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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제주] 용서하시는 예수님
조회수 | 2,228
작성일 | 07.03.23
어느 방송에 ‘내 인생의 사과나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인기 연예인이나 특정 전문가들의 삶이나 인생철학 등을 이야기하며 지금 성공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거칩니다. 상처받고 쓰러지고 넘어져 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 것들을 소개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일 수 있고, 그림, 음악, 책,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도 사과나무 한 그루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과나무는 내 자신이 미울 정도로 죄중에 허덕일 때라도 질타나 문책의 소리가 아닌 오히려 격려와 용기를 주고 자비를 베푸는 용서의 말을 통해서 자라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의 의도는 무척이나 간교합니다. 예수님께서 모세법(레위20,10 ; 신명 22,22)에 따라 이 여인을 심판해 줄 것을 요구하는 그들의 주장대로 하신다면 예수님 자신이 지금까지 베풀어 온 자비와 용서를 스스로 거부하는 셈이 됩니다.

이에 반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판결을 거절한다면 율법을 위반했다는 구실로 예수님을 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수용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으시면서 판단의 방향을 근본적인 자기 성찰로 돌리십니다.

예수님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대결은 복음과 율법의 대결로도 견줄 수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지만 서로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얼핏 예리한 비판 정신을 갖고 있지만 비판의 대상에서 자기가 제외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관용과 부드러움이 결여되어 남을 단죄하고 끝내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용서와 사랑으로 공생과 화해의 관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단죄하기보다는 용서하심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그 힘으로 희망찬 미래로 전진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도 가슴에 품고 살아야하겠습니다.

광주대교구 이재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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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살리는 심판자

돌팔매질 사형을 준비하는 적대자와 간음하다 잡힌 여인 사이에서 예수님은 평소 즐기시는 수사학을 이용하여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결과는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모두가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죄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보속을 주십니다.

연일 이어지는 사건 사고입니다. 예수님이 며칠 동안 성전에서 받았던 비난과 질투, 음모에 이어 이제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생각까지도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 한 사람에 대한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 나이를 불문하고 율법학자와 백성 모두에게 심판자로 서 계십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여인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살리러 오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안 계신 어떤 자리에서는 그런 여인이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새롭게 하면서 죄를 범한 여인에게도 다시는 죄를 짓지 말 것을 심판자로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이며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은 사람을 죽이지 않으시고 사랑하고 살리시는 분임을 기억합시다.

제주교구 허찬란 신부
  |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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