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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묵묵히 자신의 길 가신 예수님
조회수 | 1,998
작성일 | 07.03.28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혀 원하지 않은 반응, 특히 그것이 실망스럽고 부정적인 반응이라면 이때 보이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정입니다. 「아니다」라고 거부하면서 원하지 않는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태도는 소극적인 긍정입니다.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입니다만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상황을 변화시켜 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와 구별되는 성숙한 태도가 적극적인 긍정입니다. 원하지 않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인정하면서 적극적으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변화 시켜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입니다. 타인의 반응이나 내 앞에 놓여진 여건 보다는 나의 변화에 주목하는 태도이지요. 우리가 힘들지만 이러한 적극적 태도를 가진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마저 우리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서 오늘의 수난 복음을 통해 어둡고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외로이 당신의 길을 가신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교훈을 얻어 봅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이날은 특이하게 2개의 복음을 읽으면서 두 개의 사건을 묵상합니다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주제는 하나입니다. 바로 유다인의 왕,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다시 한번 주목해 보는 부분은 예수님이 왕이요 메시아임이 드러나는 자리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배경들이 반드시 밝고 축복받는 분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더러움과 간사함, 더 나아가 인간의 비열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길 위에 나뭇가지와 옷을 깔면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라고 외치며 찬사와 존경을 보내다가도 상황이 바뀌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저주하는 군중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어떻게 예수를 잡아 죽일까 궁리하는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자신의 갈등 때문에 스승을 넘겨주기로 작정하고 배신의 키스로써 스승을 시험하는 제자 유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그리고 「주님과 함께 죽은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노라고 철석같이 맹서하고서도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스승을 철저히 배신하는 베드로 사도. 수난을 앞두고 고통과 번민 속에서 아버지께 기도하는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서도 스승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곯아 떨어져 꿈속을 헤매고 있는 제자들. 죄 때문이 아니라 대사제들의 시기 때문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백성들을 만족시키고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사실적 진리에 눈감아 버리는 인간적 지혜의 소유자 빌라도. 궁지에 빠진 예수를 철저히 조롱하고 농락함으로써 권력에 기생하면서 가학적 권력욕을 추구하는 로마의 군인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난을 더욱 어둡게 장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해봅니다. 내가 만일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를 말입니다.

아마 분노하고 거부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냐고 타인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또 내 앞에 주어진 환경을 탓하면서 주어진 길을 운명적으로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미해야할 사실은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에 개의치 않으시고 당신의 길을 묵묵히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역사를 반드시 긍정적이고 밝은 부분만으로 쓰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부분, 인간이 악이라고 지칭하는 부분도 소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선」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인간들의 「죄악」과 적극적인 악을 통해서도 여전히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상황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신앙의 길은 타인의 반응과 환경적 요인을 넘어서는 인간의 의지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고 묵상하면서 가져야 할 태도는 우리가 만나는 오늘의 실망스런 사건과 부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내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긍정함으로써 현실을 극복함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신앙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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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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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과 같은 곳을 바라보기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어쩌면 이 말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지금 복음을 듣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먼저 같은 식탁에서 같은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과 함께 나누어 먹고서 배반하러 나가는 유다의 모습이, 감옥에라도 함께 갈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치던 입으로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그렇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하면서도 늘 다가올 십자가의 삶을 준비하셨지만, 그분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험난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려고 하자 다들 숨어버릴 수밖에 없었겠지요.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하던 제자들의 모습이 동상이몽이었습니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나는 유다처럼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지도, 베드로처럼 입으로 배반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이 머릿속에서 주님을 생각하였고, 얼마나 많이 입으로 주님께 기도를 드렸으며, 얼마나 많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였습니까? 나 자신을 위해 동분서주 하였지만, 주님을 위해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는 않습니까? 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모든 마음을 써주시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모습, 이것이 또한 동상이몽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을 향해 비워드려야 합니다. 다음의 시를 묵상하면서, 성주간동안 다시 한 번 주님께 나를 내어드리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시선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분과 같은 곳을 바라보기를....

저는 아니지요,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만 하였지요.
저는 언제나 주님을 따랐지요.
저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예"라고 대답하였지요.

그러니 저는 아니지요.
저는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도
주님을 섭섭케 한 일도
주님 음성 못 들은 척 시치미 뗀 적도 없지요.

언제나 주일이면 제 자리 비워둔 적 없었고
밥 먹을 때 잠잘 때
또 시간 날 때마다 시시콜콜 기도하며
한시도 주님 떠난 적 없었으니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물론 가끔이야 이 구실 저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기야 했지만
그래도 전 주님과 한마음이니
배반 따위.... 절대 그럴 일이야 없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내 생각, 내 말일 뿐...,
정작 주님이 나를 어찌 보시는지 오늘은 말씀하여 주십시오.
제가 듣겠나이다.

▶ 김정연 신부
  |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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