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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남과 똑같이…
조회수 | 2,449
작성일 | 07.07.20
몇 년 전 들은 어떤 강의 중에, 한국인의 심성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심성에서 유별난 것 중 하나는, 바로 유달리 강한 ‘평등의식’이라고 합니다. 이런 평등의식은 흔히 ‘똑같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우리나라에 아파트 문화가 발달한 이유 중 하나도 ‘남들과 똑같아야 한다’는 평등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똑같이’라는 평등의식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남과 비교하기’와 ‘시기심’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무척 강하고, 타인을 칭찬하는데 인색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데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학원을 7-8개씩 보내는 초등학생 엄마에게 ‘왜 그렇게 아이가 많은 학원을 다니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부모 대답도 한 가지였습니다. ‘남들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보내면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해서….’  따지고 보면 아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마음 안에는 ‘남들 다하는데’와 ‘불안해서’라는 두 마디로 요약이 됩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일들은 흔히 가정 안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옆집 남편은 안 그렇던데…’, ‘친구 아내는 이렇던데…’로 시작해서 특히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엄마친구 아들’과 비교를 당합니까. 타인과 비교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받았던 그 비교의 괴로움을 내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은 손님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자기 동생 마리아는 한가하게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속에서 부아가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마리아더러 자신을 좀 도와주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마르타를 타이르십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내가 지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 너도 마리아처럼 여기 와서 내 얘기를 들으라’고 하지 않으셨고, 마리아에게 ‘네 언니가 지금 바쁘니 네가 가서 도와주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각자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행복과 불행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오는 것이라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비교하는 마음 속에는 감사함이 자리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해서 남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학대한다면 마음의 평화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길가에 핀 들꽃이 온실 속의 화초를 부러워하지 않듯,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예쁜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의정부교구 장광민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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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입니다.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라고 주님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그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매사에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에 한 선생님이 그 아이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한 분이었기에, 아이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마음을 열어보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아직도 새파란 녀석이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모든 것에 짜증내는 아이, 뭐라고 말을 붙여도 안 들은 척 딴청을 부리는 아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순간 아이는 너무도 귀찮았던지 선생님을 확 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의자와 함께 뒤로 나가 떨어져버렸습니다. 크게 소리는 났지만 다행히 별로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순간 선생님이 꾹 눌러 참았다는 것입니다. 분노하거나 야단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묵묵히 식사를 마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조용히 상황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오히려 그 아이가 전전긍긍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얼굴에는 불안초조해하는 기색이 완연했습니다. 그 다음날 점심시간, 아직도 불안이 채 가시지 않은 아이 옆으로 다시 그 선생님이 다가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식탁 밑으로 뭔가를 건넸습니다. 아이에게 보내는 간단한 편지였습니다.

“00아!, 내가 널 귀찮게 해서 미안해. 난 그저 네가 좋아서, 네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어제 일은 이제 잊어버리고 앞으로 잘 한번 지내보자.”

선생님의 편지를 받아 펼쳐든 순간, 아이는 너무나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아이는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수돗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울었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결국 사랑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성준한 바르나바 신부
  |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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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행복 바라보기

지금 나의 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나올까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벌어지는 상황에 구애됨이 없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는 이름없는 작은 들꽃을 통해서도 행복을 만끽하게 됩니다. 요즘 저는 많이 행복합니다. 교구청 신부님들의 숙소가 천보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니, 공기도 좋고, 전망도 좋습니다. 식사 때면 자주 야채가 나옵니다. 보통 야채가 아니라 신부님들이 일구는 텃밭에서 나는 무공해 야채입니다. 주교님, 신부님들 대부분이 야채를 잘 드십니다. 어떨 때는 경쟁적으로 먹을 만큼 너~무 맛납니다.

성당에 얼마나 다녔는지가 행복과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행복해야 합니다. 성당에서 크고 작은 봉사를 하다가 그만둔 뒤에도 행복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생활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즉 그분은 당신의 사제를 통해서 매일 매일 강복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복을 내려주소서. 아멘.

그런 우리이기에 행복한 신앙인은 누구보다도 세상에 강합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 능력은 ‘주님을 바로 알기’ 에서 오는 능력입니다. 부산한 활동 중에는 주님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마르타와 같이 일을 많이 하면서도 주님을 제대로 보지못한다면 그는 강해질 수 없습니다. 활동 중에도, 주님 발치에 앉아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만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행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곧 구원(행복)이 전망되지 않는 십자가라면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실패)와 구원(성공)을 함께 지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실패를 위한 신앙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신앙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그들의 노고와 정성이 제대로 결실 맺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해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입니다. 좋은 몫을 택한 마리아처럼 우리도 이것 저것 다 내려놓고 주님 발치에 가 앉읍시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의정부교구 지정태 신부>
  |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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