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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사순시기는 내적 정화의 여정
조회수 | 2,157
작성일 | 07.02.23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머리에 재를 얹으며 듣게 되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라는 말의 의미는, 사순시기라는 여정의 초대장인 동시에, 어떤 여정을 떠나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이 여정은 하느님을 다시 바라보게 초대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다시금 찾도록 이끌어주며,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줍니다. 이 회개와 신앙의 여정을 통해 당신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신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에 빠져드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순시기는 내적인 정화의 여정입니다. 이 정화는 회개와 확신이라는 나눔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교회가 우리를 이 회개와 확신으로 초대하였듯이, 우리 각자도 이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과 확신을 오늘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모든 희망을 둔 사람이라면 용서하실 것이며, 그를 축복하실 것이고, 그와 함께 하시리라는 확신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여정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서 지내신 뒤에, 세 가지의 유혹을 받습니다. 이 유혹은 모두 세상과 연결된 것입니다. 재물과 영화, 명예를 추구하는 악마에 맞서서 예수님은 이 유혹들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거절하시는 방법이 인간적인 판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리시는 판단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기준은 인간적인 것이 아닌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당신 판단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그 말씀의 이끄심에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한 가운데 놓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결심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실천하기 위해서 얼마나 긴 여정을 가야하는지, 그 길이 얼마나 구불구불한지,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어려움과 고통으로 다가오는지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서로 다름’ 사이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나 고민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을,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어주시고 맡기십시오. 그 두려움과 귀찮음은 오래가지 않고, 곧 평안함과 행복함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도 이 여정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놓으려고 결심하고 실천해봅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마음을 열어놓으십시오. 그분께서 우리를 긴 여정동안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분은 바로 당신 자신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오셨고, 바로 당신 전 존재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셨다면, 그분의 영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재정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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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이란 말 그대로 숫자 40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약속이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 혹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서 참회와 속죄, 회개를 위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사순시기란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 혹은 부활의 여정을 향한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순시기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주님의 부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사순시기란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죽음을 넘어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 자체가 바로 사순의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사순시기가 은혜로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사순시기는 유혹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악은 주님과 우리를 갈라놓으려 합니다. 실체적으로 ‘무엇이 악이다’라고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현대사회의 경우 더더욱 모호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으려는 모든 것들은 악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비록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재물, 권력, 명예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악마의 유혹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셨던 그 유혹들 은 갖가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유혹들입니다. 그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 번에 걸친 악마의 유혹에 대항하는 예수님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유혹을 이겨내는 상황에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을 통해 모든 유혹을 이겨내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갖가지 유혹으로 점철된 사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의 악과 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신앙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때 비로소 갖은 유혹을 극복하는 사순의 삶은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총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정부교구 이은형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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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제가 주임사제로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아래에는 한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을 모신 봉안 시설이 있습니다. ‘평화의 문’

매주 금요일 이곳에 안치되어 계시는 분들의 영혼을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특히 겨울에는 추운 성당보다는 따뜻한 ‘평화의 문’에서 평일 미사를 주로 봉헌합니다. 처음 ‘평화의 문’에서 미사를 할 때에는 적지 않은 분들이 “왜 굳이 성당을 놓아두고 봉안시설에서 미사를 하느냐”고 불편함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불편함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수는 줄어들고,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보다 더 많은 분들이 ‘평화의 문’을 찾아 미사를 봉헌하십니다. ‘평화의 문’을 찾아 미사를 봉헌하시는 분들 중에는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마음의 슬픔과 아픔을 안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탄이 유혹하는 것들, 잘 먹고 많이 벌고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는 인간적인 욕심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일 것입니다. 그 욕망에 눈이 멀어 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했던 아담과 하와는 결국 선악과를 선택했고, 이런 인간의 욕망이 사람들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전부인 것처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들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시간의 짧고 긴 것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이들에게는 그리 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 속 소중한 것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잘 먹고 많이 벌고 높이 오르려고 했던 우리 삶의 욕망들은 무의미함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시간 속으로 사라질 그 어떤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자신의 영혼이 피폐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도, 나와 함께 했던 누군가가 떠나가도, 내 옆에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고 있음에도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불의함이 우리 주변에 너무 가깝게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와 보속의 시기입니다. 참회와 속죄의 시기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자비의 은총 안에서 더 단단하게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 의정부교구 안성남 안드레아 신부 : 2016년 2월 14일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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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

굶주린 이의 밥줄을 볼모로 삼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비정한 이가 없는 세상입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사람으로서 소중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내팽개치는 가엾은 이가 없는 세상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쉴 곳이 더 이상 사람들을 가르는 삶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보잘것없는 것이나마 넉넉하게 나누어짐으로써, 하느님을 향한 감사의 노래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세상입니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

권력, 재물, 명예가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엇에 의해 평가받지 않고,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존중받는 세상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음으로써, 하느님께서 찬양받으시는 세상입니다. 권력, 재물, 명예가 사람을 위한 봉사라는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이것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그 아름다움을 더욱 더 꽃피우는 세상입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

하느님의 믿음직스러운 동반자인 사람이 제 자리에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이가 겸손하게 삶의 뿌리요 목적이신 하느님께 나아가는 세상, 그리하여 하느님과 사람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이가 없는 세상, 자신이 하느님인양 다른 이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오만한 이가 없는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

아직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현실이 아닌 그저 달콤한 꿈처럼 다가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아름답게 나누어지기보다는 지배를 위한 무서운 무기로 작용합니다. 재물, 권력, 그리고 인간적인 명예는 마치 살아있는 신처럼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모든 사람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합니다. 어느덧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한 오만한 이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핑계 삼아 종교적 집단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하느님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나라, 힘없는 민족의 피눈물을 짜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분홍빛 꿈이 아니라, 소중히 보듬어야 할 아름다운 현실입니다. 지금 비록 어렴풋하게 보인다 해도, 걸어가야 할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우리 작은 손 맞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쉼 없이 내딛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그 세상을 위해, 이제 우리 모두가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밥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셨던 예수님처럼, 명예와 권력과 재물에 굴복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처럼, 하느님과의 참된 관계 안에 머무셨던 예수님처럼, 내가, 당신이, 우리 모두가 거대한 세상 유혹의 거센 물결을 당당하게 거스를 때, 이미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그분이 꿈꾸시던 세상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 2016년 2월 14일
  |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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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유혹에 흔들리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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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는 저마다의 ‘약점’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약점들을 통해 ‘유혹’이 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유혹자들은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습니다. 유혹자들은 우리가 가진 약점들을 통해서 너무나도 쉽게 하느님과 단절되고 멀어지게 만들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 당신의 때를 기다리시는 동안 유혹을 받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표현만 보면 악마의 유혹을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쉽게 단호히 이겨내신 것처럼 생각해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찾아오신 예수님 역시 유혹 앞에서 내적갈등, 흔들림이 있었을 것입니다.

후에 잡히시기 전에도,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시던 모습을 통해 ‘지금 나는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그래서 못하겠습니다.’라는 유혹 앞의 흔들리는 당신의 연약한 마음을 드러내시고 있죠.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흔들리셨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유혹을 받고 흔들리는 모습들로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유혹자는 이러한 연약함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끊임없이 이용해 올 것입니다. 유혹을 겪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유혹 앞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습은 죄책감이 아니라 약함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시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광야의 유혹을 물리쳤던 것은, 예수님 당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2코린 12,9) 우리는 나의 약점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부인하거나 방어하고 핑계만 대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가진 연약함과 약점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의 연약함 안에서,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강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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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홍유선 임마누엘 신부 :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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