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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착해빠져' 탈인 사람
조회수 | 1,971
작성일 | 07.03.28
한스 발둥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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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압박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놓여 있던 친구의 절박한 상황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대출보증을 섰던 '착해빠진' 한 형제님을 알고 지냅니다. 오래 가지 않아 상황은 최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잘 풀릴 것 같았던 친구 사업은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곤두박질쳤고 그 와중에 친구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낯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고, 보기에도 끔찍한 통지서, 경고장, 출두명령서들이 연이어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두푼도 아니고 몇년간 뼈빠지게 모은 상당한 '거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형제님은 속상한 것은 둘째 치고,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었습니다.

잠적해버린 친구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올라 병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배신감을 겨우 달랜 형제님은 상황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친구 집을 찾았습니다.

친구 집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이미 다녀간 뒤였습니다. 곧 비워줘야 할 썰렁한 아파트 거실 한 구석에는 부인과 어린 자식들이 끼니조차 잇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즉시 분위기를 파악한 형제님은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고 돌아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아파트 상가를 지나쳐가던 때였습니다. '착해빠진' 형제님의 발길이 자신도 모르게 친구네 집을 향해 되돌려졌습니다.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친구 부인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 내시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되겠죠. 우선 거처하실 만한 곳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이것 얼마 되지 않지만 우선 아이들하고 식사라도 하세요."

착하기만 한 형제님, 그 착한 심성을 죽었다 깨어나도 바꾸지 못해 아직도 고생하고 계십니다.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나 불행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형제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평생 기반 못 잡고 죽을 고생만 거듭하겠지요.

너무 '착해빠져' 탈인 형제님 모습에는 평생 남 좋은 일만 하다가 결국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예수님 향기와 자취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음을 봅니다.
 
이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복음적 길을 걷고자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고통과 괴로움, 박해와 시련이 따릅니다. 결국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길은 이 세상에서 손해 보는 길, 이 세상에서 바보처럼 사는 길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인 오늘, 교회는 고뇌와 비장함으로 가득 찬 예수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길, 그러나 그 누군가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외롭게 걸어가십니다.

그 길은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 찬 가시밭길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이었기에 두말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그 길은 처절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 길이었지만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었기에 기꺼이 걸어가십니다.

길가에 줄지어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환호성을 올리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환호 뒤에 숨겨있는 비수같은 생각들을 이미 다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웃는 표정 뒤에 감춰진 사악하고 탐욕스런 마음들을 다 꿰뚫고 계셨습니다. 머지않아 저들의 환호는 돌팔매질로 바뀌고, 저들의 박수소리는 야유와 침 뱉음과 조롱으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향기로운 꽃길만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 조소와 야유로 가득 찬 슬픔의 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길이기도 합니다. 진정 되돌아가고픈 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걸어가십니다. 십자가 길 그 너머에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어 걸어가십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인 오늘은 우리 역시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 언덕길을 올라가는 날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의연하게 주님의 길을 따라가도록 합시다. 고통과 십자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면서 또 다시 길 떠나는 은총의 성주간이 되길 빕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1 고린 1,18).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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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주위를 보니 다른 사람들도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예수님의 모습도 보였다.

각 사람이 지고 가는 십자가가 다들 커서 그런지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지고 가고 있었다. 이 사람도 자기의 십자가를 열심히 지고 가려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져 도저히 감당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 이 십자가가 저에게는 너무나 벅차고 무거우니 조금만 잘라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기꺼이 그 사람의 십자가를 잘라주었다. "그래, 이만하면 되겠느냐?" 하시면서, 그 사람은 머리를 조아려 예수께 감사하다고 하고 훨씬 가벼워진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다시 예수께 십자가를 조금만 잘라 달라고 하였다.

언제나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예수께서는 기꺼이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제 그의 십자가는 땅에 끌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뿐하고 작아졌다. 그리하여 그는 발걸음도 가볍게 지고 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다시 무거워졌다.

그는 다시 예수께 가서 마지막 부탁이니 아주 짧게 십자가를 잘라 달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그의 부탁대로 십자가를 잘라주었는데, 이제는 하도 작아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돌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고 휘파람을 불면서 십자가를 가지고 갔다. 그러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을 보며 미련 하다고 생각하였다. "나처럼 주님께 십자가를 잘라 달라고 할 것이지. 자기들이 뭐 성인이라고" 하고 중얼거렸다. 한참을 걸어가니 깊은 골짜기가 나타났는데 그 골짜기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지고 온 십자가를 다리 삼아 놓고 건너갔다.

그런데 이 사람의 십자가는 너무 작아서 걸쳐볼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염치없지만 그는 앞서가는 예수님을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예수님과 다른 일행은 너무나 멀리 가 그의 절망적인 소리는 가 닿지도 못하고 메아리만 되돌아 올 뿐이었다.

▶ 예수회 송봉모 신부
  |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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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외사랑

어느새 변할 줄 모르는 예수님의 외사랑이 최고 절정에 이르는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기점으로 거룩한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성주간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최고로 숭고하게 고백하시는 시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고백을 우리 가슴속에 깊숙이 새겨 담는 때입니다.

오늘 전례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 복음으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할 것을 예고하신 후, 겟세마니에서 극심한 고통 중에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차게 부인한 후 슬피 우는 베드로의 모습, 마침내 예수님께서 조롱당하시고 신문받으시며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돌아가시기까지의 매우 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동안 너무나 무덤덤하게 들어왔던 이야기여서 무심하게 흘려버릴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예수님의 수난 복음을 묵상하면서, 문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토록 갖은 모욕과 고통을 당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사랑 고백을 해 오는 사람 앞에 서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 늘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과 달리,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을 바꾸며 열광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소리 지르기도 하는 군중들의 모습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우리의 모습을 아프게 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마음이 그동안 얼마나 얕고 무디었는지 가슴 저리도록 아파 한숨을 토해 내게 합니다. 전엔 그저 군중들을 향해 손가락을 펴고 싶었는데, 이젠 저를 향하게 손가락을 펴고 싶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꼭 예수님의 절절한 사랑을 알아들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분이 해 오신 외사랑의 고독을 헤아리고픈 심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욱 잘 알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위해 제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마음과 몸을 갖가지 사랑의 표현으로 봉헌하고, 제2독서 필리피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겸손하게 응답하는 거룩한 성주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 까리따스수녀회 원혜선(사벨) 수녀
  |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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