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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복 받는 길
조회수 | 2,380
작성일 | 07.07.20
나그네를 잘 대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힘들고 외로우며 고달플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동행자가 친절하면 그 가는 길이 참으로 따뜻합니다. 우리 민족도 길손들에 대해 상당히 친절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백성 자체가 나그네였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를 잘 보살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성서에 보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두 가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보면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 하느님을 영접한 것이 되어 두 가정에 큰 축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잘 대 접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최후심판에 대한 말씀(마태25,31~46)에서 그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우선 1독서를 보면 아브라함이 더운 대낮에 문득 낯선 사람 셋을 보고는 자기 집에 정중히 모시는 내용입니다. 그 나그네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자기 집이 아니고는 쉴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모십니다.

아브라함이 낯선 길손들에게 송아지까지 잡아 주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막말로 먹다 남은 밥을 줘도 감지덕지할 판인데 자기들도 쉽게 못 먹는 귀한 음식으로 접대를 합니다. 재산상으로도 손해요 시간상으로도 바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친절 때문에 뜻하지 않은 상을 받게 됩니다.

그때 음식 대접을 받는 분들이 그랬습니다. 내년 봄 새싹이 돋을 무렵에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는 집에 아들을 점지해 줍니다. 그런데 사라의 나이는 아흔이 다 된 할머니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망측해서 사라가 웃었지만 그러나 사라는 정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 살 때의 일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고 안 얻고가 문제가 아니라 나그네를 따뜻하게 대접하는 그 성의가 아주 감동적입니다. 그는 결코 아들을 얻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피곤한 나그네에 대한 어떤 연민의 정 때문에 그랬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받을 사람은 꼭 복받을 일을 합니다.

복음에서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내용입니다. 그들 자매가 살던 베타니아는 예루살렘 길목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자주 들르셔서 음식도 드시고 또 쉬셨던 곳입니다. 주님은 그들 자매를 특별하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은 보나 안 보나 굉장히 가난했던 자매였습니다. 라자로가 거지로 비유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루가 16,19~31참조).

그런데, 오늘 두 자매가 주님을 모시는 태도가 아주 대조적입니다. 마르타는 음식 준비에 바빴고 마리아는 주님이 편하게 쉬실 수 있는 분위기에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피곤하셨지만 그러나 또 시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우선 먹는 것보 다는 마음의 편안함이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정신이 복잡하면 밥알이 모래일 수 있습니다.

아마 짐작컨대 이랬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떼지어 주님께로 몰려들었고 그들 중에는 병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전파와 그리고 치유 안수에 주님은 지칠 대로 지쳤을 것입니다. 아주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이때 그 피곤한 말씀을 옆에서 들어주는 것만 해도 그 피로가 풀리게 됩니다. 우리도 그런 사실을 자주 경험합니다.

여자들이 바가지를 자주 긁으면 남자들이 밖에서 돌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 봤자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말 많은 사람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사 준다 해도 입이 껄끄럽습니다. 그러나 내 분위기를 잘 이해하고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 사 주면 보리밥이라도 꿀맛이 됩니다. 마음이 편하면 세상이 따뜻하고 음식도 맛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잘 영접하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 집에서 편히 쉬시고 내 가정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웃 나그네를 그렇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며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따뜻하고 편하게 모시도록 합시다. 그것이 복받는 길이요 또 잘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그네가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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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선택한 몫은

찬미예수님! 오늘 루카복음에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집을 찾아주신 예수님을 마르타와 마리아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분을 대접합니다.

오랫동안 떠도는 생활을 하신 예수님께 마르타는 넉넉하진 않지만 정성스런 한 끼 식사로, 마리아는 마치 사랑하는 님을 바라보듯이 예수님 발아래 턱을 괴고 앉아 그분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런 마리아를 못마땅하게 여긴 마르타는 예수님께 투정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일을 거들어 달라고.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으니 빼앗지 말라고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교회의 많은 영성가들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르칠 때 자주 인용하는 대목입니다. 마르타를 활동하는 사람들로, 마리아를 관상하는 사람들로(혹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토마스. H. 그린이 쓴 「세상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장터의 어둠)」이나 클리프런 월터스가 쓴「무지의 구름」(16장 이하 참고) 비유합니다. 「무지의 구름」에서는 마리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지만, 「세상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마르타를 중심으로 지면을 할애합니다.

저 또한 오늘 복음에서 비록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선택한 몫을 인정하고 칭찬하셨지만, 왠지 마르타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마르타가 머문 부엌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마르타의 모습이 일상에서 허둥대며 살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쪽의 모습만이 “정말 좋은 모습이다”라고 단정하기 보다는 마르타의 모습과 마리아의 모습이 우리의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면 그 또한 가장 좋은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활동하면서 관상하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며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이라는 같은 목적을 갖습니다. 특별히 기도시간을 내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일하는 것 역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향주삼덕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활동과 관상을 조화있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민감하게 되어, 그 결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됩니다. 마침 저희 성당도 교구설정70주년의 주제에 맞추어 “하느님 사랑 안에서는 행복합니다!”라는 사목지침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 언제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자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하느님을 만난 체험을 소중히 간직하여 연말에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일하며 기도하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시길 기도합니다.

광주대교구 김민석 신부
  |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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