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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생명 빛나는 사람들
조회수 | 2,278
작성일 | 07.03.02
된장은 바람이 잘 통해야 맛있는 된장이 된다. 된장을 빚고 나서 뚜껑을 닫아 두는 이는 없다. 맛있는 된장을 만들려면 햇빛에 쪼이고 바람을 잘 통하게 해야한다. 그렇게 하면 빛깔도 먹음직스러울 뿐 아니라 입맛을 당기게 된다. 바람이 잘 통한 된장은 좋은 냄새가 난다. 늘 밥상에 올리고 싶은 좋은 반찬이 된다. 가끔은 파리가 알을 낳고 가기도 하겠다. 그러나 유명한 속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지 않는다' 된장을 빚고 나서 뚜껑을 열어두지 않으면 썩는다. 물이 고이고 색깔도 좋지 않다. 냄새도 나고 맛도 없다. 썩게 되는 것이다. 썩은 된장을 우리는 더 이상 된장 취급하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최고인양 먹으라고 강요한다면... 먹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뚜껑을 열어 놓아야 한다. 햇빛을 쪼이고 바람을 통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맛있는 된장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다. 자신 안에만 갇혀 뚜껑을 닫아 버리고 소통시키지 않으면 썩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최고인 양 남에게 강요한다면 그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얼굴 빛도 그리 밝지 않다. 가까이 가는 것을 꺼리게 된다. 자신을 열어 놓고 타인의 의견을 소중하게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웃지 않아도 빛이 나고 화를 내어도 가시가 없다.

하느님께서는 흙을 빚으시고 숨을 불어 넣으셨다. 그러자 흙이 생명 빛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애초에 생명 빛이 가득한 사람이었으니 스스로 다시 흙빛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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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장수백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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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희망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공포와 불안은 죽음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두려운 것은, 의지나 행위의 주체인 인간이 스스로 삶의 지고한 목표를 잃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태 즉, 미래의 희망을 잃은 정신적 상태를「절망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절망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병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비록 현재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미래를 볼 수 있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고 창조하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위대성과 지고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둘의 차이는 미래를 향한 희망, 이것을 간직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신앙 안에서도 똑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지켜야될 기본적인 덕을 3가지 즉, 향주삼덕(向主三德주)이라 하는데, 희망을 그 중의 하나의 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믿음 안에서 가지는 희망의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합리적이고 명확한 근거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사순 제 2주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사건을 보게 된다.

이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에 나오는 소재들은, 하느님이 옛날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에 나오는 소재와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다.「산」과「구름에서의 소리」「동반자 3명」등이 그것인데, 이것의 의미는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리고「모습이 변하다」「옷이 빛나다」등은, 묵시문학의 종말 서술에서 빌어온 소재로, 이는 예수님께서 종말을 앞당겨 사신 종말론적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있다. 그리고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세와 엘리야는, 바로 구약을 대 표하는 인물들 즉, 율법과 예언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주인공으로, 율법을 선포하고 유다교를 창시한 구약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고, 엘리야는 아합왕 시절 유다교와 율법이 바알 신앙 앞에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홀로 율법을 수호한 대표적 예언자이다.

그런데 이 분들은 공통점을 가지는데, 그것은 예수 시대 사람들이 그들은 모두 승천하였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야의 승천은 명백히 성서에 나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나 모세는 모세 오경에 땅에 묻힌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민간 전승에서는 모세 승천기가 전해지고 있었고, 모두 모세를 승천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승천. 하늘에 올랐다. 이것의 의미는 하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는 것을 알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하늘은 단순히 공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신 장소를 상징한다. 때문에 「승천하셨다」라는 사실은, 단순히 공중으로 올라간 사실을 이야기하는 용어가 아니라, 하느님이 계신 하느님 나라에 오름, 구원을 상징하고 있다. 때문에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바로 예수님이 천상적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장차 하느님 안에서 구원받을 우리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은, 하나의 시현 사화로서, 예수님의 초월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구원받을 사람들이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었다.
예수님이 왜 이러한 모습을 미리 보여 주셨을가? 단언 할 수 없지만, 미래를 향한 하나의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즉 박해와 고난 앞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희망을 간직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바로 이 변모 사건 앞뒤에 수난 예고가 나오는 점만 보더라도, 수난과 이 사건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두운 밤 폭풍우 속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등대가 바로 이 변모 사건의 의미일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박해와 위기 상황 속에서 포기하고픈 유혹을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갈 수 있었던 힘도, 그들이 누릴 미래의 영광스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인간의 삶에는 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다. 길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상황. 거기에 더하여 나를 위로해줄 단 한 명의 동료도 보이지 않고, 하느님마저도 나를 버린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죽음이 차라리 행복일 수 있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때 우리를 다시 구원할 수 있는 힘은, 그 고통 속에 잉태된 미래의 결과를 볼 수 있는 눈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나의 실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사건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누릴 마지막 영광의 모습을 묵상해 보자!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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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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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순 시기는 부활을 향한 기간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고통과 슬픔으로 끝나는 한 삶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전례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산에 오르시어 당신 모습을 변화시키신 사실을 기억하면서 부활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을 받고 사막으로 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수 많은 별을 세어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후손을 그렇게 많게 해주시리라 말씀하시고 보이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삼 년 된 암송아지, 암 염소, 숫 양 각각 한 마리씩, 산비둘와 집비둘기 각각 한 마리를 하느님께 가져오라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반으로 잘라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습니다. 아브라함은 맹금들이 그 위에 오지
않도록 쫓아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지 햇불이 그 쪼개진 사이를 지나갑니다. 하느님께 아브라함과 동물 쪼개어 그 피와 함께 계약을 맺으십니다. 구약사상에서 계약 사상이 중요한데 히브리 말로 버리트(בְּרִית)와 연결시켜서 Martin Noth가 대표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원이 '쪼개다'라는 의미가 있어서 오늘 아브라함과 하느님 사이의 계약의 의미를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 판을 다시 받기 위해서 시나이 산에 오릅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하느님과 지내며 밤낮 사십일을 지내며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손에 증언 판 두 개가 들려 있는데 본인도 모르게 얼굴의 살갗이 변하여 빛나는 것입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은 그의 빛나는 얼굴을 보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하느님을 뵈려 갈 때만 너울을 벗었습니다 (탈출 34,34)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십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구약의 대표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장차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과 세상을 떠나실 사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이 광경을 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서 떠나려 하자 베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루카 9,33) 그러는 가운데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35절)라는 소리가 울려오고 제자들은 스승님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체는 아니더라도 세 명의 제자들에게 장차 수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미리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주님의 죽음 앞에 뿔뿔이 흩어지지만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그들이 다시 모여 당신부활을 증언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손에 대한 실망감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보이는 계약을 통해서 그 성실하심을 약속하시고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징표로 형성용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필리 3,21)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가 썩어 없어질 몸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리라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미래에 대한 희미한 희망을 간직하지만 언젠가는 주님의 확실한 모습을 뵈오며 우리 자신도 변화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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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 2016년 2월 21일
  |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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