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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말씀의 능력으로 유혹을 이기자
조회수 | 2,226
작성일 | 07.02.23
신명26,4-10   /  로마10,8-13  /  루카4,1-13

묵상길잡이 :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 자유란 선택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선택은 항상 갈등과 고뇌를 동반하는 것이며, 이는 항상 유혹을 불러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할 때 유혹을 이길 수 있다.

1. 사순절(빠스카 준비시기)의 의미를 살자.

초순(初旬), 중순(中旬), 하듯이 순(旬)은 10일을 의미하며, 사순(四旬)이란 40일을 뜻한다고 하겠다. 사순절(四旬節)이란 교회 전례 안에서는 속죄의 재계(齋戒)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며 부활축일을 준비하는 40일을 말한다. 교회는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신자들의 머리에 재(災)를 얹으며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하며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초대한다.

바스카 준비는 수난과 죽음을 통해 생명에로 건너가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음으로 가능하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와 '재계(단식,고행)'와 '희사(자선)'를 속죄의 방법으로 제시해 왔다. 이기적인 삶의 껍질을 벗고 하느님 안에 새로워지기 위해 내가 벗어버려야 할 악습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악습을 극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자.

2. 유혹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조건이다.

오늘 복음은 유혹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준다. 우리는 가끔 "하느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시험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원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겐 죽음도 인생고도 없었을 터인데 .... "하며 인간을 시험하신 하느님을 원망하고픈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의 원조 타락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야 한다. 본능이라는 하나의 행동양식을 지닌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자유를 지닌 존재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自由)」와 모순되는 개념은 「필연(必然)」이라고 한다. 「필연」이란 하나의 가능성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자유란 두 개 이상의 가능성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등과 고뇌를 겪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신(神)도 동물도 아닌 인간이 유혹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사에 유혹을 당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가 묘사하는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와 쳐다보니 먹음직하여 '먹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며 고뇌하는 모습은 바로 자유를 지닌 인간의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유혹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비법.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이 참으로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의 아들'이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빵(돈)에 대한 유혹, 자기과시와 명예에 대한 유혹, 권력과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 등은 우리들이 세상살이에서 매일 당하는 유혹들이다.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크건 작건 간에 돈을 위한 도박과 사기, 자기과시를 위한 교만과 과소비, 권력과 명예를 위한 중상모략의 유혹을 받고 살아간다. 예수님은 유혹을 당할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름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신다. 유혹을 이기는 길은 내 뜻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말씀을 한치도 어김없이 지키는데 있음을 보여주신다.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히 기도하며 깨어있어야 한다. 이는 겸손 되이 하느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만과 경거망동(輕擧妄動)은 유혹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하신다. 인간은 절제와 희생을 할 수 있는 그만큼 성숙된다고 할 수 있다. 간디는 하루에 한끼만 먹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먹고 싶은 대로 먹다 보면 모든 욕심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깊이 음미해 볼 말이다. "말(馬)이 생기면 마부 두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모든 욕망은 한 줄기에 달린 감자들처럼 서로 줄줄이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악(惡)과 한번 타협하고 나면 결국 줄줄이 밀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사순절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온갖 악의 사슬에 묶여 있는 우리자신을 해방시키고 영적인 자유로움을 되찾는 은총의 시기이며, 진정한 인간성 회복의 시기이다. 내가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신앙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보다 새로워지기 위해 뿌리뽑아야 할 나의 악습(惡習)은 무엇인가? 각자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구체적인 결심이 요구된다. 악(惡)과의 싸움은 내 혼자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다."고 하신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시고자 성체성사로 항상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죄와 악의 세력 보다 은총의 힘이 더욱 위대함을 체험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하자.

▶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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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의 유혹

재의 수요일, 우리는 인간의 본질이 흙이라는 사실을 묵상하였다. 감각적인 오늘날 머리에 재를 뿌리며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신앙인들 외에 누가 있겠는가. 어린이들도 많이 나와 재를 받았다. 하나같이 웃는 얼굴이었다. 머리에 재를 얹는 것이 신기하고 장난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 예절이 죽음과 연관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알았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이들만 그랬을까. 누구라도 죽음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죽음은 나와 거리가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재의 수요일에 교회는 강압적으로 죽음을 묵상케 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허무감을 주거나 두려움을 심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재를 받으면서 우리는 언젠가 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러니 유혹 앞에서 어떻게 해야겠는가. 죽음을 떠올리며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순절 동안만이라도 이 연습을 시도하라는 것이 재의 수요일에 담긴 교훈이다. 무엇을 끊어야 할지는 오늘의 말씀 속에 들어있다.

첫째는 빵의 유혹이다. 얼마만큼 소유해야 잘 사는 것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무작정 소유의 충족만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계획대로 되는가. 그렇지 않다. 계획의 삼분의 일만 이루어도 대성공이다. 나머지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움직인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행복으로 갈 수 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소유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주님의 이끄심을 찾아야 한다. 생활 속에 잠겨있는 그분의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왜 사는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 삶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사탄은 예수님과 함께 성전 꼭대기로 가서는 뛰어내리라고 한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면 천사들이 바쳐 줄 것이 아니냐며 유혹했다. 그래 '뛰어내리마' 하고 뛰어내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나서야 할 자리인지 아닌지는 쉽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살았는데 이럴 수 있는가.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생각이 과거에 얽매이면 잔소리꾼이 된다.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신앙인이다.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고 했다. 세상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모두가 내 몫이며 내 책임인 것이다. 무모하게 뛰어내리지 말라고 하신다. 무모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유혹받으셨다는 사실은 위안이 된다. 그분을 유혹한 사탄이라면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혹은 죄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삶의 한 형태일 뿐이다. 실제로 인생은 절반이 유혹이다. 아무도 예외일 수 없다. 끊임없는 기도만이 유혹 앞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얼마나 자주 이 기도를 바쳤던가. 그만큼 필요한 기도였다는 증거다. 결국은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인생이다.

재의 수요일, 머리 위에 뿌려진 재 속에 이 진리가 숨어있다. 그러니 소유의 유혹 앞에서 인정받고 싶은 유혹 앞에서 다시 끊고 돌아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금년 사순절동안 실천 해야 한다. 또 다른 기쁨으로 부활절을 맞이할 것이다.

▶ 신은근 신부
  |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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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수요일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과 함께 사순절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정화의 기간을 가지는 시기입니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인이 세례의 회상과 세례준비 기도와 보속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 하시고자 고통과 수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며 다가올 부활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순1주일 복음은 예수님의 유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년 듣고 묵상하는 주제입니다만 금년에 이런 이런 유혹을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 경향신문 기고란에 문화인류학 교수의 기고 글입니다.

한강유람선을 같이 탄 외국학자가 실망스런 표정으로 󰡐이걸 왜 타자고 했는가?󰡑물었습니다. 온통 콘크리트 제방과 아파트뿐인 역사도 문화도 없는 강을 보라고 하는지, 원래 한강은 빼어난 경치, 절경과 함께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고 해서 선유봉과 뱃놀이 하던 밤섬, 넓은 백사장이 굽이굽이 늘어섰고 양편 절벽에는 무수한 정자와 누각이 있었는데 압구정과 저자도가 있던 곳은 1960년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저자도섬은 아파트 단지를 매립하기 위해 파헤쳐지고, 선유봉은 제2한강교가 들어서고, 밤섬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어 여의도 매립용이 되고 말았다는 한탄의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자연파괴는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 섬 그 백사장 그 절경과 정자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그 가치가 과연 경제논리, 경제이익과 비교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도 온 나라는 큰 강 4개를 동시에 파헤치는 공사를 하겠다는 유혹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세종시나 용산참사로 대변되는 도시개발 등 국토와 국민의 이익과 여론에 위배되는 일들을 못해서들 안달입니다. 어디서 그런 유혹이 시작 되고 그 끝은 어디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또 어떤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도 물어보고 저런 어리석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유혹이 없는 삶이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살도록 결심하여 사순절을 시작합시다.

▶ 이은진 도미니코 신부
  |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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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순 시기 첫 번째 주일에 우리는 유혹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유혹은 다른 대상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유혹은 우리 삶에 무서운 모습이나 아주 더러운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유혹이란 누구나 피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우리 삶에 다가오는 유혹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유혹이 무서운 모습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순간에 조금씩 우리의 생활을 좀먹기 때문이고, 유혹에 빠져서 헤어나기가 어려울 때가 돼야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야자열매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먼저 야자열매를 따서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
한 작은 구멍을 내고 거기 돌멩이를 하나 넣어둔 다음 원숭이가 잘 다니는 길바닥에 떨어뜨려 둡니다. 원숭이가 다니다가 야자열매를 툭 건들 때 안에서 나는 돌멩이 소리가 원숭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됩니다. 원숭이는 야자열매의 작은 구멍 속에 손을 넣고는 돌멩이를 잡는데, 나중에 돌멩이를 빼려고 하면 주먹 쥔 손을 작은 구멍에서 뺄 수가 없습니다. 손을 빼려면 돌을 놔야 하는데 손에 잡힌 것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에 결코 그것을 놓지못하게 됩니다.

잠시 후, 원주민들은 야자열매 안에 손을 넣고 있는 원숭이를 보고 잡으러 쫓아갑니다. 그때라도 원숭이가 얼른 손에 쥔 돌멩이를 놓아버리면 자유롭게 도망갈 수 있는데, 원숭이는 돌멩이를 쥔 채 한쪽 손에 야자열매를 달고 열심히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올라가지 못해 결국 원주민들에게 잡히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쥐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많은 것들은 놓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도, 사실은 그것을 버릴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악마는 예수님께 세 가지 유혹을 내밉니다. 욕구를 채우려는 데서 오는 육체적인 유혹, 권력과 명예에 대한 유혹, 교만에 차서 하느님을 시험하려 하고 하느님께 반역하려는 유혹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삶에 유혹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삶의 결과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유혹의 본질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받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 5,8-9)

“눈을 뜨십시오, 소경들이여 그대들은 우리들의 원수인 육신과 세속과 마귀에 속았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모든 악습과 죄악들은 ‘사람의 마음’에서 솟아나오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 악마의 유혹을 그 마음에서부터 물리치신 것처럼 저희들도 그 첫 유혹에서부터 단호히 물리칠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문처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소서(프란치스코 성인이 1215년 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마산교구 박호철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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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술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가족의 걱정은 뒤로한 채 늘 술자리를 찾아다닙니다. 술이 이분의 삶을 이끌고 있습니다.

한때 신앙생활에 한참 뜨거웠다가 지금은 냉담을 하고 계신 분도 알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자기 기분을 잘 맞추어 주면 성당에 나왔다가 자기 뜻대로 잘 안되면 감정이 틀어져 성당에 안 나옵니다. 이분의 신앙생활을 이끄는 것은 하느님보다 자기감정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이끄는 두 가지 세력이 있음을 알립니다.

첫째는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1절)
둘째는 악마의 이끌림입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5절)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9절)

나를 이끄는 힘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습니까?

살면서 유혹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는데 하물며 오늘의 우리들이야 얼마나 유혹의 한 가운데 놓여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 권세와 영광의 문제. 교묘한 유혹의 말들. 이것이 우리를 현혹합니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타협을 하게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니 잠깐 눈 한 번만 감고 귀한 것을 얻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잘난척해서 자신의 명성을 드러내라고 유혹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거기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유혹의 이끌림을 단호하게 물리치시고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가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공생활 시작 전 세례를 통해 성령으로 가득차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문이 열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성당에 와서 성전에서 기도로부터 회개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당에 와도 기도부터 하지 않고 일을 시작한다면 유혹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 청합니다. 아멘.

▥ 마산교구 임성진 요한 신부 : 2016년 2월 14일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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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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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유혹에는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신원과 관련된다.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광야의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 배고픈 이들을 먹여야 하지 않는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과하지욕(跨下之辱)의 마음으로 세계 모든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악마에게 얻어서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들로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모습을 증명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게 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모두 물리치신다.

아니, 그 모두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온전히 이루어 내신다.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다.

그리스도라는 밀알이 십자가를 관통해서 땅에 묻혔고, 거기에서 온 세대, 온 세상을 먹여 살릴 양식이 나온다.

배고픔을 잠시 해갈해주는 양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을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보셨던 모든 나라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십자가 아래에서부터 퍼져나간 하느님의 나라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자라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자신의 몸을 내던지셨다. 성전 꼭대기에서가 아니라 십자가라는 깊은 구렁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셨다.

그리고 놀랍게도 악마의 입에서 거론되는 시편 91편의 내용 역시 십자가를 관통해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바에 따르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를 통해야만 한다.

사순의 첫 주일을 맞으며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야 함을 다시금 기억해야겠다.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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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강현 베드로 신부 :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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