 어부들에게 있어 예수님께선 황당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시몬의 반응이 더 놀랍습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 5) 시몬은 깊은 데로 가는 것과 그물을 내리는 것은 밑져 봐야 본전이고, 비록 몸은 피곤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하겠지만, 고기는 잡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바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수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는 이런 놀랄만한 상황 앞에서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이분은 누구신가' 오늘 복음에는 그의 이런 두려움을 드러내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 8) 그런 두려움의 표현을 통해서 시몬은 자신에 대해서 바로 보게 되고, 또한 새로운 삶, 바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몬 베드로에게 있어 그물은 자신의 밥그릇, 자기 목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평생 놓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모든 것이 바로 고기 낚는 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 모든 것. 자신의 생명줄까지 포기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자연스레 그 예수라는 사람의 뒤를 따르도록 이끌었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 4) 이런 예수님의 황당한 요구에 시몬 베드로는 대꾸할 가치도 없는 '턱도 없는 소리'로 여기고, 자신의 지친 몸을 이끌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면 그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며, 자신의 온 삶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루카 5, 4)예수의 이 말씀대로 베드로는 깊은 데로 갔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믿음이 가지 않는 말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했더니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어느 정도 알고, 또한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분의 능력도 대충 인정하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기에 시몬 베드로처럼 예수님과의 그런 만남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대한 만큼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보다도 예수님을 더 많이 알고, 그분을 능력을 진작부터 믿고 있는 우리들인데, 성당에서 우리가 바치는 기도와 미사 안에서, 신앙생활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만남이 계속해서 어긋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혹시 우리의 얄팍한 예수님에 대한 체험과 얄팍한 지식, 또한 그분에 대한 우리 자신의 편협한 고정관념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깊은 데로 가지도 않으면서 바라기만 하는 우리의 욕심 때문은 아닐까요? 피곤하고 귀찮아서 그물을 치지 않는 우리의 게으름 때문은 아닐까요? 아니면 꼭 잡고 있는 우리의 그물, 우리의 밥줄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잠시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 노중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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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사람이 모든 것을 얻는다. / 모든게 당신 것

라파엘로는 루카복음 5장 1-11절의 말씀을 배경으로 <고기잡이배의 기적>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1514년에 레오 10세 교황이 시스티나 성당의 창문에 걸어 둘 태피스트리를 제작하기 위해 라파엘로에게 밑그림을 주문한 열 개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1519년 12월 26일에는 먼저 제작된 일곱 개의 태피스트리가 시스티나 성당에 걸렸고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겐네사렛 호수가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들고 있습니다. 호숫가에는 배 두 척이 보이고 배에는 고기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떠돌고 있는 물새들도 예수님께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바다의 물고기도 공중의 새들도 모두다 그분을 찬양해야 하니까요.

한 배에서는 베드로의 동료들이 고기를 끌어올리고 있고, 다른 한 배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무릎 꿇어 빌고 있습니다. 아마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 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시선이 마주치고 예수님의 시선은 베드로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뒤에 있는 제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배의 두 제자들도 시선을 예수님께 돌리며 서서히 그물을 놓으려고 합니다. 시선부터 돌려야 그분을 따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뱃사공은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지 않고, 사람들과 마을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만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군중들의 모습도 검은 그림자로 가득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만 밝은 미래가 펼쳐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마음을 담아 시를 씁니다.

모든 게 당신 것
모든 것이 당신 것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모두가 당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저에게 오셨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배를 빌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저는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당신께 대답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
저는 단지 그물을 내렸습니다.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고 당신의 말씀만을 따랐으니까요.
그런데 저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물고기가 잡혔으니까요.
겁이 난 저는 당신 앞에 엎드려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루카 5,9)
죄 많은 제가 당신의 은총을 받기에 부당하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저에게 이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1)
이제부터 저는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을 것이니까요.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
저의 배와 저의 집과 저의 사람들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말입니다.

▶ 손용환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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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복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를 따르라’라는 성가 구절이 저절로 생각이 납니다. 성가의 느낌처럼 밝고 경쾌하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기 위해서 도망쳐 다닌 기억,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 같은 게 어떻게 되겠어?’라며 피하고 외면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제 서품을 앞두고는 두려운 마음에 속으로 엄청난 고민을 했고, 이렇게 군종으로 오게 될 때도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면 주님께서는 참 저를 여러 가지로 많이 부르셨지만, 저는 그 부르심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며 바로 따라나서질 못했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부족한 탓에 저의 앞날을 먼저 걱정하였고, 해보지도 노력하지도 않고서 안 될 것이라며 포기하려 도고 하였습니다. 앞선 이유와 저의 능력이 부족함을 핑계로 주님께서 부르시는 것은 알겠는데 그분의 부르심을 외면하려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고 따르면 어떻게든 이끌어 주시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그렇게 큰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고기잡이가 잘 안 되는 중에 갑자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배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자신의 장모를 고쳐 주신 예수님이시기에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물을 다시 던지라고 하십니다.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그가 허탕을 쳤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의문이 생기고 불확실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결심을 하고 그물을 던지니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잡히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내 앞에 기적만 나타나면 뭐든지 믿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막상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나거나 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또한 예수님의 신비로운 힘에 두려움을 느끼고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떠나 주시기를 간청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베드로와 다른 어부들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들은 첫 발걸음을 뗄지 말지 고민도 했겠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택했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불확실했고 두려웠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들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부르신다면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믿고 따르면 됩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죄 없는 인간도 없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분은 당신을 따라오는 이들을 어떻게든 끌어가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과 그것을 실천할 결심입니다. 이번 한 주도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실지 모르지만, 그 부르심에 “예! 따르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살아보는 한 주 되시기를 바랍니다.

▥ 군종교구 김병흥 세영 알렉시오 신부 : 2016년 2월 7일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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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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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시키신 대로 따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평생 어부 일만 해왔기에 고기 잡는 일에는 전문가입니다. 그런 그에게 처음 보는 인물이 주장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에도, 처음 보는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요청에 응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의 입장에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외모도 착해 보이고, 말투와 행동도 나쁜 사람 같지 않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따르는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깊은데로 가자고 합니다. 나에게 뭔가 줄 게 있지 않을까? 힘겹게 깊은 곳까지 왔지만, 깊은 곳으로 가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밤새 허탕 친 오늘인데, 오늘은 안 잡히는 날인데, 허탈한 웃음을 참아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간곡한 부탁에 그물을 던지고 이내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아! 이분은 주님이시구나!”

지금까지 주님을 비웃으며 대했던 나의 모습과 지난날의 나의 과오가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을 피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외면한다면 차라리 낫겠습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사람을 낚는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고기잡이로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는 그런 기쁨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 정말 뭔가에 간절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그런 의미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런 삶이라면, 그리고 주님과 함께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나의 입장으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 걸까요? 주님께서 나를 가톨릭교회로 불러주셨고 그 부름에 응답해 왔습니다. 투덜거리면서도 주님과 함께 해왔고, 이미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있습니다. 사람을 구하러 사목 일선에 나서야 하는 나에게 주님의 말씀은 좀 더 많은 의미를 줍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망하는 일은 허다 할 것입니다. 마치 밤을 새워도 허탕 치고 고기를 잡지 못할 때가 있듯, 11년 전 군 복무 후 또다시 군종신부로서의 삶 안에서 병사들과의 관계, 간부들과의 관계, 타 종교 지도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허망할 때가있습니다. 그 힘겨움, 실망, 아쉬움을 품고 “내가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나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함께 있지 않냐고, “한 번 더”다가가라고, “한 번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힘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한 주간, 마주하는 모든 얼굴들에게 “한 번 더” 다가가시는 은총의 한 주간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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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우성 암브로시오 신부 : 2019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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