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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예수님의 영광은 우리의 희망
조회수 | 2,288
작성일 | 07.03.0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제 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겪어야 할 죽음의 길에서 제자들이 절망에 빠지지 말고 용기 있게 당신의 뒤를 따를 수 있기를 바라 는 격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구약에서 예언 된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심을 증언하는 모습입니 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며 엘리야는 예언자의 대 표로서 율법과 예언서에 그리스도의 오심과 수난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분이 예수님과 대 화를 나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고대하는 그리스도 가 예수님이시며, 세상을 위해서 몸값을 치루고 십 자가의 죽음을 겪어야 할 분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내가 선택한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엇을 위해 뽑은 아들이란 말인가요? 바로 인류를 위하여 대신 죽도록 계획된 아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 아드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당신이 선택한 아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하느님의 영광, 영원을 체험하였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은혜로운 시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시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힘들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지난 2월초에 한티에서 2박 3일 ‘성령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참석한 수강자 대부분이 짧은 시간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뜨거운 활동을 체험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모습들이었지만 떠날 때는 모두가 밝은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은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신앙으로 극복하는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세주라는 이 말의 의미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십자가는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필리 3, 21)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케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 손문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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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는 싸움

신앙인이 비신앙인보다 5-6년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또 병원에 있는 환자도 신앙인이 비신앙인보다 훨씬 빨리 낫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인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낫는다는 희망,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고통이 없는 기쁨이 가득한 것에 대한 희망,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어렵고 힘들어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잘 견뎌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희망이 있다면 지금 힘들어도 이겨낼 힘이 나고 행복한 것입니다.

시인 도종환씨도 자신의 시「암병동」에서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뿐일 때도 우리는 온몸 던져 싸우거늘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 하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 부정, 부패 등과 맞서 싸우는 것도 희망이 있는 싸움이며, 그리스도인이 겪는 십자가도 희망이 있는 것이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장차 받을 행복에 비한다면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희망이 있는 고통이며,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현재의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타볼산으로 가셔서 당신의 감추어진 신적인 면모를 보여 주십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수난의 길을 가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정신력이 그렇게 강하지 못하기에 예수님의 수난을 받아들일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 가운데서도 승리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당신의 신적인 면모를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기쁨이 없고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 참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다보면 고통 받고 짜증스러울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그것을 약속한 예수님과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신적인 모습은 결국 우리가 희망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제 2 독서에서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새기며 우리도 언젠가는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집시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1)

▶ 박영일 바오로 신부
  |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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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 은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히 변모하심을 전하는 오늘 복음을 들으면, 이 나비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고자 간절히 원하고,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당신부활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앞으로 겪게 될 시련에 용기와 위로를 주시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나비가 번데기로서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을 때 비로소 찬란히 날아오를 수 있는 것처럼,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를 잘 준비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것일 터입니다. 저는 얼마 전, 교우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사제이고 싶다는 원의로 웰 다잉 (well-dying)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책들이 하나 같이, 결국 잘 죽기 위해서는, 즉 훌륭한 죽음(good death) 을 준비하고 맞이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잘살아야 한다는 것, 훌륭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훌륭하게 살아야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면서도 간과하는 부분으로, 우리는 죽음이란 먼 날의 일, 남의 일인 양 외면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오늘이 내 삶의 첫 날, 내일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인 양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 현자들이 권고하듯이, 매일을 잘 살아야 할 텐데 도대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자로, 높 은지위에 건강하게 사는 것도 잘 사는 것이겠지만,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다행히도 더 고귀한 지표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 리스도인으로서 잘 살겠다고 우리는 세례 때 몇 가지 서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매해 사순시기가 오면 조금 더 깊게 우리 삶을 성찰하고 이 서약을 기억해 봅니다. 세례 때 했던 서약을 일상으로 실천하고자 한 번 더 노력해 봅니다. 그리고 십계명도 칠죄종도 한 번 더 챙겨 봅니다. 칠죄종(七罪宗)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 -은 ‘그 자체가 죄이면서 동시에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죄’로, 6세기 말 그레고리오 1세 교황님께서 교리화하셨지요. 또 지난 2008년 교황청은 ‘세계화 시대의 신(新) 칠죄종’으로 환경파괴, 윤리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과학실험, DNA 조작과 배아 줄기세포 연구, 마약 거래, 소수의 과도한 축재(蓄財), 낙태, 소아성애 등을 들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잘 살겠다고 이 믿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아니,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께 잘 살겠다고 서약했고, 매년 오는 이 사순 시기는 그러한 우리가 특별히 우리 본연의 삶을 더 잘 살아가며 실천하겠다고 애쓰는 시기가 아니겠습니까? 아 름답게 날아오르는 나비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번데기로서의 시간을 견디고 기다려야 하듯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거룩한 변모를 우리 꿈이요 목표로 삼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터 입니다. 교회 전통의 지표들을 우리 삶의 지표로 삼아 매일을 깨어서 사는 이가 됩시다. 그리하여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이가 되어 웰다잉을 넘어 궁극에 거룩한 변모와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영복의 사람이 됩시다.

대구대교구 최의정 신부
  |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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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삶을 향하는 길

“주님,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상황들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기쁨과 환희를 뒤로 한 채 예루살렘에서 죽음의 행진인 십자가의 길을 가려 하십니다. 십자가를 향한 길이란 현세에만 머물지 않는 하늘나라를 향한 길이며, 스승과 함께 하는 길이며, 하느님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결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했던 것처럼 잠을 자다가 어느 한순간에 맞이할 수 있는 요행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계절 속에 있으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변화 속에 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처럼 지금 이 자리에만 머물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우리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시고 난 뒤,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구세주이시며 메시아로서 스승으로서 제자들도 당신처럼 십자가를 지고 새로운 산으로 올라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산은 죽음과 고통을 넘어선 부활의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지기 싫어합니다. 아무리 나라가 어렵고 내 곁의 사람들이 실업과 자살로 삶을 포기하는 이 마당에도, 함께 하는 십자가의 고통을 거부하고 한순간의 영광만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뱃속을 하느님처럼 섬기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하고, 세속의 사물에만 마음을, 온 정신을 빼앗기며 삽니다.

그렇다보니 욕심에, 외모에, 다른 사람의 관심에는 당당하지만 자신의 내적 변화에는 언제나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이런 소극적인 신앙생활은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열리지 않게 만들며 빈껍데기의 변화만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나의 선택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면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은 지금의 현세적인 만족감, 순간적인 만족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소중한 삶과 앞날의 운명을 모두 하느님께 맡기고 산을 내려와 주님과 함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은 현세적인 두려움도, 핍박도, 분열도, 수고도, 불행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처럼 순간적인 황홀감에 젖어 그곳에 머물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제자로서 묵묵히 스승을 따라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산인 골고타에 올라가도록 노력합니다. 아멘.

▥ 대구대교구 이상해 스테파노 신부 : 2016년 2월 21일
  |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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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거룩한 변모

사순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희생과 극기를 통하여 자신을 정화하여 주님의 부활 축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순 시기의 각 주간 마다 고유한 주제를 가지고 독서와 복음을 배치함으로써 신자들이 보다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순 제2주의 고유한 주제는 ‘거룩한 변모’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때마다 대동하시는 세 제자(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사도)와 함께 산(다볼산으로 추측)에 오르시어 기도하시는 중에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함께 나타나서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루카 복음사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앞으로 받으실 당신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 곁에 함께하시며 주님과 말씀을 나누셨다는 것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구약의 율법과 엘리야로 대변되는 모든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나타난 것과 같이 주님의 구원은 오로지 수난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며, 그 끝은 주님께서 다볼산에서 미리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제2독서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고통받고 있는 필립비인들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미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0-21) 이 말씀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희생과 극기를 통하여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당신이 본격적인 수난의 길로 나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리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 확고하게 보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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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상열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 2019년 3월 17일
  |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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