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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
조회수 | 2,205
작성일 | 07.02.23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시어 세 가지 유혹을 당하십니다. 첫째는 빵의 유혹이고, 둘째는 존경의 유혹이고, 셋째는 다스림의 유혹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들을 대표하는 것들입니다. 인간의 기본 욕망으로 식욕, 성욕, 탐욕 혹은 명예욕을 듭니다. 식욕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입니다. 성욕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 될 수 있는 힘 즉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데 필요한 에너지입니다. 탐욕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도전과 탐구를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입니다. 인간의 욕망들이 인간 성숙을 위해 이처럼 좋은 에너지 역할을 하지만 과욕을 부리게 되면 화를 불러들이는 유혹이 되고 맙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당하신 유혹들을 살펴봅시다.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신 예수님은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시장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배고파 본 사람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배고프면 헛것이 보인다고 합니다. 빵처럼 보이는 돌이라도 주변에 있으면 얼른 주워먹고 싶은 심정입니다. 배고픈 물고기는 플라스틱 미끼를 얼른 먹다가 낚시꾼에게 잡힙니다. 호랑이는 배가 고프면 제 새끼를 잡아먹습니다. 사람 아닌 다른 동물 세계에는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돈으로만 살겠다는 사람들은 그보다도 더한 사건들을 벌여 놓습니다. 돈 때문에 어린이를 유괴해서 죽이고, 강도로 돌변해서 돈을 빼앗은 후 무참하게 살해하는 사건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잘 차려 입은 어린이를 돈으로 착각하고, 좋은 차를 탄 사람을 돈으로 착각해서 일어나는 비극들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비록 배가 고프셨지만 돌을 빵으로 착각하시지 않으십니다. ‘돌은 돌일 뿐 빵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계십니다. 배고픔에 눈멀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빵이 아니더라도 그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대체의 것을 알고 계십니다. 마태오 복음에 같은 대목에서는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응답하십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배고프면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참을 수 있고, 다른 것으로 배부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인간 안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지혜가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정신을 하느님의 성령을 입어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간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유혹은 사랑과 존경에 대한 유혹입니다. ‘유혹자에게 경배하면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모두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는 성경말씀을 들어 거절하십니다. 한 나라가 아니라 무수한 나라들의 권세와 영광을 받아 사랑과 존경받을 수 있는데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거절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혹은 다스림에 대한 유혹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성전 꼭대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고 유혹합니다. 천사들을 거느리며 다스리시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세상을 다스릴 뿐 아니라 천사들의 세계까지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응답으로 유혹을 잠재우십니다. 남을 다스려 본 사람은 이 심정을 압니다. 다스림에 이력이 난 독재자들은 하느님까지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다스림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곧 신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독재자의 말로는 늘 비참했음을 인류의 역사 안에서 우리는 봅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치신 방법을 본받읍시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을 새겨들읍시다. 사랑과 존경은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 안에 있음을 깨달읍시다. 다스림에 대한 유혹은 하느님을 시험한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자신이 하느님인 것처럼 낄 데 안 낄 데 분별 못하고, 설레발치는 만능 해결사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입니다.

▶ 조종율(베르나르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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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고려를 뒤엎고 이씨 조선을 창건하려는 야심을 품은 이방원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려고 시조 한 수를 지어 들려줍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칡넝쿨처럼 우리도 서로 얽혀서 옛 왕조, 새 왕조 따지지 말고 오래 오래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넌지시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몽주 역시 시조를 지어 변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이렇게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굳게 지켰던 정몽주는 결국 이방원이 보낸 심복에 의해 살해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가 시작이 되었고 오늘 첫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이 시작되면 많은 결심과 약속을 하지만 우리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처럼 그 결심이 오래가지를 않고, 때로는 유혹에 빠져서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왜 내 삶에 이렇게 많은 유혹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고, 많은 사람들이 유혹이 없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회유와 유혹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본격적으로 선포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준비를 하시는데, 바로 이때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우선 악마는 예수께 돌을 빵으로 바꿔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 유혹은 빵으로 대표되는 돈과 재물에 의존해서 백성의 마음을 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이어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세속 권력과 영화로 백성을 휘어잡으라는 유혹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악마는 성서의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 지켜 주신다고 했으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내세워 자기를 과시함으로써 백성의 주목을 끌라는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시는데,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돈과 재물을 앞세우려는 유혹에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신명 8,3)는 말씀으로, 세속 권력과 영화에 기대려는 유혹에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13)는 말씀으로, 하느님을 자기 과시의 도구로 삼으려는 유혹에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신명 6,16)는 말씀으로 대처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악마의 집요한 유혹을 이겨 내신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성사로 시작된 신앙의 여정에서 하느님보다는 재물과 권력에 의지하려는 유혹, 자기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는 하느님까지도 이용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충신이 두 주인을 섬기지 않듯이 충실한 신앙인 역시 두 주인을 섬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바로 그분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일편단심으로 하느님께 굳은 신뢰를 갖고 그분 말씀에 의지할 때, 교묘하고 끈질긴 유혹의 목소리를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안동교구 김춘수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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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차차 마귀 조심

어느 날 마귀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하느님에게서 멀리 떼어놓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먼저 재물 마귀가 제안했습니다. "하느님보다 돈이 재미있고 위력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나 많은 마귀들이 "그 방법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현명해져서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면서 반대했습니다. 무신론 마귀가 의견을 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하느님이 있기는 어디 있느냐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을 멍청이라고 을러대면 됩니다." 그러나 많은 마귀들이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지 모르나, 훌륭한 사람들은 속지 않는다."며 반대했습니다.

이때 한 마귀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성공한 경우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괴로워할 때 '그래 맞아. 그러나 나만 그러는 게 아닌데 뭐. 그리고 이번만 그렇게 하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잖아' 하고 뒤로 미루게 할 때 제일 많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또 하느님을 없다고 하기보다, '기왕 세상에 왔으니 우선 돈도 벌고 재미도 느껴보고 하면서 하느님은 차차 믿으면 될 것이 아니냐? 우선 세상살이부터 정리해 놓고 하느님한테는 차차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사람들이 제일 많이 따르더군요." 그러자 마귀들이 그 의견이 가장 훌륭하다고 만장일치로 박수를 쳤습니다. 이 의견을 낸 마귀의 이름을 물어보니, "제 이름은 차차 마귀입니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 유혹을 받으십니다. 빵과 재물, 명예와 허영, 권력 등의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를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유혹거리입니다. 악마의 유혹. “뭐 한번인데”, “이 정도야 뭐”, “남들도 다 하는데...” 결국 유혹은 우리의 제일 약한 곳을 파고듭니다.

사순절은 회개와 보속의 때입니다. 이 시기에는 희생과 절제가 있어야하는데, 희생과 절제에는 유혹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루에 수십 번, 수많은 유혹들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유혹을 이겨 낼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혹을 극복하는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려고 용을 쓰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처럼 단호히 끊어야 합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우리도 부디 유혹에 맞서 결심한 것을 잘 실천하도록 힘씁시다. 특히 차차 마귀를 조심합시다. 그리하여 기쁜 부활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아멘.

▥ 안동교구 정철환 타대오 신부 : 2016년 2월 14일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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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지나온 삶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고 반성하는 과정으로 바르고 참되게 살아가는 가장 기본입니다. 인간이기에 때로는 너무나 수치스럽고 잊고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나의 가장 부끄러운 곳을 내가 아닌 타인의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보고 인식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똑바로 보는 것이 두려워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고 술의 힘을 빌어 망각을 하는 등 양심적 책임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쉽지 않습니다. 사순절 동안 회개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순절에는 진정한 회개를 하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자기 성찰은 주님 앞에서, 기도를 통해 선한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세는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과거를 회상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를 되돌아보고 이렇게 제물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의 권능을 상기하라는 뜻입니다.

회개가 과거를 돌아보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라면 유혹은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떨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과거에 잘못이 있었다면 그 어떤 유혹에 의해 잘못된 길을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심을 통해 유혹에 신중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과 기도를 하던 사막에서 시험에 드셨습니다. 굶주림을 채워 줄 빵과 주님의 사명을 망각하고 영광스러운 권력을 얻는 것, 그리고 쾌락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지금 우리 삶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회개는 과연 이러한 유혹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3가지 유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충동적인 욕구 충족에 대한 유혹

인간의 욕구 충족은 점점 커지고 그 중 많은 것이 충동적인 욕구입니다. 충동적인 욕구는 지속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욕구충족을 위해 그리스도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유혹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혹을 뿌리치는 것보다 쉽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벌어지는 잔악한 전쟁은 바로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있습니다. 더 높은 곳, 더 높은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자신은 물론 우리의 아이들을 전쟁 속에 내몰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교회도 기도도 우선순위에 밀리고 있지는 않은 지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기적에 대한 유혹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신비로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그 기적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을 만한 놀라운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바벨탑이 무너진 지 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벨탑을 세우려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탐욕의 결과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것만이 모든 탐욕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악마의 유혹은 매 순간 더 교활하고 악랄해지고 있어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끝내는 주님을 버리도록 합니다.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본받아 금식기도를 하며,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아버지이신 하느님만을 공경하는 효성스런 자식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회개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신성한 힘을 얻어 세상의 잘못을 따르지 않는 용기와 나와 세상을 바르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침묵과 절제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초자연적인 주님의 힘을 받는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이번 사순절에 나의 내면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저희가 또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사악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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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하노이 대교구장 키엣 대주교 : 2019년 3월 10일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제공
  |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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