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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유혹을 이겨내는 힘
조회수 | 2,114
작성일 | 07.02.24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들의 삶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이왕 먹는 거 좀 더 잘 먹고, 이왕이면 좀 더 좋은 옷에, 좋은 집에 남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좀 더 쉽게 고민하고 좀 더 편한 방식으로 결정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편하고 더 쉬운 방식들 안에는 많은 경우 이기적인 욕망이 포함되어 있고 거기에는 한쪽의 성공과 함께 반대쪽의 불행과 실패, 좌절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합니다.
서로 간에 알맞은 수준에서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지만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챙기려 할 때 무력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며 분노와 좌절, 실패가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성공과 번영은 소수에게만 주어진 영광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픔과 상처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 하고 가지지 못한 이들 역시 자신의 생존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진 이들의 것을 뺏으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혹을 경험합니다. 더 쉬운 방법, 나에게 좀 더 유리한 방법, 다른 이들이 아파하고 실패하게 하는 결정적인 방법이라도 나 자신과 우리 가정, 우리 집단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린 수많은 아픔과 시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려 합니다.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과 노력은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헛된 욕망을 채우기 위한 유혹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유혹을 이겨내게 하는 힘은 바로 우리 신앙에 있고 우리가 마음을 모아 봉헌하는 기도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시며, 인간이면 경험하는 온갖 유혹들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음을 알려 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유혹들을 예수님께서는 이겨내셨고, 이러한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을 향한 굳은 믿음과 신뢰에 있음을 우리는 믿고 고백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유혹을 받으셨다고 하지만 이 40이란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죽음을 피해가고자 하는 유혹을 받으셨음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40일의 유혹기간은 예수님의 한평생을 말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한평생 인간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유혹을 당하셨고, 그 유혹과 끊임없이 싸웠고 결국엔 이겨내셨음을 오늘 복음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성공이라고 평가받는 외로운 광야같은 이 세상에서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꿈과 희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면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모든 나약함을 정면으로 부딪혀 이겨내신 분이십니다. 나약한 존재였지만 사랑이란 칼과, 기도라는 방패를 들고 악의 세력을 이겨내신 분이십니다. 자신만의 영광을 위해 이기신 분이 아니라 바로 모자라고 부족한 우리 인간을 위해, 바로 우리 가정을 위해, 너무도 연약한 나, 바로 나를 위해, 꿈과 희망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광야처럼 삭막한 이 세상에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유혹들, 나의 약함과 모자람에 당당히 맞서며, 주님 부활의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 주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노중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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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이마에 재를 바른 후 사순 기간의 첫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마에 재를 바른 의미, 즉 우리는 현세의 삶이 끝난 뒤에는 그 세상에 큰 의미를 주지 않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 이 세상에 복음을 드러내는 삶의 의미를 드러내도록 노력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사순 첫 주일을 지내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단식하시고 악마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주님의 고통스럽고 힘든 모습 안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유혹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유혹의 모습을 조금은 다른 모습에서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혹이 있으려면 3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유혹당하는 사람, 유혹자, 유혹방법입니다. 여기서 유혹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 작은 일처럼 느껴지지만 내가 약속한 모습,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로 이끄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일어나겠느냐?’ 식의 생각으로 행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 유혹자의 손길 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유혹의 손길에서 가장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바로 자신이 행한 사실에 대해 부정하는 모습입니다. 아니면 참된 것을 부정하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봅시다. ‘내가 유혹자의 유혹으로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리기보다, 투정하고 그 사랑을 부정하지는 않았나?’ 하는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처럼 유혹을 이기고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것을 하느님 안에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고픔, 하느님 능력에 대한 의구심,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약속하신 권력에 대한 의심을 모두 버리시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항구한 믿음을 지니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참된 겸손과 사랑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고통과 괴로움, 모든 것들을 사랑 안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순 기간 안에서 그 모든 것을 자신 안에 받아들일 때 우리는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의 참된 부활을 함께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길로 함께 나아가도록 유혹을 이겨 나아갑시다. 아멘.

군종교구 양정진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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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은 사람이 물과 음식 없이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개인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물 없이는 약 1주일, 음식 없이는 한 달 정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말이 그렇지 하루 이틀만 굶어도 사람은 엄청나게 예민해지고 힘도 쭉 빠집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먹고 마시는 것은 즐거움을 넘어서서 생존과 직결되기에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나가셔서 무려 40일 동안이나 단식을 하십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그 시간동안 그냥도 힘드셨을 텐데 악마에게 끊임없이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40일이 되어 모든 일을 마치셨을 즈음에 악마가 또 유혹을 시작합니다. 배고프신 예수님께 식욕으로 유혹하고, 권력과 부를 가지고 유혹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생명을 가지고 유혹을 합니다. 인간으로서 자칫 약해질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악마의 교묘한 유혹을 오로지 성부께 대한 믿음과 성경 말씀으로 이겨 내셨습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악마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유혹은 우리 인간의 욕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법을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공격을 막아 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13)라는 말씀은 악마의 유혹이 그만큼 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시기를 노려서 또다시 우리에게 유혹하러 다가오기에, 우리는 늘 경각심을 가지고서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시는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그분이 걸어가시는 그 길에 수많은 유혹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마지막까지 걸어가시는 그분을 바라보며, 우리도 마음을 단단히 무장하여 그분의 길에 동참하도록 합시다.

▥ 군종교구 김병흥 세영 알렉시오 신부 : 2016년 2월 14일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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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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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제 사순 시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순 시기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바로 유혹의 문제입니다. 이 유혹의 문제는 창세기 때부터 시작되었지요. 그것은 바로 ‘선악과’입니다. 아마 인간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유혹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창세기가 묘사하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와 쳐다보니 먹음직하여 ‘먹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며 고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하게됩니다. ‘차라리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다면? 죄지을 기회도, 죄지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라고 말이지요.

그럼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선악과’ 자체는 죄인가요? 아니지요. 그럼 그걸 전해주려고 유혹하는 ‘뱀’이라는 존재가 죄인가요? 아니지요. 그럼 무엇이 죄가 됩니까? 그 유혹에 넘어가서 짓게 되는 행동이 죄가 되겠지요. 내가 유혹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곧, 유혹이 문제가 아니라 유혹을 받는 사람의 선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겠
습니다.

인간인 이상 우리는 누구나 유혹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살펴본다면,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이 참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심을 잘 보여 주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유혹의 모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빵의 유혹, 힘의 유혹, 신앙의 유혹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들이 세상살이에서 매일 당하는 유혹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가 있다면, 예수님은 유혹당할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그 유혹을 물리쳤다는 겁니다. 유혹을 이기는 길은 바로 내 뜻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말씀을 한 치도 어김없이 지키는 데 있음을 오늘 복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나에게 찾아오는 유혹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혹시 자신이 유혹을 받고 걸려 넘어졌다고 해서 언제까지 사탄 탓만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40일 동안 유혹을 받으셨으나 이겨내신 예수님처럼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주님께 그 인내와 지혜를 허락하시기를 다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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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안원철(펠릭스) 신부 :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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