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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의 자세
조회수 | 2,303
작성일 | 07.02.23
세상의 유혹

구약의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그로부터 50일이 지난 후 그들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십계명(율법)을 받은 은총을 기념하여 ‘오순절’ 축제를 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계명이 자신들을 옭아맨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또다시 은총의 시기인 사순절이 돌아왔습니다. 사순절은 교회가 교우들을 옭아매거나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시기를 통하여 세상에서 만나게 될 유혹과 시련을 이기도록 만들어 주는 은총의 시기인 것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를 지내는 오늘, 교회는 인간이 세상에서 만나게 될 모든 유혹과 그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약한 우리에게 또다시 용기를 줍니다.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께 던진 첫 번째 유혹은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 첫 번째 유혹은 결국 인간의 보다 나은 세속적 의식주에 대한 유혹인 것입니다. 화려한 명품 옷에 대한 유혹, 보다 맛있고 희귀하며 이름난 음식에 대한 유혹, 남들보다 넓고 안락하며 쾌적한 집을 소유하고 싶은 유혹인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의식주에 대한 유혹을 모두 뿌리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단호한 대답은 그것들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며,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루카 4, 4)

악마의 두 번째 유혹은 높은 곳에서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자신이 모든 삶에 중심이 되고픈 유혹을 받습니다. 가정, 직장, 교회에서 남들이 자신만을 보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경배해야 하는데 세상 것들을 그 중심에 두려하고 더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유혹에 늘 노출되어 삽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루카 4, 8)

악마의 세 번째 유혹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 유혹은 하느님을 시험해 보려는 종교적인 구원 놀이의 유혹입니다.

엉터리 진리, 기복적인 신앙, 값싼 은총, 진정한 자기 투신이 아닌 안락과 일신의 안일을 위한 신앙 유혹인 것입니다.

또한 이 유혹은 주님의 뜻이 아닌 제 뜻에 의한 신앙, 제 멋대로 살고자하는 유혹인 것입니다. 자주 우리는 주님과 거래하듯이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루카 4, 12)

사순 시기는 진실로 우리 인생에 순간순간 다가오는 피하기 어려운 이 같은 유혹들을 말씀 안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하는 값진 은총의 시기입니다.

믿음으로 유혹을 이김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빈 구멍을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그 같은 빈 구멍을 인간들은 역사 이래 권력과 부귀와 영화와 지식 등으로 메꾸어 보려 하였지만, 언제나 빈 공허함으로 인생 무상함, 외로움을 느끼며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빈 구멍은 하느님으로만 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의 빈자리를 채우실 수 있는 믿음, 그분만이 세상의 전부이며 중심이신 분이시라는 믿음, 주님께 의탁할 때, 그분께서 인생 순례의 여정에 동반자로 함께 하신다는 믿음만이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깨닫고, 느끼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에게 이집트는 세속 도시문화의 환락과 방탕과 쾌락의 유혹이 널부러진 곳입니다. 그곳에는 돈이 곧 절대자이며, 권력과 부가 사람의 정신까지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 같은 유혹의 이집트에서 우리가 헤어 나오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때문에 하느님을 찾기 보다는 술집이나 게임장, 도박이나 운동장, 노래방이나 온갖 취미 생활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이집트 도시 유혹에서, 이 사순절에는 진정 벗어나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신명 26, 8)

▶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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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기쁨의 사순절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오래전부터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수고수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여러 가지 고행과 극기를 자청해서 실행하는 전통이 있다. 예를 들어 술을 많이 하시던 분은 “이번 사순절에는 술을 끊어야지.”하고 결심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또 담배를 많이 피우시는 분은 “이번 사순절 동안에는 금연을 해야지.”하는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곤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요. 대견한 결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분들이 사순절 동안 자신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것들을 끊으면서 극기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을 위한 극기며, 무엇을 위한 고행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수고 수난하신 예수님의 그 구원의 길에 동참하기 위해서인가? 물론 양자 다일 수 있겠다. 그런데 사순절이 끝나면 다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이 있음을 볼 때 무엇을 위한 극기며, 고행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끊는다는 것은 보통 결심이 아니면 안 된다.

오늘 복음에서도 사탄은 예수님께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건드리며 유혹한다. 먹는 것, 명예, 권력. 이 세 가지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성취욕구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 유혹은 단호히 뿌리치신다.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르겠다. 물론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니까 그런 유혹쯤이야...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 인간 예수로 본다면 얼마나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까? 나라면 과연 어떠했을까?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백 프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옛말에 “사흘 굶어 도둑질 하지 않을 사람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그마치 사십 일을 단식하셨다. 나는 첫 유혹에 분명 넘어갔을 것이다. 아니라고 할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의 부패와 그에 대한 처벌의 기사를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부정과 부패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분명 끊이지 않고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나약한 본 모습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나약함을 아시고, 그 나약함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당신이 대신 그 유혹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구원 될 수 없음을 아시고 완전함 자체이신 당신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수고 수난을 받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주님께 저희는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라고 고백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구원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있는 것이지 인간의 어떠한 결심이나 고신극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

나약한 인간이 결심을 해 보았자 작심삼일이요. 고신극기를 한다고 해 보았자 자기만족과 또는 자기기만에 빠질 위험이 더 큰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나약함을 처절하게 깨달은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 2 독서에서 “그대가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 이다.즉 우리의 행업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는 것.” 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수고 수난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인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행업으로 영원하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사순절은 우리에게는 고통과 시련의 시기가 아니라 나약한 우리를 위해 대신 짐을 져 주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하는 기쁨과 감사의 시기인 것입니다.

형제 · 자매 여러분,
2007년 사순절이 극기와 고통을 생각하면서 힘들게 보내야 할 시기가 아니라. 그러한 것을 우리 대신 해 주시는 예수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시기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활짝 펴고 기쁨에 가득 찬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도록 합시다.

▶ 정귀철 신부
  |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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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가 시작되었다. 늘 사순 시기가 시작되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순 시기는 그동안 하느님께 불충했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부족하고 죄 많은 나에게 은총의 시간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는 교회가 고백하고 있듯이 ‘은총의 시간’ 이며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체험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의한 우리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시기이다.
‘신앙의 해’ 에 들어서서 맞이하는 사순시기이기에 우리 모두는 더욱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오늘 우리는 사순 첫 주일을 지내며 악마와 세상의 유혹에서 승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겪으심으로, 당신께서 참 사람임을 말씀하시며 사람인 우리가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는지 보여 주신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겪으면서도 하느님 사랑과 우리의 믿음을 의식하고 성찰한다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세상을 이기고 부활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사탄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확고한 믿음, 어떠한 경우라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사랑 안에 늘 있음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십자가 상의 죽음 앞에서도….
이번 사순 시기에는, 우리의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오늘 하루 하느님을 얼마나 의식하면서 지냈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얼마나기꺼이 응답했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얼마나 마지못해 응답했나?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렸나?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불평을 드렸나?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 비롯되며, 하느님께로 완성됨을 고백하며 지내자. ‘신앙의 해’ 를 지내는 우리에게, 믿음은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감정과 행동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 모든 일들, 내 모든 감정들도 하느님께 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 그 구원의 여정을 내가 사는 것이다.

춘천교구 이영주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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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성벽의 바깥세상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몸을 뉘일 곳도 먹고 마실 것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드문 일이어서 도움도 보호도 받을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철저하게 고립되고 알거지가 되어 버리는 곳입니다. 호세아 예언서에서 하느님께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기 위해 광야로 인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하게 속삭이리라” (호세아 2,16)

성서 속의 광야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장소입니다. 광야로 내몰린 인간은 모 든 것으로부터 멀어져서 하느님만을 섬기는지 아닌지 추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을 시험받기 위해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의 가혹한 현실 앞에서 고통의 소 리를 지르며 그렇게 자주 주님의 종 모세와 하느님께 대들었던 것입니니다. “우리 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 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 더라면!” (탈출기 16,3)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인간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안 깁니다. 그 불안을 참으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 흔들리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십일 동안의 단식으로 막다른 지경에 이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 뢰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루카 4,4)라고 망설 이지 않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단호한 대답은 인간 일생의 가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태도 안에 있으며 그러는 가운데 인생은 제 의미를 갖는다는 신앙선언 이기도 합니다. 의식주 확보가 최우선의 가치라고 여기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기 쉬운 우리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춘천교구 오세호 클레멘스 신부 : 2016년 2월 14일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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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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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하느님과 자신에게 했던 다짐이 작심삼일로 흐지부지된 것을 보며 이번 사순 시기만은 그러지 않겠노라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또 작은 유혹에 넘어가 이 다짐도 지금껏 그래왔듯이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왜 우리는 작은 유혹에 아무 저항도 없이 쉽게 빠질까?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지듯 작은 속삭임에, 편안함에, 허영심과 교만, 탐욕 등 너무나 많은 것들에 나 자신을 맡겨 버릴까? 유혹을 이기기 위한 교황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실천해 봅시다. “당신은 악마와 대화하지 않습니다. 기도합니다.”

유혹은 우리가 하느님을 피해 잘못과 죄, 부패에 머물게 합니다. 악마는 ‘거짓말의 아버지’ , ‘거짓말쟁이’ 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어떻게 기만해야 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속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악마가 이브에게 한 일입니다. 그는 이브를 ‘기분 좋게’ 해 주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단계를 밟아 악마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브를 이끌었습니다. 악마의 속삭임에 대화하며 아담과 이브는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악마는 셈을 할 때 지불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기꾼이기에 당신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고 당신을 알몸으로 만들어 놓고 떠납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대화하는 그 순간 결국 아담과 이브처럼 알몸이 될 것입니다.

악마가 사람을 속이려 할 때 대화를 통하여 하기 때문에 악마는 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는 다릅니다. 악마에게 그것은 이브와 전혀 다르게 끝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자신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예수님도 역시 알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성부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길입니다. “당신은 악마와 대화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유혹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유혹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혹을 받을 때 우리는 ‘우리 눈이 열려’ 주님께 도와주시기를 간구할 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그것을 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주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돌아와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대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저는 약합니다. 저는 당신으로부터 숨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용기입니다. 승리입니다. 당신이 대화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결국 정복당하고 패배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그리고 이 용기 안에서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유혹의 때에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기만당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 주시기를. 주님께서는 이렇게 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 때문에 오셨습니다. - (바티칸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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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이영주 타대오 신부 :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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