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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조회수 | 2,392
작성일 | 07.07.20
오늘 복음 말씀은 주님을 자신의 집에 맞이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이다. 마르타는 사랑하는 주님을 잘 모시기 위하여 여러모로 힘쓰고 있다. 본문에서는 자세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지만 유태인 가정의 전통적인 손님맞이는 제1독서의 아브라함의 손님맞이에서도 드러나듯이 다소 요란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깨끗한 물을 길어와서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며, 본격적인 식사 전에 다과상을 내어왔을 것이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 위하여 빵을 새로 굽고 적어도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요리를 하였을 것이다. 이 모두는 다 손이 무척 많이 가는 일들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서 주님 말씀을 듣고만 있었다는 것은 마르타를 열받게 하였을 것이고 주님께 다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항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마르타에게만이 아니라 너무나 바쁘게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남기셨다.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고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또 마르타와 마리아 집을 방문한 근본 목적은 좋은 대접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전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을 보다 잘 대접하기 위하여 분주한 마르타보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하여 노력하는 마리아가 주님께 더 인정받은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자신과 교회의 모습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너무나 복잡다난한 세상에서 너무나 분주하게 살고 있다. 교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는 수많은 일들 속에 둘러 쌓여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바오로 사도도 제2독서에서 자신의 교회 안에서의 모든 삶이 오직 한 가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성숙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도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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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상열(T. 데 아퀴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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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에게

마르타,
그대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하려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대, 마르타여,
내 곁에서 나와 눈을 마주쳐주오.
내 곁에서 나와 미소를 나누어주오.
그대와 나 사이에 하느님의 말씀이 오고 가게 해 주오.

그대, 마르타여,
접대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대를 대접하려고
그대 삶을 두드리는 내 방문을
그대는 잊지 마오.

마르타의 몫과 마리아의 몫,
‘어느 쪽이 더 옳은가?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가?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어느 쪽이 더 교회에 유익한가?’
이런 비교, 우열나누기,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접대를 받으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접대하시고, 우리를 대접하시려고 오신 주님의 방문을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접대(마르타)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접대(마리아)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 이것이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어떤 모습을 원하실까?’
어떤 사람에게는 마르타의 모습을
어떤 사람에게는 마리아의 모습을
또 어떤 이에게는 또 어떤 모습을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모습을?

내가 원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접대가 아니라 주님께서 진정 나에게 받고 싶어 하시는 접대는 무엇일까?

대구대교구 김영호 알폰소 신부
  |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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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얼마 전에 서울 화계사 주지였던 수경스님의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글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생면부지인 스님이시기에 그분의 사상도 모르지만 그 글의 몇 부분은 가슴에 화인되어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수경스님의 이 글을 읽으며, 오늘날 이 시대에 예수님의 삶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가슴을 치며 새삼스레 마음을 다잡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할 때의 그 마음을, 사제서품을 받을 때의 그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초대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다 대접해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편안하게 쉬실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초대할 때는 마르타에게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잘 대접해 드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니, 왜 일을 하는지를 잊어 버리고, 일에 지쳐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을 듣는 동생 마리아가 얄밉게 느껴집니다. 일을 하다 보니 예수님은 사라지고 일만 보입니다. 그래서 지칩니다. 그래서 불평합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기쁘게 예수님을 초대했던 첫 마음을 잊어 버렸습니다. 일을 하다가 보니 자신이 왜 일을 하는지를 잊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사라지면 내가 올라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 30)고 하는데 반대로 되었습니다. 첫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당에 처음 나올 때의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겠다는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생활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김원일 안드레아 신부
  |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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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정작 필요한 것

저는 신학생 때부터 유난히 무엇을 키우거나 기른다는 것, 특히 식물을 못 키웠습니다. 심지어는 관상용 선인장도 몇 번이나 말려 죽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던 제가 사제가 되어 첫 소임지에서 성당 마당에 정말 작은 복숭아 묘목을 심었습니다. 또다시 말려 죽일 텐데도 ‘반드시 키워서 소출을 내리라.’는 어처구니없는 망상 같은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묘목이 죽지 않고 버티고 버티면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열심히 물을 주고, 꽃가게를 하는 신자께 거름도 얻어다가 주고 정성을 들였습니다. 겨우 1미터 남짓 자랐을까요? 그 작은 꼬마가 드디어 일을 냈습니다. 제 주먹 크기의 복숭아가 달린 것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복숭아를 들여다보면서 잘 익으면 주일 미사 때 제대 꽃꽂이 한 쪽에 몰래 올려 두어 봉헌하고, 맛있게 먹으리라는 희망에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지나 드디어 봉헌하려고 결심한 주일이 눈앞에 왔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오전 미사 후 복숭아가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분명 범인은 면식범이다!’ 미사 오신 분 가운데, 특히 지금 레지오 하시는 분 중에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기도만 하면 다인가? 아니~ 신자가 자기 것도 아닌데 그런것을 가져가고 말이야~’ ‘내가 제대에 봉헌하려고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키웠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그것을 말이지? 평일미사 백날 나오면 뭐하노~’등등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이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노~?’ 하고 머리에 ‘꽝~’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인데...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르타처럼 눈앞에 있는 일에 몰입을 해서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사람을 의심하고 심지어는 그 누군가의 ‘신앙’마저도 제 마음대로 판단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이고, 만져지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세상에 살다 보니 자꾸만 진짜 중요한 것들을 못보고 놓쳐버리기가 일상입니다. 그래서 마르타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내려주셨나 봅니다. 무조건 마리아가 옳고 마리아처럼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우리에게 신앙인의 모습을 풍성하고 다양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상 살기가 팍팍해져서 자꾸만 신앙 살기도 그렇게 팍팍하게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로움을 잘 못 사용한다면, 그래서 균형을 놓치고 한 쪽으로만 치우쳐서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간다면 예수님 곁에 머무를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한 가지가 우리 마음속에 깊이 심어지고 풍성하게 자라기를 소망해봅니다.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결실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대구대교구 김종섭 토마스 신부>
  |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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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참으로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만남을 통해 원목 사제로서 배우고 얻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께서 말씀하시는 고통의 여정이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안타깝게 다가오면서 지금의 내 삶에 대한 성찰과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투병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프고, 힘겨운 나날들이지만 그분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고통을 겪고 계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체험 가운데에서 저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었던 하나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A씨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결혼을 준비를 하던 중, 몸에 이상이 생겨서 검사를 했는데 자궁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A씨는 물론, 함께 할 배우자 D씨 또한 너무나 큰 충격 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엄청난 시련에 힘이 들었지만 현실은 그들의 시간과 마음을 더욱더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00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눈물로써 서로를 위로하던 가운데, 결혼식을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을 원목사제인 제게 전화로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남편 될 사람의 이야기인즉슨, 처음에는 아내인 환자 분이 결혼식 하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지만, 남편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혼식을 하기로 했으니 주례를 부탁한다고… 안타까운 마음과 애절함 이 목소리에 담겨있어서, 다음날 호스피스 병실에서 혼배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사제로 살면서 성당에서 숱하게 혼배 주례를 해왔지만 병원에서, 그것도 호스피스 병실에서 하는 것 은 처음이었습니다. 양가 부모님들, 지인들, 증인들, 원목 수녀님, 호스피스 팀장이 작은 병실을 가득 메운 채 혼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병실 안은 엄숙함과 더불어 비통함으로 그야말로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저 또한 신랑 신부가 반지를 교환하고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합니다.”라는 사제의 기도를 목이 메여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몇 번이 고 반복을 하였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새 신부인 환자는 “행복해요… 그런데 신부님, 우리 오빠가 너무 불쌍해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주위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두 분의 결혼식을 주례하면서 문득 어느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행복이란 저 멀리 어디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나와 네가 함께 하는 것이 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자매 는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귀한 배우자와 가족들을 위하여 하느님 품에서 기도하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아름다운 두 분의 사랑이 지금도 제가 환자 분들과 보호자분들을 만날 때마다 아름다운 기도가 되어 제 마음 안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가지입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더 있다가는 늦어요. 지금 고백하세요.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 대구대교구 이태우 프란치스코 신부 : 2016년 7월 17일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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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38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루카 10,38-42)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게 해주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복음에 그려지는 공간 배치가 흥미롭다. 마르타는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모셔 들였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로 ‘나아갔다.’ 마르타는 자신한테로 예수님을 끌어당겼고, 마리아는 예수님께로 자신을 내어 맡겼다. 마르타는 주인 처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데, 마리아는 제자 처지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마르타라는 이름의 뜻은 ‘주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마리아의 ‘발치에 앉아 있다.’라는 표현은 배우는 사람의 자세이기도 하다.(사도 22,3 참조)

마르타와 마리아의 자리 배치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마르타는 이리저리 자신의 자리를 옮겨 다닌다. 마르타는 도무지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 ‘분주하다’라는 표현은 무척 산만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이에 반해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는 말이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분의 말씀 중에 ‘한 가지’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여러 공간적 움직임을 보여주고, 자신에게 집중된 모습을 보여준 마르타와 한 곳에서 줄곧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마리아. 이 둘 중 누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는 말씀이 잘 어울릴까.

여러 자리에 휩쓸려 다니는 것이나,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자신의 처지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좋은 몫’은 상대방보다 더 좋은 몫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언지 깨닫는 것이리라.

▪ 묵상 (Meditatio)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하면서도, 예수님처럼 살지 못한다. 예수님 시대와 지금 시대가 다르다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그것으로 내 삶을 세상 누구보다 편안한 삶으로 꾸미려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여러 삶의 형태 중에 사제의 삶이 꽤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세상살이가 그만큼 편한 것이라는 반증이다. 예수님은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세상에 오셨다.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셔도 될 터인데, 굳이 갈릴래아 촌락의 삶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십자가마저 껴안으셨다. 요즘말로 ‘루저(손해보는 사람)’의 삶을 선택하신 셈이다.

내가 나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동안, 하느님의 삶은 어디에 뒀는지도 모르게 잊힌 것은 아닌지, 자신의 삶을 꾸미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하느님의 삶이 무언지 알려고도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내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생애진단’이라는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내 생애가 무엇을 위한 생애였는지 한번쯤 점검해야겠다.

▪ 기도 (Oratio)

주님께 바라라. 네 마음 굳세고 꿋꿋해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 27,14)

▮ 대구대교구 박병규 신부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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