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6 97.2%
[의정부] 구름이 태양을 가려도
조회수 | 2,298
작성일 | 07.03.02
현재 칠레의 빈부격차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 심각성은 부유한 지역은 5만 명의 신자를 위해 60명의 사제가 일하지만, 가난한 동네는 50만 명의 신자를 위해 20명의 신부가 일하는 사목 현실에서도 드러납니다.

“라 삔따나(La Pintana)” 구역은 해마다 칠레에서 범죄율 1-2위를 다툴 만큼 심각합니다. 마약거래, 마약상인들의 총격전, 알코올 중독자, 동네 여성의 60%가 넘는 미혼모, 80% 이상의 동거생활 등이 그 심각성을 말해줍니다. 조악하게 지은 10평 남짓한 집에 혼인유대도 없이 구성된 6-7명의 가족이 함께 살기에 가정폭력, 근친간 성문제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이 때문에 상처와 갈등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고, 청소년들은 길거리를 배회하며, 그런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마약, 성, 알코올, 폭력 등에 쉽게 빠져들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은 산티아고 36개 구들 중에 한 구역일 뿐이고 특수한 경우입니다. 산티아고 대교구의 200개 본당 중에 재정적 독립이 어렵고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으로는 교구사제를 파견하기 어려워, 약 40% 이상을 외국 선교사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선교사들이 필요합니다.

이 곳 신자들의 상처와 한(恨)을 듣고,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 없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면, 저는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서, 같은 신앙인으로서,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 일하는 선교사이자 신부로서 자신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지만, 어떠한 지향과 마음을 갖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고, 때로는 내 마음 속에서 화가 일어납니다. 이들은 왜 이런 곳에서 태어나 이런 환경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너무나 어렵습니다.

답을 구해봅니다. 그냥 살아봅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벗어나거나 도망치려 하지 않으며, 삶의 한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답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의 무기력이 삶의 에너지를 고갈시킬지라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려 합니다.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이 저를 인도하십니다. 내 인생에 빛을 주신 성령에게서 오는 희망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믿음의 힘이 저를 끌어갑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변모를 통해 깨닫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이며 진실인 듯 삶을 왜곡시키어 우리를 허무의 그늘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현실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거룩한 변모를 통해 당신의 참된 모습을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며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십니다. 세상을 이기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당신을 진실 되게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에 의해 건설될 참다운 공동체의 예표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자신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끼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 이는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께서 나의 삶에 개입하셔야만 한다는 빈손의 봉헌이며 기도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우리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자각시키며 주님께 이끄는 힘이자 약속이며 희망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제 우리의 꿈은 제2의 그리스도입니다. 아멘.

▶ 서근수 비오 신부
446 97.2%
들리세요

신앙교육원 졸업미사가 있었습니다. 기쁘고 고맙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환한 웃음이 성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또한 많은 눈물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이었고, 그리움의 눈물이었고, 아쉬움의 눈물이었습니다. 마음에서 나온 사랑과 감격이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그러니 이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마음을 읽어야 눈물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읽어야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을 구분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읽을 수 있습니까?

눈물 흘리는 이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알 수 있습니다. 듣지 않으면 눈물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제대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고, 모세와 엘리야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초막 셋을 짓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눈으로는 보았지만, 그 마음을 읽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예수님의 영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십니다.“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예수님을 제대로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선 제대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듣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듣고 제대로 볼 때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듣는 것 보다는 보는 것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보이지 않으면 답답해 합니다. 하지만 보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듣는 것에 소홀해질 때 진실을 놓칠 수 있습니다. 진실은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 김효준 레오 신부
  | 02.26
446 97.2%
2013년 새해를 엊그제 맞이한 것 같은데 벌써 2월의 마지막 주일이며 사순 2주일입니다. 시간이 무척 빠르게 지나가는 듯 느껴집니다.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는 그 누군가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사실 세상 그 누구도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변화합니다.

어린 시절 시간 속의 변화를 우리는 성장이라 표현합니다. 성인이 된 후 시간 속의 변화를 일반적으로 노화라고 표현합니다. 신체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인간은 늘 변화합니다. 이는 영성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십니다. 당신이 받으셔야할 영광스러운 모습을 앞서 보여주십니다. 어쩌면 이는 당신 만의 영광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받을 영광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취하신 방법은 ‘육화’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거룩함의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거룩함의 여정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르며, 그 성화의 끝은 바로 구원입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거듭하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에로 향하는 우리 신앙인에게 그 변화는 거룩함이 되어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을 따라 사는 세속화의 삶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화란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과정 속에서 실현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정부교구 이은형 신부
  | 02.23
446 97.2%
[의정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피정의 집입니다. 성격이 게을러서 여기 들어와서 쓰게 되었는데요. 하루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 줄줄 외우고, 아무리 신구약 성경을 꿰뚫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아무리 성경 텍스트에 대한 훌륭한 해석과 감동적인 설교를 하고, 아무리 고차원의 신학적 강연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자기 영혼이 직접 예수님과 만나지 못하고 예수님의 현존, 예수님의 위로, 예수님의 구원을 체험하지 못 하면 모두 허공에 오락가락하는 신기루일 따름입니다.”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인데,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이더군요.

제가 주교님이 언급하신 능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이 말씀은 그것을 지향하며 살아온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요. 제가 글 서두에 게으르다고 말씀 드렸는데 강론 준비도 마찬가지로 미리미리 해놓지 않습니다. 임박해야 더 빨리 잘 나온다는 체험적 지식(?) 덕분에 빨라야 이틀 전에 묵상을 하고 강론을 씁니다. 그런데, 제 동창 신부 중에는 강론을 미사 열흘 전에 끝내놓는 친구가 아는 경우만 두 명이나 됩니다. 저 같으면 거의 불가능한 영역인 셈인데 그만큼 강론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는 본인들의 고백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 점에서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만큼 좋은 강론, 책임 있는 강론을 들려드리고 싶은 사제들의 바람이겠습니다.

좋은 강론은 복음(기쁜 소식)이라는 주재료를 가지고 사제의 깨달음이라는 레시피를 통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통찰이나 깨달음도 잘 소화해서 자기 식으로 표현해내면 듣는 신자들은 기쁨과 즐거움이 배가 되지요. 우리들의 신부님께 직접 듣는 강론이니까요. 하지만, 오늘 같은 복음 말씀이 나오는 날은 좋은 강론의 한계를 맛보는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가 직접 본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하느님 본연의 형상이었겠습니다. 우리네 인간 언어라는 게 내가 맛집이라는 데 가서 먹고 온 음식을 전하는 데에도 참으로 부족할진대 어찌 하느님의 형상을 언어로 그려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제들은 오늘 복음으로 강론할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준 이유에 대해 말하곤 하나봅니다.

저희 사제들도 예수님의 그러한 변모를 보지는 못했으니 말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직접 만난다는 것에 대해 결국은 생각하게 합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변모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을 것이고, 어떤 이유에서 자신들에게 보여주셨는지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건 그다음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진정한 친구란 만나면 어떠한 이익이 되고 좋은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계산은 이차적인 부분이 됩니다. 동고동락을 거듭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친구라면 ‘그냥’이라는 단어가 따라오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러려면 계속 만나야지요. 만나지 않으면 향수요 그리움일 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그러한 분이십니다.

▥ 의정부교구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 : 2016년 2월 21일
  | 02.19
446 97.2%
[의정부] 나의 삶도 그분으로 인해 변해야 합니다.

--------------------------------------------------

가끔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있습니다. 예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래서 그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너무도 싫어 아주 잠시라도 이 시간이 조금만 멈추었으면, 아니 아주 조금만 느리게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했던 것이죠.

오늘 복음 말씀은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라고 전해주고 있지만, 베드로는 은연중 지금 이 순간이 잠시 멈추어 주기를 바랬던지도 모릅니다. 불명확한 희망이었던 예수님이 명확한 거룩함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분의 옷이 새하얗게 빛나고, 하늘 나라에 있어야 할 엘리야 예언자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의심할여지 없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보게 된 것이죠. 이에 베드로는 이야기합니다.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고 죽음을 당하셔야 할 저 산 아래의 세상을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계시는그 행복한 순간에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고통 받고 그분을 따라 죽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누리시는 영광만을, 그분에게서 오는 기쁨과 행복을 얻기만을 바랄 뿐이었죠.

하지만 그들은 산 아래로, 세상으로 다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산 위에서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이 아무리 좋아도, 거기에 눌러 앉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련들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돌아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이 부딪히고 극복해 나가야 할 현실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과 마음가짐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겪어야 할 고통과 시련이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중요한 과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반복되는 나의 삶이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상 안에서도, 어느 순간이 계기가 되어 ‘아,하느님이 계시는구나, 그분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는 하죠.

우리에게 그 순간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의 삶 안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세상살이 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며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변모를 체험하였다면 제자들이 그러하였듯 나의 삶도 그분으로 인해 변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의정부교구 홍유선 임마누엘 신부 : 2019년 3월 17일
  | 03.16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07   [수도회] 한 해의 유예기간  [4] 2429
706   [군종] 회개는 올바른 결심과 관계의 회복  [3] 2078
705   [수원] 하느님의 사랑 + 인간의 노력 = 구원  [9] 2374
704   [의정부] 거름 되게 하소서  [4] 2413
703   [인천] 회개는 그리스도다?  [7] 2289
702   [대전] 회개, 인상 쓰지 말고 신나게!  [1] 1048
701   [서울] '나만이라도' 회개를  [7] 2325
700   [마산] 회개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항복이다.  [5] 2469
699   [안동] 회개의 은총  [3] 2369
698   [대구] 사랑의 열매를 맺자!  [5] 2209
697   [부산] 제 잘난 맛에 산다(?)  [6] 2391
696   [원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84
695   [춘천] 세속의 신을 벗어 던지자  [4] 2342
694   [전주] 회개로의 초대  [1] 85
693   [광주] 회개와 징표  [1] 2222
692   (자) 사순 제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3] 1823
691   [안동]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  [1] 922
690   [부산]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와 믿음.  [5] 2290
689   [수원]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  [5] 2474
688   [수도회] 참 맛나는 기도  [8] 2337
687   [인천] 변화는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8] 2323
  [의정부] 구름이 태양을 가려도  [4] 2298
685   [춘천] 나는 소망합니다  [3] 2200
684   [서울] 그의 말을 들어라!  [6] 2293
683   [마산] 십자가의 길은 주님이 가신 길, 구원의 길.  [5] 2421
682   [대구] 예수님의 영광은 우리의 희망  [4] 2273
681   [청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1] 638
680   [대전] 욕심을 버리고 변화됩시다.  125
679   [전주/제주]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2] 2138
678   [원주] 생명 빛나는 사람들  [2] 2278
677   [군종] 포기하는 아픔을 받아들입시다  [1] 97
676   (자) 사순 제2주일 독서와 복음 [예수님의 변모]  [3] 1875
675   [부산]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  [4] 2091
674   [안동]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  [3] 2205
673   [수도회] 예수님은 광야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5] 2196
672   [군종] 유혹을 이겨내는 힘  [3] 2095
671   [대구] 사순절을 보내며  [3] 1772
670   [서울] 예수님의 아름다운 은퇴(?)  [8] 2286
669   [의정부] 사순시기는 내적 정화의 여정  [4] 2158
668   [춘천]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의 자세  [4] 2283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