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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람을 믿어도 행복한데 주님을 믿으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조회수 | 2,196
작성일 | 07.04.13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사람도 두렵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문을 잠궈 놓고 있다. 이러한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한 순간에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 삶 가운데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만만치 않아 사람들은 항상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이다.  

먼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난 언제 평화로운가?”

어느 신자가 나에게 “신부님은 언제 평화로운가요?”하고 물으면 신부답게 “전 주님과 함께 할 때 평화롭죠.”하고 대답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대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서 평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성삼일을 지내며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본당에 두 명의 동기 신부와 두 명의 신학생이 왔다.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세 명의 신부가 세족례 할 때 우리 본당 신자들은 은총을 만끽하였다. 그리고 이번 부활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본당의 미래가 불안과 두려움에서 평화로 변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려울 때 항상 함께 해주는 동기 신부가 있어서, 그리고 날 위해 기도해 주고 격려해주는 신자들이 있어서 마음이 평화롭다.

누군가를 믿고 함께 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평화를 위한 필수품이다. 믿지 못할 때, 함께 하지 못할 때, 사랑하지 않을 때 사람은 항상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와 별 차이가 없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없어도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머물고 계시다는 믿음만 있다면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만끽 할 수 있을텐데….

부활하신 주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보지 않고도 믿는다?’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믿음으로 인해 그 사람의 존재는 나에게 평화와 행복을 안겨준다. 그러나 믿지 못해 불신의 싹이 커질 때 그 사람과 난 서서히 행복과 평화를 무너뜨리게 된다. 분명 서로 상호관계성 안에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눈빛으로 언제나 우리를 믿고 우리를 지켜봐주시는 분이 주님이신데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주님을 믿지 못해서 그분이 주시는 커다란 은총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부활 사건 그 자체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끊임없는 사랑이다.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분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손해 보는 것일까?

우리 모두 이번 부활의 기쁨을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평화의 선물로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모든 이들과 그들의 가정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 김복기 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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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올림픽 때 주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보기 흉한 건물을 허물때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베니어 보드를 떼어 내는 과정에서 못에 박혀 꼼짝도 못하는 도마뱀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필이면 합판에 못을 박을 때 그곳을 지나다가 못에 박힌 것도 이상했지만 신기하게도 살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집주인은 3년 전 지붕을 수리할 때 도마뱀이 못에 박힌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동경대학의 아베 생물학 교수에게 연락했고 일행은 도마뱀이 어떻게 3년 동안 못에 박힌 채 살 수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밤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컴컴한 틈을 타서 또 다른 도마뱀이 먹이를 물어다 주고 얼굴을 비비고 같이 놀아준 뒤에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못에 박힌 짝을 다른 짝이 3년 동안 보살펴 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 도마뱀을 끝까지 보살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도마뱀이 주는 사랑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죽은 이를 살려주시고, 병든 이를 고쳐주시는 예수님 기적의 현장에는 군중이 많았고 제자들은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목에선 희망도, 미래도 없는 예수님 곁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부활을 못 믿었던 토마만이 예수님의 손바닥을 만져보고야 믿었다고 전해주고 있지만 실은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버렸던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타니아로 가자하실 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 것으로 보아 토마는 생명을 내놓을 정도로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목에서는 토마도,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미래와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희망 없는 예수님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현대인을 일컬어 아스팔트 위의 유목민이라고 합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유목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이지만 비가 온 후에도 즉시 물기가 마르고 건조한 우리의 풍토를 꼬집고 있는 말입니다.

신앙의 소설가 아담스(Richard Adams)는 동물의 생태를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는 토끼의 성격을 연구하고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토끼는 알지 못하는 것은 무조건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이는데 우선 놀래서 깡충 뛰고 그 다음 조심스럽게 의심하며 알아본다.”

사람도 우선 의심부터 하고 알아보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의심도 많고 이해타산을 따져보고 사랑하는 우리 현대인들은 이 훌륭한 도마뱀의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속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는가! 미래가 없는 짝을 위해 끝까지 희생할 수 있겠는가!

인천교구 정윤화 베드로 신부
  |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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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오늘은 부활 제2주일로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해 맞는 자비 주일이지만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 오늘은 다른 여느 때보다 중요하고 벅차게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 희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면서 그동안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많이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가 내 신앙에 어떻게 다가오고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묻는다면 정확히 대답하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토마스 사도 이야기처럼 하느님의 자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보여주지 않으시고 꼭꼭 숨겨 찾기 어렵게만 두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또 토마스에게는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라고 말씀하셨고, 많은 표징들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고 복음에서도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표징을 일으키시는데, 그 표징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의 예수님 인사말에 드러나 있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표징은 평화입니다. 마음에 평화를 느낀다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것입니다.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입니다.

즉,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삶의 모습을 돌아보면 인간관계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존재합니까? 직장 안에서, 교우관계 안에서, 심지어 가장 평화로 가득해야 할 가정 안에서까지 갈등과 분열로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갈등을 해결해야만 평화를 얻고, 평화라는 표징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용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상대방에 대한 미움들을 버리고 용서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의 평화도 얻고, 하느님과의 화해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라는 자비를 베풀기 전에는 용서한다고 하면 나만 억울할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용서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내 마음의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표징이 되어 하느님과의 화해라는 크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평화를 빕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 36)

▦ 인천교구 홍성훈 시몬 신부 : 201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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