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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중간만 하는 교회?
조회수 | 2,154
작성일 | 07.03.15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창피한 일이지만 많은 부분 이 말대로 살아와 버렸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제가 몸담고 있는 천주교라는 종교도 생각해봅니다. 여러 가지 통계로 보았을 때, 자체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다른 종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덜 나빠졌기 때문에 가만있어도 오히려 더 나아보이는 현상인데, 그냥 가만히 있으니 중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천주교 신자가 74.4%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지난 10년간의 모습으로 보낸다면, 10년 후 과연 74.4%의 증가를 자신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이미 여러 지표들이 그리 밝은 전망을 예측할 수 없게 합니다.

6.25 한국 전쟁 후 한국천주교회는 전후복구사업과 사회복지사업에 참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큰 신자 증가를 이루었습니다. 그 이후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부흥하며 정부와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까지 세례자는 계속해서 증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교회의 신자증가율은 하향세를 걷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혹자는 “교회가 사회에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 내지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학자들과 의식 있는 분들이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좋은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시된 것들이 아무리 좋고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신앙인들의 토대가 부실하면 교회 안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 그 토대의 상태를 어떻게 알아보고 대처할 수 있을까? 교회공동체에 ‘사랑이 얼마나 있는가’로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랑이 적으면 의욕도 쇄신에 대한 의지도 약해집니다.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 하지만 실은 사랑이 없었던 ‘큰 아들’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을 이해하고 간직할 수 있다면 그 기본 토대는 건실해질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성이 더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복음 선포가 기쁜 소식이 되어 퍼져간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우리의 체험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어부지리의 소극적 모습이 아니라 적극적인 복음 선포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교회의 쇄신과 성장을 위한 바탕은 역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이해와 닮기 위한 노력일 것입니다.

▶ 도현우 안토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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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장거리 여행을 할때 한 번 이상은 휴게소에 들릅니다. 휴게소에 들어가는 것은 화장실도 다녀오고, 좀 쉬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등 남은 여정에 대한 준비를 다시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사순 제4주일은 그동안 회개와 반성의 시간을 보낸 후 다가올 부활 축제를 기뻐하는 ‘기쁨 주일’입니다. 이 기쁜 주일인 오늘 우리들은 잠깐 쉬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부활을 준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찬일 신부가 쓴 ‘하느님의 집’에 인용된 ‘아들아, 하늘을 향해 숨쉬어라’(끌라우디우스 아르비세넷 지음, 박성운 역, 가톨릭출판사)라는 책에 어느 사제의 이런고백이 실려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다른 이들의 죄는 몇 번이고 사해주었으면서도 나의 죄는 영원히 보류된 채 있다. 하느님의 자비이신 어린양을 몇 번이고 받아 모셨고, 다른 이에게 몇 번이고 나눠주었으면서도 나는 그분의 용서를 영원히 받지 못할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
내가 드리는 미사성제로 죽은 이들의 영혼을 몇 번이고 연옥불에서 건져 주었으면서도, 이 성제에 대한 내 독성죄로 말미암아 정작 나 자신은 영원한 불에 파묻는다. 악한 자들을 단죄하던 나였고, 몇 번이고 하느님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었던 나였으면서도 내 부주의와 죄악으로 말미암아 정작 나 자신은 그 벌에 떨어지게 하였다.
주님! 당신은 의로우시고, 당신의 판단은 얼마나 올바릅니까! 저는 제 구원을 위해 해야 할 아무것도 하지않았습니다. 제 멸망은 제 행위의 결과입니다.”

그 사제의 고백처럼 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그 동안 별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온갖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어떤 노력도 하지않고 말입니다. 이런 노력 없는 삶은 곧 작은 아들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신의 몫으로 받은 재산을 욕망과 즐거움의 방종한 생활로 허비해버린 작은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이제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고 기뻐하며 즐거운 잔치를 벌입니다.

회개한 사람들을 자비로이 맞아주실 뿐만 아니라 기쁜 날을 즐겨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잘못은 금방잊으시고 함께 기뻐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도 우리가 아버지의 품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자비하심을 믿고 회개하며, 다시 힘을 얻어 부활을 맞이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의정부교구 이상훈 신부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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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깁시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뿐이야.’하고 믿어 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한 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예’보다도 ‘아니오.’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어,
진실로 충언해 주는 그 한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여러분은 삶에 지쳤을 때 잠시 기댈 수 있고, 언제라도 찾아가면 내 고민을 들을 줄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님, 친구, 배우자, 자녀, 선생님, 회사 동료...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하느님의 모습이 바로 ‘그 한사람과 같은’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의 비유’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작은아들의 죄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초점은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불효막심한 작은 아들이 자신의 멋대로 살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와 아버지께 용서를 청합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보호와 품 안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그 시간을 기다려주고 품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큰아들의 모습은 작은아들의 모습과 다를까요? 큰아들의 모습도 작은 아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는 여정을 몸으로 부딪치는 경험의 길을 택하였고 큰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는 여정을 내적인 싸움을 택했을 뿐입니다. 결국 작은아들은 ‘그 한 사람’을 옆에 두고 다른 곳에서 찾아 헤메는 사람이었고 큰 아들은 ‘그 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만나고, 지금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의정부교구 민형기 안셀모 신부 : 2016년 3월 6일
  |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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