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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우리도 함께 가겠소
조회수 | 2,242
작성일 | 07.04.21
얼마 전부터 봄이 왔습니다. 봄은 부활의 상징입니 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가 봄나들이(?)를 하 기위해서는 아니겠지만, 느닷없이 “나는 고기를 잡 으러가네.” 라고 말하자, “우리도 함께 가겠소.”라고 말하며, 모든 동료들이 따라나섭니다.

고기를 잡겠다는 것, 그것은 제자로 부름받기 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해야 할 베드로가 복음 선포 대신 어부로서 생계를 유지 하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동료들은 ‘왜 그러느냐? 이러면 되느냐?’는 논쟁과 질문에 앞서서, 베드로와 뜻을 함께 했고, 어부출신답게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봅니다.

어찌된 일인지 밤새 헛손질만 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부활하신 예수님의 코치를 받고,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동료들은 베드로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큰 기쁨과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뒤로 미룬 베드로와 동료사도들을 향해 책망이 아니라,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시며 당신 사랑의 식탁에 초대하셨고, 또한 잡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져오라고 요구하시며, 기적의 공로를 미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이들의 주님으로서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통해서, 특별히 주일 미사를 통해서, 당신의 큰 사랑을 드러내시고, 엄청난 축복을 베풀며, 제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고 주님을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베푸시지만,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 대한 감사의 몫을 제외합니다. 이들은 어리석게도 모든 것이 자기들의 수고와 땀방울과 요행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님의 배려와 동료들과 함께 한 수고의 대가를 잊고, 주일 미사를 소홀히 생각하며, 개인주의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친히 우리의 주님이심을 보여주고, 우리에게 축복을 베풀고 싶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모자라서 우리에게 내 놓으라 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주님께서는 배가 가라앉을 만큼, 우리 혼자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축복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아직도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고 배회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과 함께 이분들도 공동체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감사의 마음으로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자기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예물을 정성껏 봉헌할 때,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 가겠소.” 아멘.

대구대교구 오창수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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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때문에 조금 더 망한들 어떠랴!

어느 신부님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시골본당에 살 때입니다. 사제관이 낡아서 비만 오면 천장이 줄줄 새어서 고생을 했는데, 장마철이 되어 며칠 동안 밤새도록 빗물 받아내느라고 잠을 설친 끝에 용기를 내어 본당의 유일한 재력가였던 본당회장님에게 사제관을 새로 지어줄 수 없느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회장님은 건축업을 하던 분이었는데, 얼마 전에 부도가나서 망한 상태였지요. 난색을 보이자, 하도 답답해서 그냥 해본 소리니 잊어버리라고 얼버무렸습니다. 그 회장님은 본당신부의 청을 거절하고 난 뒤, 마음이 무거운 상태에서 기도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먹고 살려고 하다가 망했는데, 하느님 때문에 조금 더 망한들 어떠랴!”그래서 회장님은 여기 저기 돈을 빌려서 직접 사제관을 지어서 봉헌을 했습니다. 그 후에 하느님께서는 그 회장님에게 많은 복을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업이 갑자기 불같이 일어나서 이 년 만에 전성기 때만큼 일어섰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도들이 고기잡이하러 나섭니다.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그들이 다시 옛날의 삶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의 발현을 두 번이나 목격하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던 때에 그들 앞에서 일으키셨던 꼭 같은 기적을 또 한 번 보여주심으로써 당신 부활을 확신시켜 주심과 동시에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신다는 당신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자들이 하게 될‘사람 낚는 일’곧 사목활동의 성공은 혈기에 달려있지 않고 당신에 대한 철저한 사랑에 달려있음을 깨우치게 해 주십니다. 당신의 양떼를 치도록 맡기시기 전에 먼저 당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지 확인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시골본당의 그 회장님은 당신 혈기로 사업하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갖게 되자, 하느님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회장님은 더 이상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삶을 살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더 이상 밤새도록 헛되이 그물질을 했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예수님 때문에 죽음으로써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 육신을 주실 때에는 그저 동물들처럼 본능을 충족시키는 삶을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고귀한 삶은 온전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신분과 형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이라면 누구나 가장 충만하고 고귀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아멘.

▶ 이종하 스테파노 신부
  |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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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갈 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부활 발현 사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불현듯 생겼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왜곧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하필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을까?’ ‘어떤 연유로 그러셨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다시금 깨우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당신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 말씀과 기적으로 여러 차례 일러주셨고, 그것도 모자라 몸소 십자가 죽음으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제자들은 오히려 부름받기 전의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금 ‘고기 잡는 어부’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기가 차셨을까요? 이런 모습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거듭 물으셨고, 그의 대답에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말씀까지 덧붙이셨습니다. 바로 사람을 낚아야 함이 그들을 부른 소명임을 깨달을 기회를 제자들에게 다시금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이 한편으로는 한심하셨겠지만, 풀 죽어 낙담하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측은해 하지 않으셨을까요? “허, 참…. 사람은 커녕 고기도 못 잡으니, 쯧쯧….”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거라.” “많이 잡히느냐? 그래, 내가 아침식사 준비해 놨으니 와서 빵을 먹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 물고기를 이리 가져 오너라. 내가 직접 구워줄 터이니…. 많이 힘들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정신이번쩍 들었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진정으로 그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달라집니다. 주님의 말씀과 삶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아 죽음에 이르기 까지 ‘주님을 증거하는 자, 바로 사람을 낚는 자’로 변화하게 됩니다. 부활과 함께 한 그 ‘일상’은 또 다른 파견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매년 부활 시기를 보내면서도 ‘부활하여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그분을 모를 때처럼 ‘일상’을 ‘헛된 것들’로 채우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래서 바른 신앙의 모범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부활의 사도가 되기는커녕(‘사람은 낚지 않고’), 세상의 부귀와 영화만을 찑아 사는 자로 늘 그렇게 머물러 있지는 않으십니까?(‘물고기만 낚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셨던 모습과 같이 우리에게도 당신의 부르심을 기억하라 말씀하시며(말씀의 전례) 여전히 밥상을 차려주고(성찬의 전례)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변화하십시오! 바로 ‘지금 여기’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따스한 위로와 깨우침의 기회’가 있는 부활체험의 장소입니다.”

대구대교구 최석환 신부
  |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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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부활의 의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시몬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배를 타고 손에 그물을 잡고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사람 낚는 어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버렸던 그물과 배를 다시 붙들고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은 과연 어떠셨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제자들처럼 그물과 배를 버립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새 다시 그것들을 잡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과 새 정신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옛 사람으로 돌아가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인간의 나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재차 삼차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가 새 사람으로 살도록, 주님께 불림 받은 빛의 자녀로 살도록 계속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다시 사람 낚는 어부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진정 세상의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도 제자들처럼 세상의 것을 추구하기보다 세상의 것을 주시는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시면서 다시금 그들이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버렸던 그물과 배를 다시 붙들고 있는 제자들처럼 혹시 나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 버렸던 그물과 배를 다시 손에 쥐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더라도 괜찮습니다. 다시시작하면 됩니다. 부활은 다시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새롭게 주님의제자로 살아가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낡은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새롭게 주님말씀대로 살아가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부터 다시 새롭게 살아가기를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을 체험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대구대교구 류지현 마태오 신부 : 2016년 4월 10일
  |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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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빈 마음

주님을 잃고, 공허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허망한 마음에 그저 몰두할 거리를 찾습니다. 익숙한 대로 밤새 그물질을 해보지만 그런 빈 손질에 잡힐 물고기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빗나간 어떤 노력으로도 그들의 빈 마음을 채우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빈 손질로 헛수고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첫 만남에서처럼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현존을 깨닫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명을 따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하게 알아듣습니다.

그분과의 새로운 이 만남을 통하여, 빈 마음을 채워 주는 것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시고, 이 만남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향해 일어날 때에 비로소 잃어버린 부활의 기쁨과 설렘을 되찾고, 또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새로운 삶은 예수님께서 이룩하신 부활의 삶입니다. 이는 말씀에 대한 순명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결합하는 삶이며, 그것은 오롯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우리를 위한 삶인 것입니다. 이로써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희망하는 삶에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 만남이 필요합니다. 기쁨을, 희망을 제대로 발견하고 키워내야 합니다. 인간의 절망 끝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아닌 것을 희망하며 빈 마음을 채워보려 하지만 그것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좌절하여 용기를 가질 수 없을 때 제자들의 오늘의 모습을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정호승)는 시인의 충격적인 표현은 오히려 참 희망에로의 절절한 고백일 것입니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님 사랑에 응답합시다. 그로써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만난 그 사랑으로, 우리는 언제나 사라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기쁨과 설렘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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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경수 라파엘 신부 : 2019년 5월 5일
  |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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