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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활동은 기도의 힘으로
조회수 | 2,138
작성일 | 07.07.20
묵상 길잡이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오로지 기도생활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엔 반대로 오로지 활동이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 같다. 기도 없는 활동 그것은 자기과시로 흐르기 마련이다. 활동과 기도의 조화 그것이 신앙생활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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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나 좀 빌립시다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함께 기도를 하고 나서는, 대강의 집안 이야기를 듣는다. “큰아들은 지금 군에 가있고 둘째 아들은 객지에서 대학 다니고, 막내는 재수하고 있습니다.” 말씨가 이곳 사람 같지는 않은데 고향은 어디며, 집안은 언제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지 등등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차(茶)나 음식준비에 온통 정신이 팔려 물어보는 말에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거나 번번이 질문의 핵심을 놓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제발 귀나 좀 빌려주었으면 하는 때가 많은 것이다.

오늘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신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대조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전념하였다. 혼자 음식준비에 정신없이 동동거리던 언니 마르타는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동생 마리아를 꾸짖어달라고 예수님께 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가 “필요한 좋은 몫을 택했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반갑고, 그분을 위하는 마음이야 마르타나 마리아나 마찬가지겠지만, 예수님을 더욱 기쁘게 한 사람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였던 것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 ‘바쁘다, 바빠 병’을 치료해야 한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널리 만연된 큰 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쁘게 사는 것’이 바로 ‘알차게 사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리고 “요즘 바빠서 죽을 지경이다.”라는 푸념을 자랑처럼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다. 바쁘게 정신없이 사는 사람치고 자신이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며 음미(吟味)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않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또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바쁘게 하다 보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을 하게 되니 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이다. 바쁘게 해치우는 일은 언제나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불량품이 많게 마련이다.

국제 기능 올림픽에서 늘 제패하면서도 불량품을 많이 내는 기업풍토는 바로 바쁘게 대충 해치우는 행동관습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빠른 시일 안에 완공을 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를 보수하는 데 처음 시공비의 몇 배가 더 들어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3.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사는 길은 없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단순히 기도와 활동의 양자택일로 대비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알아듣고자 침묵 중에 묵상하는 시간 없이는 그 말씀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본당 사목을 하다 보면 가끔 신자들이 와서 “신부님, 다시는 그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을 겁니다. 무조건 명령만 하고, 얼마나 기분 나쁘게 무시하는지 모릅니다.” 하고 말하며 함께 일한 간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함께 본당활동을 하면서 그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는 신심단체 간부들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이 없이 지내는 ‘잘난 사람들’일 때가 많다.

조용히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은총이 스며든다. 성령의 은총은 그 마음을 부서지고 낮춰진 마음이 되게 해주신다. 은총으로 부서지고 낮춰진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명령하는 자세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 많지 못하다는 데 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그 마음에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보다는, 세속적으로 스스로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봉사를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는 데 문제가 있다. 이들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군림하는 자세로 활동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건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예수님께서 왜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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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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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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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로부터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빛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할 수 있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면 행복은 몇 배나 커진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장만한다. 퇴근한 남편은 아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그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 아내의 사랑이다. 아내의 사랑을 먹는 남편은 육신의 배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따뜻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영혼이 아름답게 된다.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혀에 감칠맛이 나는 음식이어야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은 사랑이 스며든 음식이다. 사랑은 쓴맛도 단맛으로 바꿀 수 있다. 마르타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한다.

사랑하는 사람 발치에 앉아서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비록 그의 목소리가 쇳소리 같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꾀꼬리나 피리 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감미롭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꼭 심각해야 할 까닭이 없다.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의미 없는 지껄임도 사상가나 철학자들의 말보다 더 풍요롭고 시인의 노래보다 더 아름답다. 말없이 서로 눈만 마주 보아도 천만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렇다고 마르타가 나쁜 몫을 택한 것은 아니다. 마리아도 마르타도 좋은 몫을 택했다. 마르타도 마리아도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아름답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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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강영구 신부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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