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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품으로 달려갑시다.
조회수 | 2,163
작성일 | 07.04.13
주님 부활의 기쁨을 경축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 이 주일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에 따라 ‘하느님 자비의 주일’로 지냅니다. 이는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 성녀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성녀는 생전에 계시나 환시 같은 체험을 통해 모든 영혼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내 영혼 안에 하느님의 자비’란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상(상본)이 부활 후 첫 주일날 축성되기를 바란다. 그 주일은 자비의 주일이 될 것이다. 내 자비의 축일이 모든 영혼을, 특히 불쌍한 죄인들의 피난처, 은신처가 되기를 바란다. 그날 나의 부드러운 자비의 심원이 열릴 것이며, 네 자비의 샘으로 다가오는 영혼들에게는 은총의 전 대양을 쏟아 부을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하는 영혼은 죄와 벌의 완전한 용서를 얻을 것이다. 그날 은총이 흘러내리는 거룩한 수문이 모두 열린다. 지은 죄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죄인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여라. 내 자비의 축일은 나의 온 세상을 위한 위로의 심원에서 나왔으며 나의 부드러운 자비의 거대한 심원을 확인해 줄 것이다.”

우리는 부활성야 미사 중 ‘부활찬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 밤은 온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 신자들을 세속 온갖 죄악과 죄의 어둠에서 구원하여 은총으로써 성덕에 뭉쳐준 밤. 이 밤은 죽음의 사슬 끊으신 그리스도, 무덤의 승리자로 부활하신 밤. 오, 오묘하도다,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 오, 헤아릴 길 없는 주님 사랑! 종을 구원 하시려 아들을 넘겨주신 사랑!…거룩하여라, 이 밤. 죄를 용서하고 허물 씻으며, 도로 준다. 죄인에게 결백, 우는 이에게 기쁨.”

죄인인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는 헤아릴 길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건네시는 말씀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

우리 모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품으로 달려갑시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자비로운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아멘.

전주교구 정삼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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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왜 나만 갖고 그래?”

오늘 복음을 읽을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유행어가 있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이다. 대통령을 지냈던 전두환씨와 관련된 말인데 코미디언들과 정치인들이 많은 흉내를 내면서 상당한 유행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마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가 부활 제2주일이 되면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을 하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토마스 사도에게 주님을 만났다는 말을 하자 그 말을 믿지 못한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는 토마스 사도의 말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예수님 말씀 때문에 흔히 사람들은 토마스 사도를 의심 많은 사람으로 낙인찍고 있다.

사람들은 토마스 사도의 의심에 대해서만 주목하고 그것에 대해서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렇게 토마스 사도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의심이 많았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의 못 자국을 직접 확인해봐야 믿겠다고 한 말은 다른 사도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 것뿐이다. 다른 사도들이 그 말을 안 한 것은 그 말을 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자마자 그들에게 바로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사도들은 이미 예수님의 상처 자국을 보았고, 토마스 사도는 못 보았으니 보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다른 사도들이 토마스 사도보다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은 토마스 사도보다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다른 사도들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부활을 믿지 못했다. 토마스 사도가 믿지 못한 것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도들도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바로 신앙고백을 한다. 그러니 하늘나라에서 토마스 사도께서 부활 제2주일만 되면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말씀 하실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모습은 토마스 사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에게 해당되는 일이고,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나는 믿었는데 토마스 사도는 의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도들 중에도 없고, 오늘날 우리들 중에도 없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다 그런 모습이 있다고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유명한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의심과 고백의 단계를 거친다. 태어나자마자 성인 성녀가 된 분이 없는 것처럼 태어나면서 부터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없다. 많은 시련과 고난과 의심과 불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고백한다. 그리고 또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깊고 굳은 믿음의 단계로 조금씩 성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신부인 나 역시도 이러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아니 지금도 의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또 기대해 본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다시 고백할 것을…

▦ 전주교구 이상용 야고보 신부 : 2016년 4월 3일
  |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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